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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종교적 인간, 부처로 인해 숨을 쉬다

by anarchopists 2019. 1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5/17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적 인간, 부처로 인해 숨을 쉬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이 아무리 이성적 존재라고는 하나, 생물학적으로 볼 때 여느 동물에 비한다면 참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다. 신체 감각적 차원에서는 다른 생물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성 혹은 영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계를 사유하고 초월자에 대해서 신앙을 한다는 행위는 동물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간 외에 어느 생물도 종교나 의례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성과 영성을 가지고 자신을 창조한 초월자를 생각한다거나 인생의 허무를 경험하면서 초월자에게로 귀의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이한 존재 방식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교를 사유하고 초월자에 대한 고백 행위는 인간의 숨고르기라고도 볼 수 있다. 유한성을 가진 인간이 날마다 차오르는 자신의 숨을 고르면서 내면을 바라보고 종교라는 렌즈를 통해, 혹은 초월자를 통해서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해 보려고 하는 자기 초월의 방식을 모색하면서 세련된 의식 체계를 갖추고 초월자에 대한 정기적인 고백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함석헌은 민족성의 개조와 혁명을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민족성의 개조는 결국 자아의 개조에 돌아가 닿고 마는 것이요, 자아의 개조는 곧 나 찾음이요, 나 앎이요, 나 함이다. 나 봄이 아버지[전체] 봄이라면, 나 함이 곧 아버지 함이다. 밥 먹음이 곧 제사요, 옷 입음이 곧 미사요, 심부름이 곧 영예요[service], 정치가 곧 종교다. 그러면 혁명은 어쩔 수 없이 종교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혁명이 종교요, 종교가 혁명이다. 나라를 고치면 혁명이요, 나를 고치면 종교다. 종교는 아낙이요, 혁명은 바깥이다”(함석헌, 함석헌 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80쪽).


매우 간단한 논리 같지만, 함석헌에 의하면 종교란 자기 고침이다. 자기 숨고르기를 제대로 할 수 있으면 혁명이라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고침이나 자기 개조란 결국 자기가 자신의 의지대로 들숨날숨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 자신과 삶의 숨통을 잘 터주는가 못하는가를 보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 땅에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그 중에 인간의 고통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일가견을 가진 종교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불교다. 부처는 이미 오래 전에 인간 삶의 근본 바탈에는 ‘고통’이라는 것이 늘 달라붙어 있어서 인생을 괴롭힌다는 것을 잘 간파한 사람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착을 없애거나 자기라는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보았다. 살아가면서 물질에 대한 집착, 사람에 대한 집착, 공부에 대한 집착, 온갖 사물에 대한 집착 등 무수히 많은 일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나’란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열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쉬운 수행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처는 이렇게 인간의 고통스런 삶에 숨고르기를 해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인은 그리스도교만이 인간의 숨고르기[구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하고 오직 자신의 종교에 와서만 숨을 쉬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요즈음 WCC(세계교회협의회)를 가지고 일부 교단에서는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집단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종교다원주의란 말 그대로 근원이 되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수 있다는 관용적인 태도요, 저마다의 종교를 상호 인정하자는 성숙한 배려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를 종교다원주의니 종교혼합주의니 말해가면서 그 단체를 폄하하려는 것은 무지의 극치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세계는 인간의 숨고르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종교가 수없이 많이 있다. 오직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종교들이 각 민족을 살리고 개인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씨가 나요, 나의 뿌리가 하늘이다. 그러기 때문에 참 종교는 반드시 민족의 혁신을 가져오고, 참 혁명은 반드시 종교의 혁신에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혁명은 명은 곧 하늘의 말씀이다. 하늘 말씀이 곧 숨․목숨․생명이다. 말씀을 새롭게 한다 함은 숨을 고쳐 쉼, 새로 마심이다... 혁명이란 숨을 새로 쉬는 일, 즉 종교적 체험을 다시 하는 일이다. 공자의 말대로 하면 하늘이 명(命)한 것은 성(性), 곧 바탈이다”(함석헌, 함석헌 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80쪽).


그러니 ‘부처님 오신 날’ 멀리 나들이 가는 것도 좋지만 삶의 숨을 고르는 종교적 체험의 장인 사찰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인간 혁명의 대열에 참여하는 방법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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