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일 정신분열증 환자, 제5열 소리 듣고도 ‘할 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
이같은 ‘박달나무’의 적반하장격인 논거와 주장은 향후 군사정권을 옹위하고 찬양하는 지식인ㆍ언론인들의 이론체계가 되었다. 이 거물급 언론인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다. 함석헌은 또 비슷한 시기에 한 일간지에〈정부당국에 들이대는 말〉을 몇 회에 걸쳐 썼다. 이에 대해 같은 지면에 이(李) 모라는 사람이 “예의와 겸손이 티끌만치도 보이지 않으며 일체의 권위를 병적으로 부정하고 계십니다. 지나친 현실부정으로 사회질서에 무엄한 도전을 하였습니다.… 무녀의 주문같은 글귀나 마법사의 요술처럼 꽈배기 논조로 군인을 후리치고 군인간의 이간을 획책하시니 어쩌자는 것입니까.” 라고 독재정권의 대리전에 나섰다.
함석헌은 투옥ㆍ미친놈ㆍ제5열ㆍ간첩ㆍ노연극배우ㆍ매명선동가 따위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박정희정권은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대일 식민지배상, 문화재 반환 등 많은 것을 묵인한 채 밀실에서 한일 굴욕회담을 추진했다.
정부는 매국적인 외교를 집어치워야 한다. 툭하면 한ㆍ일 회담을 조속히 해야 한다고 서두는 너, 제2의 이완용을 자처하면서 하겠다는 너, 말마다 방정맞게 국운을 걸고라도 하겠다는 너는 정말 이 나라의 정부냐? 일본의 정부(情婦)냐?
한일 굴욕회담 과정에서 수많은 비판의 글이 나왔지만, 함석헌의 이 글은 짧은 문장속에서도 백미를 이룬다. 이후에도 외국의 ‘정부(情婦)’ 노릇을 해 온 권력자ㆍ 정권은 줄지 않았다.
함석헌의 언론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어느 매체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어느 신문의 주필에 못지않는 영향력을 발휘했고, 당대의 논객으로 활약하였다.『사상계』가 제정하여 1963년도에 함석헌을 첫 수상자로 시상한 ‘월남언론상’은 그의 공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유당 치하에서는 이승만 독재에 항거「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등의 많은 글을 써 투옥된 일도 있으며, 5ㆍ16군사혁명 후 언론이 심한 통제를 받던 당시 「5ㆍ16을 어떻게 볼까」(사상계) 라는 글을 썼고, 이 글은 군사혁명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라 국내외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특히 민정이양을 앞둔 금년 봄에는 조국의 장래를 염려타 못해 유럽 여행까지 중도에서 그치고 귀국하여 글로, 강연으로 우리 민권투쟁의 선봉에 서서 싸웠으며「삼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라든가「정부당국에 들이대는 말」을 써서 위험과 박해를 무릅쓰고 언론투쟁의 선봉에 섰던 것은 우리 국민이 다 아는 사실로서 씨가 우리나라 언론에 끼친 공헌이 큰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박정희 정권의 지배방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랄해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언론을 제도화하고 비판언론인에게는 족쇄를 채웠다. 말을 듣지 않는 언론인은 언론계에서 추방하거나 관직 등으로 매수했다. 함석헌의 경우처럼 특정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고 관직에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욕의 논객에게는 지면을 빼앗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정부의 언론탄압이 심해지자 함석헌은 ‘언론의 게릴라전’을 주창하고 나섰다.
박정희는 1967년 5월 제6대 대통령선거와 6월의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66년부터 언론탄압과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최영철기자 테러사건이 일어나는 등 언론탄압이 심해졌다. 야당은 분열되고 대학가는 거듭된 무장군인 난입과 위수령 등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 비판적인 언론(인)을 통제하기만 하면 재집권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정권은 제7대 총선에서 개헌선을 통과해야만이 3선 연임금지의 헌법조항을 고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부정ㆍ관권선거를 위해서는 언론통제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 선생님은 최근에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을 쓰셨고, 날카로운 필치로 주로 인물평전을 많이 쓰셨다. "안중근평전", "백범김구평전", 녹두전봉준평전", 만해한용운평전", 단재신채호평전" 등이 있으며 지금은 오마이뉴스에 "장준하평전'을 연재하고 계신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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