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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장창준의 토요시사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by anarchopists 2020. 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빌 리처드슨을 위한 변명
-12월 20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천만다행히도 20일 연평부대의 훈련은 큰 충돌 없이 끝났다. 북측은 “천하비겁쟁이들의 유치한 불장난에 지나지 않아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며 대응자제 이유를 밝혔다. 남측 정부는 “우리가 세게 나가면 북한은 항상 꼬리를 내린다.”며 북측의 대응자제 이유를 설명했다. 남과 북이 어떻게 설명하건 혹은 상대측의 발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건 간에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속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다.

20일 충돌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가설’
다만 몇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향후 정세를 전망하는 데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20일 상황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한치 앞도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었던 당일 오전 북측이 방북중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만나 ‘IAEA 사찰단의 복귀’를 합의했다는 점이다. 당장 당일 오후에라도 남북 사이에 대대적인 군사적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왜 이 같은 합의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둘째, 남측 군의 훈련이 생각보다 빨리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TV를 통해 속보를 지켜보던 필자는 이 사실을 대단히 의아해 하며 ‘오늘 상황은 종료되었다’는 판단을 하면서 자리를 일어났다. 며칠이 지나면서, 여전히 중간 중간 비긴 하지만, 대략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물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다를 가능성보다 많다는 확신은 있다.


첫째, 20일 남측군의 훈련이 축소되었다. 이 사실을 최초 보도한 것은 OBS뉴스였다. 21일 저녁 OBS 뉴스는 "K-9 자주포 12문 중 1문 만 사격에 참가해 4발을 발사하고 나머지 11문은 포신을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군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지난번 훈련 때 K-9 자주포는 훈련을 정상적으로 마쳐 상징적 차원에서 1문만 참가시킨 것"이라는 합참 관계자의 설명도 이어졌다. 즉 정작 훈련의 핵심이었던 K-9 자주포는 4발 발사되었고 발칸포가 1500발 넘게 발사된 것이다. 발칸포는 사정거리가 2~4km로 20일 훈련에 사용된 무기 중 가장 사정거리가 짧다.

