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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의식의 사물화와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

by anarchopists 2019. 1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5/0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의식의 사물화와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



우리는 지금 스스로, 자처해서 의식을 사물화하고 있다.
의식을 사물화 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무엇일까? 의식은 사물과는 별개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지각한다. 사물은 인간에게 있어서 도구적이고 물질적이다. 사물의 사물성을 논한다 하더라도 사물 안에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생각․판단․지각하는 주체적인 이성의 기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식 바깥에 있는 사물은 분명히 의식과의 연관성에서 전혀 주체적이라 말할 수 없는 의식과 떨어져-있음이라는 존재론적 지평에만 속해 있다.


그렇다면 ‘의식의 사물화’는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식이 더 이상 사유하는 역할을 포기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의식은 이제 물건이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임의적, 수동적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나아가 의식은 정지된 채 있음을 의미한다. 사유하지 않는 1차원적 인간, 그러면서 동일하게 사물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인간은 의식의 작용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다. 여기서 자기는 의식이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이 사물화 되어 버린 인간은 사유를 통해 의식 안에 들어 온 세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없다. 사물의 본성을 띤 의식은 타자의 언어와 정보에 의해 지배당한다. 사물은 지배할 수 없고 지배당하고, 지배자의 처분에 맡겨지듯이 자신을 자신인 채로 소유할 수 없다. 자신의 비존재적 실존의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은 타자를 자신으로서 확인하지만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 연유로 의식이 사물화 되어 버린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사물이 된 것도 모르면서 잡담(한담/객설)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무심결에 바라보는 사물, 대상, 사건, 심지어 사람조차도 사물화 된 형태로서의 의식으로 바라본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교육 등은 우리 자신의 의식을 사물화 하도록 강제한다. 엉겁결에 담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존재자가 시간의 무한한 퇴락으로 빠져 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무심코’, 즉 자신 스스로가 의식의 사물화가 된 것을 모르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인식은 책임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면 인식조차도 이성의 결여나 다름이 없다. 의식의 결여된 상태는 의식의 사물화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이렇듯 의식의 사물화와 의식의 결여는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타자를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항상 무엇을 향한 의식으로서 바깥 실재에 대한 배려와 관심 없이는 의식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이는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KrV., B75)라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의식 바깥의 대상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온전한 인간 존재, 이성적 존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타자의 인정 없이 어찌 어떻게 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타자의 인정과 배려가 없는 인간은 의식이 결여된 존재로 봐야 한다. 게다가 자신의 의식조차 대상화, 물질화시켜서 비생명적인 사물성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 국가와 사회 곳곳에서 평균 인간, 평균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식이 사물화되고 심지어 의식이 결여됨으로써 인간 현존재는 하나의 사물처럼 규격화, 수량화, 수치화되고 만다. 현존재의 모든 사유와 행위는 모두 동일화되고 그에 따른 인간의 문화 또한 획일화된 채 또 하나의 계급 구조와 권력을 갖게 된다. 평균 인간, 즉 평균적인 현존재는 막연한 불안과 현대 기계 문명(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공포로 자신의 의식을 사물적인 것에 의존하고 거기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 순간 현존재의 의식 작용은 주체적인 자의식의 활동과 판단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타율, 타자적 의식에 동조하고 그에 의해서 조작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재는 자신의 의식이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착각하고 사물적인 것에 저항하기보다는 사물
적인 것이 갖고 있는 사물성에 끌려가고 만다. 현존재의 의식과 의지, 삶의 주체성은 온데간데없이 오로지 한담(閑談)거리, 공담(空談, leeres Geschwätz)거리의 삶만을 끌어안고 무게가 있는 삶의 진지함과 진정성에는 눈을 가린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물적인 것과 사물성을 비판하기보다 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사물이 되어가고 있는 현존재의 의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그 의식을 사물화시키는 사물적인 것의 구조와 사물적인 것을 포함하는 세계 일반에 대한 엄밀한 반성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의식은 여전히 의식이 아니게 되며, 삶은 가벼운 일상의 차원으로 전추하여 거슬러-나아가지-못하는 의식-없음, 이성-없음이라는 현존재 그 자신의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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