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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국회 날치기와 4대강사업의 강행

by anarchopists 2020. 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9 07:25]에 발행한 글입니다.


2011년 예산안,
국회의 날치기 통과와 4대강사업의 강행

12월 8일, 한나라당이 2011년도 예산안을 예산국회 회기 종료일(12.9)을 하루 앞두고 날치기 통과시켰다. 2010년 국회 마지막 회기, 예산국회에서 집권여당의 양아치추태가 드러났다.
예산국회의 초점은 4대강 개발사업에 있었다. 여당은 “4대강사업에 타협이 없다”는 주장이고, 야당은 “4대강사업이 국민들이 반대한 대운하 사업의 사전사업이기 때문에 그 예산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011년 국가예산안의 날치기 통과와 관련하여 민주주의와 독재자들의 국정실패 등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국회가 무엇인가, 한국의 국회는 단원제이다. 그래서 한번 통과되면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다. 입법부와 의원의 국민에 대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날치기 통과라 하더라도 국회법상 ‘절차의 하자’가 없으면 유효하다. 이게 문제이다. 집권 여당이 다수당인 경우, 얼마든지 ‘절차상 하자’를 남기지 않고 여당이 이끄는 행정부의 정책 곧,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이 정치철학이나 자기 소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정치윤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소속당의 당략에 대부분 휩쓸려서 임기를 채우고, 다음 선거에서 재선되기만을 기대하는, 곧 먹을 것을 향해 꾸준히 시궁창을 뒤지는 쥐의 습성을 닮았다.

뭐가 민주주의인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인민(the people,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이를 국민으로 이름하고 있다)의 주권을 억압ㆍ구속ㆍ속박하지 않기 위하여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수반한다. 그리고 삼권분립(입법, 사법, 행정)을 원칙으로 한다. 삼권 중의 하나가 입법부이다. 그리고 삼권분립의 취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 다음이 사법이다. 그런데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이 야합을 하면서 자본의 축재를 위하여 행전권력이 앞의 두 권리를 앞지르고 있는 추세가 오늘날 자본주의국가들이다. 그래서 자본권력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농락당하고 있는 게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자본주의국가들의 일반적 추세이다. 그 전형이 한국이다. 이 때문에 입법부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에 취하여 의원의 소신을 망각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제의 2011년도 국가예산안에 대한 양아치식 날치기 통과가 아닌가.

지금 행정부 수장의 ‘개인적 성취감’을 위하여 강제되고 있는 ‘4대강개발사업’은 경상도 일부 주민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행정부의 독재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행정부 수장의 개인적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삼권분립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도 된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독재자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을 알린 일”, “오늘 일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깃발 하강식이었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강아지에 불과했다”(경기신문, 2010. 12. 09일자)는 이 말이 새삼 우리의 귀를 울리고 가슴을 때린다.

지금 ‘4대강 개발사업’의 영향은 어떤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2012년의 총선을 의식한 때문일까. 그렇다면 차영 대변인의 “대통령의 충성스런 강아지”라는 말은 더욱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라는 의미에서 존재한다. 행정부 수장의 ‘충성스런 개’가 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지금 4대강 개발 사업 하나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내내, 편협 된 국가예산이 운영되고 있다.
이 바람에 농촌경제가 말이 아니다, 농민들이 보조를 받아야 하는 ‘FTA보조사업’은 그 예산이 엄청나게 삭감되어 농촌과 농민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또 하루빨리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 이 나라가 복자국가 문턱에서 멈춰서고 있다. 또 통일을 하여 민족주의를 완성해야 할 이 나라가 통일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더구나 다가오는 미래 경제는 ‘자본적 경쟁력’이 아닌 ‘문화적 경쟁력’이고 ‘환경적 경쟁력’인데, 이를 무시하고 자본적 경쟁력만 강화하는 바람에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삶의 행복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문화적 경쟁력’과 ‘환경적 경쟁력’의 인프라는 바로 인문주의 부흥과 자연환경의 보존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모두 파괴하고 있는 것이 4대강 개발사업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4대강 죽이기 사업’, 한국의 ‘미래 죽이기 사업’이라고 하는 게다.

무지한 일부 학자들과 대중들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사업이 한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사업이 이 나라는 어찌 만들었는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한국경제를 수출위주형ㆍ금융특혜형ㆍ정경유착형ㆍ대외의존형 자본주의국가를 확립시켰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부조리, 부패, 비리 등 악순환이 재생산되었다. 이 결과, 지금 한국사회는 자본집중, 빈부심화, 저성장율, 실업률 중가, 귀족노동계급의 형성 등 비정상적인 사회구조와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인간적 범죄구조가 꽈리처럼 꿰어있다. 또 새마을운동은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문화를 파괴시켰다. 그 전형이 농촌개량이다. 농촌은 태생적으로 자본주의일 수가 없다. 그런데 농촌에 자본주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농민들의 전통적 정서와 함께 민족문화를 파괴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은 한국인에게 정신보다 물신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한국농촌으로 하여금 전통적 문화가치를 무시하게 만들었다. 전통적 문화가치의 상실은 한국인의 정신상태를 공허하게 만들어놓았다.

앞의 독재자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이 한국인의 정신상태와 전통문화의 가치를 파괴한 것처럼 이명박의 ‘4대강 살리기 운동’도 한반도 금수강산의 자연환경 파괴와 함께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문화를 동시에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4대강 개발사업을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이 나라의 경제와 자연과 정신을 한꺼번에 죽이는 사업이라고 말하는 게다. 물질적 이익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성서에서 말한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마태오 4장 4절)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는 물론, 예술과 교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죄다 “돌 가지고 빵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이 나라 자연을 죽이고, 문화를 죽이고, 정신을 죽이고 있는 4대강 개발사업의 강행을 위한 예산 때문에, 이명박 행정부와 입법부 여당(한나라당)이 민주주의를 짓밟고 죽여서야 되겠는가. 지난 6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말을 되새겨보고 싶다. “(전략)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정쟁(政爭)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국민은 실익이 없는 정쟁을 치르고 무의미한 승리나 챙기라고 나를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발리 민주주의 포럼>에 참석차 떠나기 전에 입가에 웃음을 가득 지으면서 한말과 대조된다. “새해 예산안이 정기국회 회기 내에 (날치기?)통과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뉴시스 12.8)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뭔지를 알아서 민주주의 포럼에 참석하려 가는지. 산 속의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면서 대지에 허옇게 쌓인 눈밭을 허공에 흩어지게 하는 모습이, 이 나라 민주주의가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 같아 쓴 웃음을 지어본다. (2010.10.9. 새벽,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와 한겨레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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