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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장창준의 토요시사] 75%받았으니 75% 비핵화하라

by anarchopists 2020. 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3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75% 받았으니 75 비핵화하라?
- ‘평화 훼방꾼’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

5개국이 약속한 100만톤의 중유 중 75만톤을 북한이 받아갔으니 그만큼은 비핵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산술적으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MB 정부는 75%의 비핵화 조치로 국제원자력기구 감시검증팀 복귀와 핵시설 동결 선언을 예시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북한이 이 같은 제안을 일축할지 심각하게 고려할지 두고봐야 할 것이지만(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에 앞서 MB 정부의 삐뚤어진 시각이 지적되어야 한다. 산술적으로 치자면 75%의 약속이행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외교적으로 치자면 약속 불이행이다.

100의 양을 갖는 적대정책이 75의 양을 갖는 적대정책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적대정책이 사라진 것인가. 25의 양만큼 적대정책이 사라졌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75의 양만큼의 적대정책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적대정책의 지속이다. 즉 외교에서 수치의 의미는 수학이나 경제학에서 갖는 수치의 의미와 같을 수 없다.

좀 더 쉬운 비유를 들자면 이렇다. 100의 힘으로 누군가가 나의 얼굴을 때리다가 75로 그 힘을 줄여 나의 얼굴을 때린다고 해서 ‘나의 얼굴을 때리는 행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몰상식한 사고임에 명백한 발상을 MB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만약 위와 같은 주장을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가 했다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모두 중유 제공의 약속을 완전 이행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완전 불이행했으며, MB 정부는 부분적으로 이행했다. MB식의 산술적 사고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MB 정부의 대북 요구는 75%의 의미만을 갖는다. MB 정부가 제공하기로 했던 20만톤 중 5만톤 상당의 중유는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그와 같이 주장하면서 MB 정부의 제의를 반박한다면 MB 정부는 어떻게 응수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핵화 중단이라는 약속 불이행과 중유 제공 약속 불이행의 선후차문제를 따져보자. 북한이 불능화에 속도조절에 나선 결과 중유 제공 약속이 불이행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유 제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2.13 합의와 10.3 합의에 없었던 검증 문제로 인해 2008년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결렬되자 북한이 비핵화에 속도조절에 나섰다. 그 후 2009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안보리 대북 제재가 의장성명으로 채택되자 북한은 불능화를 중단하고 핵실험까지 강행하게 된 것이다.

일본이 끝내 중유 제공을 거부함에 따라 한국과 미국 정부가 일본을 대체할 중유 제공 국가를 찾기 위해 팔 걷어 부치고 나섰던 것 역시 약속 불이행의 1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MB 정부는 마치 북한이 불능화를 중단했기 때문에 중유 제공이 75%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따라서 북한이 먼저 75% 만큼의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6자회담이 가능하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삐뚤어진 시각으로는 결코 MB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주도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주도하기는 커녕 꽁무니도 따라잡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평화 훼방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2010.10.25., 장창준)

장창준 선생님은
젊은 일꾼으로 통일문제연구자이다. 2001~2006년 동안, 남북공동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복관계 전문가로서 활발한 연구실적을 내놓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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