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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우리는 얼음을 지친 적도 없었다!

by anarchopists 2020. 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5 20:46]에 발행한 글입니다.

우리는 얼음을 지친 적도 없었다!

  벤쿠버 동계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그 기억은 가물가물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온갖 이데올로기들이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한국은 늘 기적 같은 메달을 바랐고, 인터넷 홈페이지들은 연일 모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금메달 기대감을 담은 화면을 띄우기 바빴다. 급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선수로 인한 특수를 원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진정 이 나라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를 간절히 바라서 그랬던 것일까? 메달을 딸 때마다 온갖 매스컴들은 해당 선수를 인터뷰하고 한국을 빛낸 위대한 선수인 양 그를 치켜세웠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기가 죽었으며, 그간의 노력들이 거품으로 돌아간 듯이 아쉬워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는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하든 못하든 태극 마크를 달고 열심히 뛰어 주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이름은 가치가 있다. 아니 자랑스러운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안타깝게 놓치는 날에는 일본 선수가, 미국 선수가, 중국 선수가 어떻다느니, 심지어 심판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우리 선수의 억울함을 투사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게 된다. 국민은 현실의 진실을 버거워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우리의 무의식적인 감정은 정작 현상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괜한 유아기적 병리현상과 같은 반일, 반미 감정만 더 부추기는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현상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성숙되지 못하고 건전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여전히 이성적이면서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매스컴도 예외는 아니다.

  반면에 외국의 선수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결승지점에 들어 온 것에 대해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나라의 감독과 동료들조차도 기뻐해주는 것을 보게 된다. 메달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통해 기량을 한껏 발휘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대견스러워하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유한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그 진리가 땀을 통해서 드러났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그 자랑스러움을 상실한 채, 오로지 메달 좀 더 솔직해지자면, 개인과 국가에게 돌아 올 가장된 진리 즉 잉여적 자본(혹은 잉여적 가치)을 빼앗긴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의 자본화된 왜곡과 변질이다.

  스포츠를 통해서 전 세계가 서로 화합하고 화해하며 이해하는 ‘우리’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 민족주의, ‘나’ 우선주의, ‘나’ 일등주의, ‘나’ 대학주의 등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우리 공동체’라는 표현을 쓸 때는 그 의미 안에 ‘더불어’, ‘함께’라는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공동체 놀이였던 동계 올림픽은 ‘우리에게 없었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말이다. 스포츠 상업주의, 신자유주의적 스포츠 문화 상품, 선진국들만의 잔치를 떠올리는 올림픽은 육체적 겨룸에서 나타난 본래적 인간의 진리와 그 공유된 스포츠 정신은 사라졌다.

  더 중요한 것은 스포츠의 본래 정신은 사라지고 이데올로기, 천민자본주의만 판을 친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문화 뒤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보았던 지젝(S. Zizek),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번 올림픽에서 특정의 선수를 겨냥함으로써,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자본을 위해 선수들을 세계적, 유목적 노동자, 특정 기업의 노동자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 측면에서는 지배 계급의 불평등과 불편함을 망각하게 하여 민중으로 하여금 눈을 감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결국 백성들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입혀서 춤을 추게 만들고, 어느새 우리 자신도 익숙한 옷 한 벌이 되어 버렸다. 세속적 의식(ritual)에 의해 수동적인 정보에 참여하는 백성들은 왜곡된 진실이 진리인 양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물어야 할 것이다. 선수들은 얼음 위에서 은폐된 몸의 진리를 드러내는 자국 백성들의 대표자였는가? 아니면 숨겨진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유목적 노동자였는가? 또 돌아 온 선수들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잉여 가치의 희생양이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소비자로 강요당할 것인가?

  일찍이 함석헌은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하는 얼이 모자란다... 철학 없는 국민이요... 이것이 큰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요즈음 이 말이 자꾸 되새겨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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