둘째, 훈련 당일 미 합참의장이 현지 시각 19일 오후 10~12시까지 펜타곤에서 훈련을 직접 챙기면서 심야지휘 했다. 22일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보도된 내용인데, 아마도 확고한 한미동맹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의 기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를 주한미군이 유엔사 소속의 지위를 갖고 훈련을 참관하고 통제·교신·의료 방면에서 지원하기로 한 사실과 함께 분석해본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즉 ‘펜타곤-주한미군사령부(유엔군사령부)-연평 부대’로 이어지는 훈련 지휘·통제 체제가 가동되었다는 ‘가설’이다. 멀린 합참의장이 지휘를 했던 시간을 한국 시각으로 환산하면 20일 정오~오후 2시까지의 시간대이다. 훈련은 2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이 ‘가설’대로 한다면 미국은 위의 훈련 지휘·통제 체제를 가동하면서 훈련 시간을 제어했으며 훈련의 규모 및 사격 방향을 제어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셋째, 통일뉴스는 23일 김종대 편집장의 말을 인용하여 사격수역이 변경되었고 훈련시간도 단축되었다고 보도했다. 김종대 편집장의 의하면 20일 훈련에서 남측 군은 “훈련 시간이 1시간 반으로 단축됐고 탄착지점을 북한 NLL 쪽에서 조금 더 후방 쪽으로 내렸고, K-9을 한 대 밖에 투입하지 않았다.” 이미 김관진 국방장관이 21일 국회에서 탄착점 변경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질문에 “그것은 훈련 때마다 여러 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다르다”고 답변함으로써 사격구역이 바뀌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물론 이 같은 ‘가설’은 당시 훈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가능하다. 즉 애초 계획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 훈련의 규모와 성격이 바뀌었다면 정확하게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멀린 합참의장이 펜타곤에서 지휘한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야 이 가설은 검증된다.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 남측군이 이같은 정보를 공개할리 없으며 게다가 멀린 합참의장의 경우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같은 ‘가설’이 틀렸다는 증명 역시 어렵다는 점에서 이 ‘가설’은 향후에도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가설’은 미국의 대북정책의 향배에 따라 ‘간접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미국이 머지않은 시점에 빌 리처드슨 방북의 후속조치를 취하면서 북미 대화에 착수하게 된다면 이 ‘가설’은 보다 설명력을 갖게 된다. 즉 빌 리처드슨이 방북하여 20일 의미있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 합의를 오바마 행정부가 의미 있게 평가했고 그 평가에 기초하여 당일 연평도에서의 훈련을 미국이 ‘관리’했다는 것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처드슨의 방북이 갖는 의미와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리처드슨 방북 배경: 미국무부의 ‘승인’이 있었다
빌 러처드슨의 방북은 한반도 긴장을 북미 대화를 통해 풀고자 하는 북측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11월 23일 북측의 연평도 공격은 미국을 호명한 것이었다.(통일돋보기54호 참조) 그리고 빌 리처드슨을 평양에 초청했다. 따라서 11월 23일 이후 북측의 ‘도발적 행위 및 언사’는 ‘도발’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북미 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20일 북측이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남측의 훈련 변경 외에도 리처드슨의 방북 이후 상황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리처드슨의 방북은 북측의 호명에 미국(정확히 말하면 미국무부)이 응한 것이었다. 즉 미 국무부가 리처드슨의 방북을 승인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처드슨의 방북은 12월 8일 그가 직접 방북 사실을 밝힘으로써 확인되었다. 바로 그날 미 국무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리처드슨 주지사가 미 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갖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미국 정부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리처드슨이 방북하기 전에 그와 접촉할 것이며 방북 이후에는 그로부터 방북 결과를 보고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도의 사실만을 갖고 미국무부가 승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12월 23일 리처드슨은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요청으로 방북일정이 두 차례 연기됐었으며 “그들(오바마 행정부)이 (방북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승인’이라는 표현은 중요하지 않다. 진짜로 미 국무부가 승인하고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하여 승인하지 않은 척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 국무부와 방북에 대한 사전 접촉을 승인이라고 리처드슨이 해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리처드슨의 방북에 대해 미 미 국무부와 여러 차례 협의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19일 중앙일보의 보도를 주목해야 한다. 당시 중앙일보는 “북 “리처드슨 평양 와달라.” ··· 미, 두 달 전엔 “NO” 했지만”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성렬 유엔대표부 북측 대사가 지난 5월부터 리처드슨 주지사와 접촉하여 “천안함 사건을 포함한 여러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며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5월) 리처드슨의 방북 희망 의사를 전달받았으나 한국 측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7월 들어 유엔 안보리에서의 의장성명 발표 이후 미 행정부는 다시 리처드슨의 방북을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나 다시 한국정부가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기사가 나간 날 김영선 외통상부 대변인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고위인사들의 방북은 시기 등을 포함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는 브리핑 내용은 중앙일보의 기사가 사실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7월 19일자 기사는 미 행정부가 방북 일정을 두 차례 연기했다는 리처드슨의 발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방북을 추진했으나 한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쳐 미 국무부가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12월 방문은 미 국무부의 ‘승인’(행정적 승인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정치적 승인)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이번 ‘승인’ 여부를 놓고도 한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 정부의 반대가 통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예견되는 조건 하에서 미국무부가 리처드슨의 방북을 다시 보류함으로써 한반도를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방치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처드슨 방북 효과: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 열렸다
리처드슨은 만만치 않은 보따리를 들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우선 리처드슨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와 사용 후 연료봉의 해외 판매, 그리고 서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군사공동위의 개최를 북측과 합의했다. 6자회담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최근 서해에서 전개되는 위험스러운 상황에 대한 내용까지 합의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합의는 북미 당국간의 접촉을 통해 재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북측은 리처드슨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와 대화하고 싶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시했으며 IAEA 사찰단의 복귀와 사용 후 연료봉의 해외 판매를 합의함으로써 향후 북미 대화에서 미국과 협상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공은 오바마 행정부로 넘어갔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 같은 북측의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따라 북미 대화 재개 여부가 좌우될 것이다. 공은 오바마 행정부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리처드슨은 북미 대화의 산파역할을 담당해왔다. 2007년 2.13 합의 이후 BDA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난관에 봉착해 있을 때 리처드슨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었던 빅터 차를 대동하여 평양을 방문했다. 북측의 김계관 부상은 리처드슨을 만나 BDA 미해결에도 불구하고 2.13 합의 이행에 대한 북측의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 냈다. 결국 BDA는 해결되었고 그 해 10월 3일 비핵화 2단계 조치인 10.3 합의가 채택되었다. 2007년 4월 리처드슨의 방북은 10.3 합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2009년 8월 리처드슨은 당시 북측 유엔대표부 정무공사였던 김명길을 뉴멕시코주로 초청하여 “미국과 새로운 대화를 가질 의사가 있다”는 북측의 입장을 확인했다. 이 회동 이후 미국은 보즈워스 대북특사의 방북 시기를 조율했으며 그 해 12월 보즈워스가 평양을 방북했다. 리처드슨은 보즈워스의 평양 방문에서도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핵위기가 시작되었던 2002년 말에도 리처드슨은 북미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다. 2003년 초 리처드슨은 한성렬 대사를 뉴멕시코주로 초청하여 ‘NPT 탈퇴는 협상 입지를 개선하려는 전술적 조치일 뿐이며 핵재처리 시설 일부에 대한 검증 문제도 협상할 수 있다’는 북측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콜린 파월 당시 미국무부장관에게 보고했다. 이같은 과정의 결과 2003년 4월 북중미 3자회담이 개최되었다.



