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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초월자의 발화와 종교인의 이성적 신앙

by anarchopists 2019. 11.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7/16 01:50]에 발행한 글입니다.

초월자의 발화와 종교인의 이성적 신앙


  성서는 초월자의 언어로 되어 있는 일종의 암호와도 같다. 그것은 풀어 밝혀야 이해될 수 있는 언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은 초월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한 인식과 행위의 기능으로서 작용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초월자의 언어 자체와 초월자의 언어로부터 유출(emanation)되는 것 사이의 구분, 즉 무시간적인 영원성이냐 아니면 시간적 유한성이냐를 식별하는 일이다. 인간의 믿음은 초월자의 언어를 깨닫고 그 언어를 자신의 삶의 근간으로 삼는 데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그 언어가 초월자 자체인지 아니면 초월자로부터 유출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은 강론자(설교자)로부터 발화(發話, utterance)된 언어 혹은 해석된 언어를 초월자의 말(logos)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서를 초월자의 것, 초월자에게 속해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 초월자의 언어가 시간적인 유한 세계에 들어와 가변적 형태의 언어가 되는 것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간은 신앙에 있어서도 이성을 통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저 성경에서 그랬다고 그래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걸로 하면 정성은 있는 것 같은데 이해 못해요. 그러니까 믿기도 해야 하지만 이해가 있어야 해요. 우리 이성으로 “아, 그렇지”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인간이란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것이라야 깊이 내 속에 들어와 내 의지가 움직이고 실행에까지 힘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치 모르고 그저 믿으라니까 믿는 거 좋지 않아요... 내게 이롭다니까 그러는 거지 도덕적으로 수긍을 한 게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인 다음에는 그 점을 인간의 일을 따져야 해요... 결코 인간 이성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게 아니라 그 말이에요. 인간 이성을 잘 이해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있어요. 아주 이치에 맞지 않고 되는 대로, 그런 게 아니에요.”(함석헌, 함석헌전집, 두려워 말고 외치라 11, 한길사, 1984, 19쪽)


  함석헌은 성서 혹은 해석되어진 언어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은 불완전한 신앙인식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성서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수용·수긍·긍정·실천이라는 신앙적 태도, 다시 말하면 신앙의 실천이성적 행위, 혹은 도덕적 행위로 나갈 때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함석헌은 믿음을 인식(이해)과 실천(도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신앙에 이성이 요청된다고 하는 것은 초월자의 발화를 바로 신앙화하기만 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냐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실천적 행위로까지 끌고 갈 것이냐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월자는 비상식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신앙적인 공통감각에 호소하여 모두가 그렇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어떤 신앙형식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이지 않다면 초월자도 상식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함석헌이 우리 자신의 이성
을 잘 이해하면 초월자가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의미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인간이성의 성숙성과 건전성이다. 건강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이성이 상식적이라 말할 수 없고 보편적이라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초월자의 발화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발화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이성이 성숙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의 행위가 상식이 될 수 있고 그 속에서 초월자의 발화 행위를 볼 수 있다.
 

발화 행위가 지각된다는 것은 곧 지각된 존재의 개현(開顯) 가능성과 더불어 그 개현으로 말미암아 인간 존재의 자기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래서 초월자의 발화에 대한 인식은 인간 가능성의 인식이라 말할 수 있다. 상식(common sense)이란 인간과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갖춰야 할 공통적 의미, 공통적인 감성으로서 보편성, 평균성의 잣대와도 같다. 인간 가능성이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초월자의 발화를 이성과 도덕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의 이성과 도덕을 보면 초월자의 일하심, 초월자의 나타남 또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초월자의 발화, 즉 성서가 참의 실재인가 아니면 거짓의 가상인가, 존재인가 비존재인가를 판별하는 것은 이성과 도덕이다.
 

성서는 초월자의 자기 계시 혹은 자기 드러내 보임인데, 이것은 초월자의 발화를 이해할 수 없다면 드러내 보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발화의 무의미함은 결국 무조건적 수용이나 무조건적 긍정이나 다름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발화 주체나 발화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함이 발생하
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성은 인식능력을 통하여 발화 주체와 발화의 이해를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가 이성을 거부하고 멀리하는 것은 발화 주체와 발화, 즉 초월자와 초월자의 언어를 파악할 가능성을 저버리는 것이다. 발화 주체와 발화가 초월자의 의미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는 이성 이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성은 질문하면서 초월자와 초월자의 발화와 마주서있다. 이 선험적 이성은 초월자 그 자체를 사유하고 신앙적 실천과 도덕적 실천의 가능성을 위해 발화에 대해서 이해하고 동시에 진리를 통일하고 비진리를 구별·분리한다. 또한 이성의 능력을 간파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종교 공동체일수록 초월자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고로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성을 계발하고 그것을 통해서 신앙에로, 초월자에게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을 무신앙이나 비신앙으로 치부하면 안 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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