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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장창준 선생 논단

한반도, 민족공동체의 갈 길은 어디인가? 4

by anarchopists 2019. 12.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2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3회 함석헌평화포럼 학술발표문-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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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한반도, 민족공동체의 갈길은 어디인가



4. 민족공동체의 중장기적 진로: 평화와 통일 구조로의 전환

1) 평화와 통일 구조의 논리: 적극적 평화, 체제존중형 통일
한미동맹 체제라는 굳건한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평화와 통일의 구조’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 한미동맹 체제를 혁신하는 과정이 병행되었을 때 평화와 통일의 구조는 제한성을 극복하고 굳건하게 형성될 수 있다.

이제 평화와 통일의 구조의 온전한 형성과 한미동맹 체제 혁신의 관계에 대해 평화론적 시각과 통일론적 시각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전쟁과 분단의 구조’에서 확인했듯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통일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평화정착이 없는 통일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 통일이 수반되지 않는 평화는 언제 위기가 고조될지 모르는 취약성을 갖는다. 따라서 ‘평화와 통일의 구조’는 적극적인 평화가 내포된 체제존중형 통일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평화는 전쟁과 군사적 충돌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전쟁이 없다는 것이 현상적으로는 평화일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언제든지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대표적 평화 개념이 무장평화론이다.

냉전시대 국제사회를 지배했던 평화의 개념은 현실주의적 평화였다. 홉스적 국제관 즉 국제사회를 무정부상태로 규정하고 그와 같은 무정부상태에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할 수 밖에 없으며 힘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고 관리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적 평화는 곧 상대방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했을 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무장평화론이다. 그러나 무장평화론은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의 구조’를 유지하게 만들어 왔던 논리의 기초라는 점에서 ‘평화와 통일 구조’의 논리적 기초에 대치된다고 할 수 있다. 무장을 통한 힘의 논리는 곧 제압의 논리로 발전했고, 제압의 논리는 다시 대결의 논리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민주국가까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이 있다. 그러나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국가를 ‘민주국가’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미국은 ‘자유와 민주’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을 벌여왔다. 평화와 통일 구조를 형성하는 한반도적 상황에서도 민주평화론은 적합치 않다. 한반도 구조에서 중요 행위자인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민주국가’라는 일치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같은 불일치 속에서 민주평화론은 상대 정치체제에 대한 폭력적 개입을 정당화시키고 이는 다시 ‘전쟁과 분단 구조’를 강화시키는 논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단순히 전쟁의 결여상태가 평화라고 정의하는 통념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특히 1968년 인도의 평화학자 다스쿠프타에 의해 전쟁이 없어도 평화는 아닌 상태, 즉 ‘비평화’(peacelessness)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김강년, 『국제정치와 남북한 평화안보』(경주: 신지서원, 2007), 79쪽. 이같은 논의는 요한 갈퉁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요한 갈퉁은 직접적 폭력 뿐 아니라 사회구조 자체에서 일어나는 간접적 폭력(구조적 폭력), 그리고 직·간접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폭력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평화를 직접적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와 구조적·문화적 폭력까지 사라진 ‘적극적 평화’로 정의한다. Johan Galtong 저, 이재봉 옮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서울: 들녘, 2000).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까지 사라진 적극적 평화 상태는 현재의 국제질서를 전면적으로 뒤바꾸지 않고서는 달성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상적 평화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요한 갈퉁이 제시한 적극적 평화 개념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구조에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요한 갈퉁의 적극적 평화 개념을 한반도에 적용시켜 본다면, ‘전쟁과 분단의 구조’ 하에서 파생되었던 폭력의 문제, 폭력의 논리, 폭력의 구조가 제거된 혹은 상당히 완화된 상태를 한반도식 적극적 평화 개념으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상황에서 전쟁의 근원은 구조론적으로는 북미적대체제와 한미동맹체제가 될 것이며, 인식론적으로는 남북 사이의 적대적 감정이 될 것이며, 행위론적 측면에서는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침략 혹은 붕괴를 목적으로 한 일련의 군사행위 즉 전쟁훈련, 전쟁계획 등이 해당된다. 따라서 전쟁의 근원이 제거된 평화는 북미관계의 정상화, 한미동맹의 해체,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의 지속, 상호적대적인 전쟁훈련의 중단, 전쟁계획의 철회, 핵우산 정책의 철회 등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주한미군이 철수된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와 전쟁 근원의 제거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이 주둔하더라도 평화유지군 등으로 그 성격이 변화한다면 전쟁의 근원이 상당히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으로의 주한미군 주둔은 영구적일 수 없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이같이 변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됨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동북아에서의 평화 정착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같은 상황의 전개는 평화유지군으로서 주한미군이 필요없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주둔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요구되는 성격일 뿐이다.

