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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뜻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종교적 지향성

by anarchopists 2019. 11.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7/05 01:47]에 발행한 글입니다.


뜻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종교적 지향성




WCC(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던 것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WCC는 그 시대가 처한 상황 속에서 들려지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시대의 문제에 응전하려는 태도로 일관해 왔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환경, 인권, 정의, 평화, 생명, 종교간 대화, 화해 등에 관심을 끊임없이 표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WCC에 딴죽을 거는 극단적인 보수 그리스도교 종단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껍질이 껍질을, 형식이 형식을, 외형이 외형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교라는 것도 기실 내용이나 질료라기보다 형식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속내용을 감싸고 있는 어떤 틀거지, 외형이라는 말이다.


종교가 종교 그 자체를 지시한다는 착각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착화된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이다. 종교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은 종교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본래의 속, 본질 전체를 다 드러내지 못한다. 종교는 말 그대로 대표성을 띠고 보편성을 띤 성질들을 모아 가리키는 개념(begreifen; Begriff)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종교, 즉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수많은 종교 이름에 얽매이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다 하는 사상이 기독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인도교에서도 나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요, 이야말로 앞으로 하나인 세계의 종교 아닐까?” 하나(to hen, ἑν)이신 분인 하나님, 하늘에 계신 하나이신 분인 하느님, 하나 자체(the Only One)이신 분인 일자(一者), 모든 사람의 마음속 하나하나에 계신 분인 부처님, 모두가 ‘하나’이다. 하나의 초월자가 이름을 달리 붙여서 개념화했을 뿐이다.


함석헌이 말하다시피 “방향이야 물론 반대지만 그 겨눈 것은 다를 리가 없다. 진리가 진리인 이상 둘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서로 제 믿는 바대로 뚫은 것이 결국에 맞구멍이 뚫리게 된 셈이다.”
옳은 말이다. 진리는 하나다. 진리를 말하되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과 다른 민족들과 다른 언어들이 있어서 그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는 하나 그 다름이 장벽이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종교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다. 자신들의 색깔, 자신들의 신앙 언어, 자신들의 신앙적 상상력, 자신들의 신앙 풍습, 자신들의 암묵적인 정서 등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니’(Nein!)라고 거부한다. 함석헌이 말하는 서로 만나고, 뚫리고, 관통하는 것이 한낱 이론이나 관념, 혹은 이상에 불과한 듯한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리와 주장과 생각과 싸움은 계속 되어야 한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가 단지 종교다원주의를 논하고 그로인해 일부 종단에게 위협과 불편함이 되는 발언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참으로,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이 가진, 종교인이 가진 높은 마음의 벽, 제도의 벽, 역사의 벽, 언어의 벽, 감정의 벽들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이 설파하고 있는 종교 논리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오직 뜻만이 있다고 주장한다. “절대에서 상대가 나오는 것도 뜻이요 상대로 하여금 절대에 돌아가게 하는 것도 뜻이다. 전체 속에 부분이 있게 하는 것, 부분 속에 전체가 있게 하는 것 다 뜻이다... 뜻이 없다면 존재도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시비도 선악도 미추도 생사도 있을 수 없다... 이 우주는 뜻을 가지는 우주요, 이 역사는 뜻으로 되는 역사이다.” 로고스(Logos), 브라만(Brahman)도 다 뜻이다. 다른 뜻, 틀린 뜻이 아니라 같은 뜻, 하나의 뜻이다. 함석헌은 말한다. “뜻이 알파요, 뜻이 오메가다.” 그러니 당파심을 버려야 한다. “종교의 위대한 교사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에게 모든 당파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왔다.” 종파를 내세우지 말고 파당을 만들지 말며 종단의 우월감도 갖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의 뜻인데, 뜻이 높고 낮음, 깊고 얕음, 넓고 좁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뜻만 좇아야 한다. 뜻으로 살아야 하고 뜻만 숭경해서 뜻을 밝히고 뜻을 새기는 종교인(참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종교보다 인간이 먼저다! 뜻에 대한 존재와 인식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뜻에 부합하고 뜻 속에 자신이 있는가 혹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애초에 뜻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뜻은 이미 한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뜻에 대한 지향성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묻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뜻의 지향과 그 본질이 의심스러운 것이라면 형식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의식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것이 뜻과 자신이 연결 불가능한 거리에 있다는 자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뜻에 대한 지향적 운동이 성실한가? 진솔한가? 진지한가? 그것이 중요하다. 종교는 스스로 물음을 달리해야 종교와 종교 사이, 종단과 종단 사이, 종파와 종파 사이의 넉넉한 사유 공간과 행동 공간이 확보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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