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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토요시사] 한국문화의 위기- 변소 그리고 물자원

by anarchopists 2020. 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6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국문화의 위기”
-변소문화와 물자원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전통문화는 수천 년의 역사적 경험과 관습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이 고유한 전통문화가 길게는 1870년대 근대화 이후, 짧게는 박정희 때 급격히 파괴되어 왔다. 농촌문화의 위기, 물자원의 위기, 음식문화의 위기, 주택문화의 위기, 의상문화의 위기, 교육문화의 위기 등 우리 전통문화의 파괴 현상은 이렇게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특히 전통적 주택문화와 변소문화는 박정희의 무지에 의한 새마을 운동으로 완전 파괴를 당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오늘날은 원초적 두뇌사고가 결핍된 행정관료들에 의하여 각종 전통문화들이 파괴당하고 있다. 이 중 물자원의 고갈과 관련하여 변소문화를 알아보자.

한국의 옛 변소문화는 가장 위생적이었다. 흔히 한국의 변소를 퍼세식(똥통을 땅속에 묻고 그 대변을 받아내는 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 알려지고 있다. 원래 한국의 변소는 퍼세식이 없었다. 퍼세식 변소시설은 근대화과정에서 나타난 서양 제국주의 침략의 산물이다.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보니 한국인이 맨 땅에 대변을 놓고 그 위에 재를 뿌린 다음 손으로 그 재 뿌린 똥을 채소 등의 거름(비료)으로 주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인이 서양인의 눈에 비위생적이고 야만인으로 비쳐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우리문화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다만 저들은 그들의 ‘서양문화 우월주의’에서 우리문화를 보았으니, 우리 변소문화가 그들 눈에는 야만적으로 보였으리라. 그러나 한국인의 변소문화에는 서양인이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한국인의 재래식 변소는 위생적일 뿐 아니라 과학적이었다.

한국인의 변소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질 수 없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변소문화였다. 한국인의 생산형태는 농경이다. 농경생활에서 농한기는 길고 추워서 온돌이라는 난방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온돌은 다른 연료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나무를 땔감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땔감은 필연적으로 재를 남긴다. 재는 화학적 용어로 수산화나트륨(NaOH)이라고 한다. 수산화나트륨은 알카리성 양재물=鹽基의 성분을 지니고 있다. 염기성분은 유기물질을 분해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농민들이 수천 년의 화전경험(火田經驗)을 통하여 터득한 사실이다. 재와 똥은 인간이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다. 이 버려지는 무용지물을 한국인들은 유용한 비료로 만들었다. 똥 비료는 한국인의 농업경제라는 생활조건에서 창출된 이상적인 비료였다. 여기서 변소문화도 창출되었다.

한편 한국인의 농토는 매우 협소하여 매년 같은 농작물을 심으면 흙이 산성화되고 수확량이 줄어든다. 또 공해 때문에 생기는 산성비는 농토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흙이 산성화되면 식물의 신진대사에도 영향을 주고, 필요한 영양분의 공급에도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 식물을 심어주면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서 염기성의 질소화합물을 만들어 흙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러한 원리가 우리 농부들의 오랜 경험 속에 축적되면서 재와 분뇨를 이용한 비료생산법이 창출되었다. 사람이 대변을 배설하면, 강한 산성의 유기물질(냄새박테리아) 때문에 역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대변을 놓고 여기에 재를 뿌리면, 재의 수산화나트룸 성분이 냄새박테리아를 즉시 죽인다. 그래서 똥냄새가 사라진다. 동시에 분뇨가 지닌 산성성분과 재의 염기성분이 합류되면서 독성이 없는 훌륭한 염기성 암모니아 질소비료가 된다. 이렇게 간단한 화학상식(생활의 지혜)을 이용하여 환경도 보호하고, 자원도 아끼는 조상들의 지혜가 집합된 곳이 한국의 변소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근대화 이후 늘어난 인구에 비례하여 도시의 주거공간이 턱없이 좁다. 이 탓에 도시에 아파트 주거문화가 기형적으로 발달하였다. 아파트는 좁은 공간을 가지고 거실ㆍ침실ㆍ부엌ㆍ변소를 모두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재래식 변소문화와 음식문화가 서양식으로 변질을 강요당하였다. 그렇지만 농촌은 아파트 문화의 침투가 더디다. 그래서 아직은 단독주택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단독주택에서는 전통적 변소문화가 유용가치를 가진다. 그런데도 군ㆍ면ㆍ읍 등 지역관공서에서 농촌의 모든 변소를 수세식으로 바꾸라 한다. 수세식 변소를 개량을 하지 않으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오늘날 전 세계가 “물 부족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물자원의 고갈이지만, 인간이 조금만 주의하면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물의 낭비가 심한 원인 중의 하나는 수세식 변소의 사용이다. 변기 속의 인분과 오줌을 씻어 내리기 위하여 1인당 하루 70ℓ의 물을 낭비하고 있다. 이것을 전 인류적으로 계산하면 물의 부족의 심각성은 보통 수준을 넘는다. 그래서 선진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변기의 물은 생활하수를 정화하여 재이용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들은 노력조차 안 하고 있다. 외국의 문명시설이 좋은 듯이 생각되지만 자기 조상들의 문화를 현대생활에 맞게 지혜를 짜내면 더 훌륭한 현대문명시설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관료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 관료들의 단순한 발상 때문에 남의 문화만 동경하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도시의 수세식변기의 물은 생활하수를 정화한 물로 재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나 주거공간에 빗물 담수시설을 의무적으로 만들어 그 물로 사용토록 한다. 농촌은 수세식 변소보다는 재래식변소를 개량한 포말세척식 변소시설을 하도록 권유해야 한다.(2010. 2, 취래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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