국내 냉전수구세력들이 ‘북한장사꾼’, ‘안보장사꾼’, ‘못믿을 인물’이라는 등 리처드슨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리처드슨의 방북을 애써 평가절하하는 이유도 바로 리처드슨 방북 효과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허풍떠는 외교장사꾼’, ‘북한 대외선전의 꼭두각시’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비록 험담하는 표현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리처드슨의 방북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것은 MB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리처드슨의 방북에 대해 “사적인 방문이며 미정부의 공식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반응은 다르다. 미국무부는 22일(현지시각) “북한이 국제사찰단을 받아들인다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북한과 논의하는 데 열려 있다”며 “민간 원자력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북측의 평화적 핵이용권 보장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북한도 국제원자력기구 감시 아래 핵이용 권리가 있다”는 중국측 입장과 유사하다.

이같은 발언과 더불어 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중단되었던 북미 ‘뉴욕채널’이 재가동되고 있다. 물론 ‘뉴욕채널’의 재가동은 리처드슨의 방북 이전의 일이지만 리처드슨의 방북 이후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다음달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북측은 중국에게 북미 대화의 중재를 요청해 놓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 정부도 북미 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놓은 상황이다. 1월에 개최될 미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역설할 것이며, 리처드슨 방북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 역시 북미 대화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MB 정부와 국내의 냉전세력들이 리처드슨 방북을 애써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바로 북미 대화 재개를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리처드슨의 방북을 두 차례나 반대해왔던 입장의 연장선에서 북미 대화 재개를 반대하는 국내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전쟁불씨, 평화수호 투쟁으로 잠재워야
물론 객관적인 상황 전개가 그렇다는 것이다. 여전히 전쟁의 불씨는 남아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20일 북측의 대응자제가 자신들의 강력한 ‘군사적 준비태세’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MB의 전쟁 불장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경기도 김포시의 애기봉 등탑에 점등을 함으로써 북측을 자극하고 있으며 내년 1월 8일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또한 연평도 포사격 훈련에 이어 경기도 포천 훈련장에서 F-15 전투기와 K-9 자주포를 동원해 대규모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은 동부전선 최전방 부대인 21보병사단을 방문하여 “인내가 평화의 해법”이 아니라며 강경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표시했다.

12월 20일의 위기는 모면했지만 그리고 평화의 해법이 모색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지만 남북 간의 충돌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초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측에서의 평화수호 투쟁의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남측에서의 적극적인 평화수호 투쟁이 전개될 때에만 향후 북미대화의 재개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이다.

리처드슨의 방북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단초는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미 군당국의 대북적대정책과 적대행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쟁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며 이 같은 불씨는 리처드슨의 방북으로 시작된 북미 대화 분위기를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12월 20일은 전쟁의 기운이 지배하던 한반도에서 평화의 기운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2월 20일 시작된 평화의 기운은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하고 대결과 분단의 구조를 강화하려고 하는 내외의 냉전수구세력들의 위험스러운 움직임을 폭로하고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투쟁이 전개되었을 때 거대한 힘으로 전환될 것이다. 냉전수구세력들이 비난하고 있는 리처드슨을 변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2010.12.24., 장창준)

장창준 선생님은
젊은 일꾼으로 통일문제연구자이다. 2001~2006년 동안, 남북공동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복관계 전문가로서 활발한 연구실적을 내놓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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