이를 한반도 차원의 적극적 평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통일 방식은 크게 보아 체제존중형 통일과 체제흡수적 통일로 나뉜다. 물론 체제통합형 통일이라는 것도 하나의 범주로 설정하고 있으나 이미 남과 북의 구성원이 자신의 체제를 내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제통합형 통일은 분단 초기에는 설정 가능할 수 있으나 현 조건에서는 체제흡수적 통일로 귀결될 것이다. 표 3>(생략)에서 ‘성립 불가능’의 영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방식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혹은 가장 현실적인 통일방식은 무엇일까.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듯이 북측 체제가 내적 요인에 의해 붕괴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에 대한 최근 논의는 오경섭, “북한 전체주의 사회통제와 체제 내구성”, 『세종정책연구』2009년 제5권 2호; 한병진, “북한 정권의 내구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 『국가전략』2009년 제15권 1호; 이형석, “대북정책의 실효성 제고 방안”, 『2010년도 한반도 정세 전망과 북핵문제』(2009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국제학술회의 자료집, 2009년 12월 7일 개최) 참조.

외적 요인에 의한 체제 붕괴 즉 인위적 붕괴 유도 정책 역시 성공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인위적인 붕괴를 위해 소위 ‘북한 급변사태’라는 미명 아래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이 인위적인 붕괴 정책에 동조할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북측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인위적인 붕괴 정책은 곧 군사적 수단의 동원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지만 미국 역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대북 정책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결국 합리적이면서 유일한 통일 방식은 대화를 통한 체제존중형 통일 방식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서로 공동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키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 공동선언 합의 사항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3) 평화와 통일 구조의 조건: 이익균형자 담론
20세기 국제정치를 지배했던 현실주의 담론은 모든 국가는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게 되고, 생존을 위한 더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쟁탈을 벌이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국가들의 생존과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어떠한 틀이나 구조가 없는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 때문에 세력균형은 국가의 생존 즉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을 증강하는 논리로 귀결된다. 따라서 자원이 부족하고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자체로 군사력을 증강하기 어려운 약소국의 경우 “동맹은 여러 국가로 구성된 다국적 국제체제 안에서 작용하는 세력균형의 필수불가결한 기능”이 되는 것이다. Hans J. Morgenthau, Politics among Nations: The Struggle for Power and Peace(New York: Alfred A. Knoff, 1973), p. 246.

‘전쟁과 분단의 구조’는 세력균형 이론의 파생물이라 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을 위시로 하는 사회주의권과의 세력균형을 위해 한미 동맹체제가 형성되고 그 원인 혹은 그 결과로서 북미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력균형 이론에 따라 한미 동맹은 한미 동맹대로, 북측은 북측대로 자신의 군사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수립하였고 그 결과 ‘전쟁과 분단의 구조’가 형성되고 강화되었던 것이다. 세력균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편가르기가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평화와 통일의 구조’는 세력균형론적 접근을 폐기하고 이익균형론적 접근을 채택했을 때 현실화될 수 있다. 세력균형론은 그 논리를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군사력과 같은 물리적 힘의 균형을 추구하게 한다. 이는 느슨하고 유연한 무장평화론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 지언정 ‘탈무장평화론’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 느슨하고 유연한 무장평화론은 각국 간의 관계와 환경에 따라 적극적인 무장평화론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한편 동북아시아 질서가 다자주의적 경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자체제 하에서 세력균형론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정책 일관성을 견지하기가 어렵다.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속에서 세력균형론은 정확한 목표 설정 없이 바람에 의해 좌우되는 선박에 비유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익균형론은 군사력과 같은 물리적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한반도를 대상으로 갖고 있는 정책 목표와 이익을 합리적으로 배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국이 갖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이익 중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발굴·수용하고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그들 국가들의 이익의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사일방어계획(MD)은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MD계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이익 균형은 MD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한편 모든 한반도 주변국들은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남북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이익 균형이다.



한편 세력균형은 강대국의 게임논리라고 한다면 이익균형은 약소국의 게임논리이다. 세력균형 하에서 한반도는 세력균형의 대상이다. 그 결과 힘있는 국가가 한반도를 좌지우지했던 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역사였다. 이익균형 하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은 이익균형의 적극적 추진자이다. 어떤 주변국도 한반도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뿐 균형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균형점을 찾는 것은 곧 자기 이익의 양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익균형을 추구할 수 있는 국가는 강대국 이해관계의 대상이 되는 국가 즉 약소국일 수 밖에 없다.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한반도는 이들 주변국들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그 안에서 한반도에 대한 이익의 균형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수행했을 때 주변국들의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는 세력균형 정책 역시 폭력적 방식으로 전개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채택해야 할 이익균형의 구체적 내용은 전쟁 방지와 화해가 될 것이다.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모든 국가들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바로 그 점 때문에 남북 분단체제의 안정적 관리를 요구하며 이를 위해 남과 북의 화해를 원하고 있다. 물론 전쟁방지와 화해는 대단히 소극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그림 2>에서 지적했던 전쟁과 분단 구조의 악순환고리를 깨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전쟁방지와 화해의 규범은 평화와 통일의 규범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2011.2.17, 장창준, 내일계속)

장창준 선생님은
젊은 일꾼으로 통일문제연구자이다. 2001~2006년 동안, 남북공동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복관계 전문가로서 활발한 연구실적을 내놓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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