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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함석헌의 탈바꿈(개혁-혁명-잔화)사상 7

by anarchopists 2020. 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2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탈바꿈(개혁-혁명-진화) 사상

6. 맺는말(1)
함석헌에게 깨달음과 탈바꿈은 인류의 진화단계를 인식하고 앞으로 한발 내딛는 도약, 창조적 비약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를 초극하는 것, 벗어나야할 단계의 집착에서 깨치고 나오는 깨침이다. 현재 상태에 정체되거나 퇴행, 반동에 대해서는 맞서서 버티며 저항해야 한다. 그래서 함석헌의 저항정신이 일생 내내 표출된 것이다. 이 단계의식은 개인에게는 깨달음으로 다가오고 전체로서는 정신/의식혁명, 패러다임 전환 즉 틀 바꿈으로 온다. 깨달음은 아마 이 시대 사람에게는 함석헌이 도달한 의식을 뛰어넘는 더 큰 깨침의 과제가 주어져있을 것이다. 그 동안에 더 발달한 물질 만큼 인간 정신이 더 퇴행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개혁적 사고는 비폭력 사상에도 드러났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어떤 개인보다도 그의 비폭력 투쟁의 공헌이 컸다 할 수 있다. 비폭력은 지금은, 그의 투쟁에 크게 힘입어, 상식으로 정착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요 비현실적이고 생소한 주장이었다.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해묵은 쟁점이 이 시점에서는 분명하게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함석헌이 천명한 뜻과 생각의 결실이다.


비폭력 투쟁이 다소 현실화된 이상이었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할 이상으로는 국가주의의 극복이 있다. 이것은 함석헌의 독특한 발상에 해당한다. 역사가의 눈으로, 국가라는 이름 밑에 저지른 폭력과 죄악은 엄청났다. 인류가 그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국가주의는 민족국가 시대의 유산으로 인류가 벗어버려야 할 뱀 허물 같은 것이다. 민족주의도 국가주의이며 이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세계주의와 비폭력 평화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함석헌의 선지자적 통찰과 예지가 나타난 또 하나의 사례는 ‘국민학교’ 명칭 문제이다. 그가 개칭(초등학교)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일찍이(1966년) 문제를 제기하였다.

오늘날은 이미 인류가 국가지상, 민족지상의 생각 곧 내셔널리즘을 벗어버리려 애쓰는 시대요 교육의 목적은 결코 국민을 길러내는 데만 국한할 수 없어졌다. 세계가 하나에로, 인류가 하나에로 지향을 하고 있는 이때 시대착오작인 그런 이름(즉 ‘국민 학교’)은 어서 고치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래에는 국민이라는 말보다는, ‘민’은 ‘민’이지만 계급적인 정치성보다는 민중 혹 인민 하는 말을 명사를 많이 쓰게 되었다. 영어로 하면 같은 피플(people)이다.... 나라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라는 나라만으로는 세워갈 수 없이 됐다. 나라는 세계 안에서만 서 갈 수 있게 됐다. 살리는 것은 전체다. 부분이 모여 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있어서 부분을 살린다. 국가, 국민, 민족 할 때 사람들은 나라에서 전체를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전체는 보다 더 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이 세계, 그보다도 우주다. 이제 우주시대다
.(3:253)

그 뜻이 나중에 일제 시대 교사출신 인사, 이오덕 등을 통해서 정부와 교육계로 전달되어 초등학교로 개명되는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함석헌의 주장 배후에는 단순히 일제의 유산 때문이 아닌 (‘고등학교’, ‘대학’도 일제 유산이다) 깊은 사회사상적 근거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혹이라도 초등학교 개칭 문제를 사회진화론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이렇게 경고하는 것은 이 문제를 일제에 충성한 일본지식인들이 오용한 사회진화론을 함석헌이 반대했다는 증거로 삼고 함석헌이 사회진화론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체론적 시각에서 함석헌이 그리는 이상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그로서 물질 가치 위주의 현행 자본주의는 모델이 아니다.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가 희생되는 전체는 결집력이 약하다. 현실적으로, 그가 강조하듯 중산층이라도 두터워야 그나마 견딜 수 있다. 양극화 사회는 분열적이다. 단순한 우중의 집합이 아닌 깨어난 씨알들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그 너머 씨알주의가 오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전체가 비중과 중요성에서 개체보다 앞서기 때문에 말하자면 옛 질서(先天)가 거꾸로 바뀌는 새 질서가 세워진다. 유교경전 『대학』의 8조목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순서가 뒤바꾸어 ‘평천하’가 앞선다.(11:97) 바로 지금 개인과 나라보다 지구온난화 등 세계전체의 문제와 위기, ‘지구촌’을 말하고 있는 것이 그의 통찰의 타당성을 증명한다. 이 질서의 재편은 그가 이미 일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일어나고 있음을 역사가로서 간파한 결과이다.(김영호 내일 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 어제 김영호 선생님의 글이 끝난 것으로 오기한 것은 운영자의 착오였습니다.
내일 끝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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