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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학교를 꼭 다녀야 하나

by anarchopists 2019. 1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2/03 06:4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학교를 꼭 다닐 필요가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교육’(敎育, education)의 목적은 동서양이 처음부터 달랐다.
동양에서 교육이라는 말은 중국 《孟子》(맹자)책 제7 〈진심편〉 (盡心篇上: 20장)에서 처음 나온다. 이에 보면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말이 나온다. 곧 사람의 세 기쁨 중 하나는 부모와 형제의 생존이고, 둘은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부끄러움이 없음이고, 셋은 천하영재를 얻어 가르침이다.(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 여기에 나오는 가르침(교육)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살펴보면, 교도(敎導: 가르치고 이끌어준다)의 뜻을 갖되, 이타(利他)의 목적이다. 그리고 영어의 education는 라틴어 educare(또는 educatio)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양육(養育)한다는 말로, 이 말 속에는 사람 안의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밖으로 이끌어낸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서양의 교육은 이기(利己)의 목적이 크다. 어쨌든 교육은 인간에게 ‘의도된 학습’(타율적 방법)을 시킨다는 뜻을 갖는다.

그런데 맹자가 말한 교육의 의미를 중국과 한국의 전통왕실에서 변질시킨다. 처음부터 제도교육은 전제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곧 교육기관은 관료양성소에 불과하였다. 서양도 고대와 중세는 동양과 마찬가지로 귀족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양교육이 있었을 뿐이다. 곧 귀족으로 살아가면서 피지배층(농민)을 지배하는데 필요한 소양(에티켓)을 교육받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대 학교제도, 즉 인간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오늘날의 진정한 교육목적이 등장하는 것은 서양의 중세 르네상스 전후인 12세기부터이다. 여기서 서양식 근대적 제도교육이라는 게 처음 생겨난다. 이러한 서양식 근대 학교교육을 18~19세기에 동양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근대적 학교교육이 전통적인 유가(儒家)정신과 결합하면서 한국의 학교교육은 출세목적, 취업목적이 되어버렸다. 제도교육의 목적이 인격배양과 참삶의 가치추구와는 거리가 매우 먼 이기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자본 취득이 목적이요, 그 방법을 배우는 장소로서 학교교육이 이용되고 있다. 정부가 학교제도를 확장(유아교육-대학교육)해 나가는 것은 자본가를 위한 부모의 노동시간의 확보 때문이다. 아동(학생)들을 학교에 붙들어 두는 시간을 길게 하는 것도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의무제 군대 유지와 함께 대학교의 수의 확대정책과 학생수의 증원책은 자본주의 사회 유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격도야, 지식배양과는 애초 거리가 멀다.

진정한 교육은 인격배양과 진보사회 형성에 있다. 학교가 사회를 발전(진보)시키지 못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학교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사회발전을 위한 이상(인격 배양)을 심어주지 못하고 사회에 헌신(진보사회 형성)하는 목적을 갖는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학생들도 학교생활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고 숙제를 왜 하야 하며, 학업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학교교육을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

국가가 자기 필요에 의하여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두는 강제를 행한다면 더 이상 제도학교의 필요성을 없어진다. 국가가 자본주의경제를 위한다면 제도교육을 줄이고 삶의 방편을 위한 학원교육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제도교육은 인격함양, 사회봉사, 삶의 목적 등 인간됨을 가르치는 교육장소로만 활용하고 실용적 교육은
수익자 부담(자본주이 사회이기 때문에)의 학원교육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하면서 무슨 사교육비를 따지는가. 복지자본주의로 가겠다면 공교육(중등학교까지)은 무상으로 하고 직업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원교육을 발달시키고 수익자 부담으로 하는 게 옳다. 지금 대학이 취업학원이 된 이상 대학교라는 간판을 떼라. 그리고 고등학교의 학습이 대학진학이 목적이라면,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는 대학이 무슨 필요가 있나. 대학을 모두 값싼 직업학교로 전환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게 반값등록금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국가의 통제와 인민에게 행하는 국가 힘의 작용을 최소화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가적 전통을 그대로 적용하여 아직도 너무 심할 정도로 국가의 힘이 남용되고 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높은 민주주의 국가로 갈 필요가 있다. 정말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나라사람들은 ‘사람답게 통치하려면’(government of the people), ‘인민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고’(by the people), ‘사람을 위한 것이 되도록’(for the people)해야 한다. 모든 사회제도와 국가정책이 국가를 위한 것이 되거나, 국가에 의하여 이루어지면 안 된다.

이제 참 민주주의로 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의 백년대계를 이루는 교육제도부터 ‘완전혁명’을 하자. 권력유지에 맞게 ‘부분개혁’을 하는 것은 그만 두자. 자본주의에 공헌하는 제도교육이 아닌, 국가목적에 기여하는 교육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을 만드는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만약 오늘날 한국의 제도교육처럼 한국의 부패하고 타락한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교육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더 이상 학교는 다닐 필요는 없어진다.(2013. 2.3, 취래원농부)


* 본문 내용 중 아래 사진은 뉴시스(2007.8.28일자)에서 따온 것임.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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