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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남북관계 진전과 작계 5029의 엇박자

by anarchopists 2020. 1. 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1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남북관계 진전과
작계 5029의 엇박자


커트 캠벨이 한국에 와서 “남북관계 진전 있어야 북-미 대화”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우리(미국)는 남북 간에 대화와 관여의 신호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과정이 이어졌으면 한다”는 발언은 남북 관계가 진전되기 전에 북미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미국은 작년 8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고 난 후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방북하는 등 ‘선 남북관계 진전, 후 북미대화’의 도식을 밟아오기도 했다. 따라서 커트 캠벨 차관보의 발언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캠벨의 발언이 ‘선 남북관계 진전, 후 북미대화’라는 도식을 무조건 따른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만약 작년 8월 클린턴의 방북이 없었다면 남북관계 진전이 가능했을까. 상당히 회의적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동안의 역사적 과정도 그랬다. 1994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었고(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그 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그 해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 표면상으로 보면 한반도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커트 캠벨이 얘기했던 ‘선 남북관계 진전, 후 북미대화’라는 도식을 밟아왔다.

그러나 그 내막을 보면 그렇지 않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과 핵문제에 대한 ‘김일성-카터’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한 해 전에 ‘미사일 발사 유예 선언’을 함으로써 북미 미사일 회담에서 진전을 보았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 해 초 발표된 6자회담 2.13 합의가 중요한 배경이 되었으며 2.13 합의는 2006년 말 북미 양자접촉의 결과였다. 따라서 커트 캠벨이 제시한 도식은 아래와 같이 바뀌어야 한다.

‘북미 정치적 대화의 성과 → 남북 관계의 진전 → 북미 쟁점의 타결’

만약 이와 같은 도식이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커트 캠벨의 발언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즉 커트 캠벨이 남북 관계의 진전을 북미 대화의 첫 단계로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려 하고 있으며, 현재 다른 변수로 인해 북미 대화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의 속내를 털어냈다는 것이다. 이 걸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남측 당국에 남북관계의 진전을 간접적으로 촉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캠벨의 “(남북관계 개선 정도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한국인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발언은 바로 위의 해석에 좀 더 무게감을 준다. 남북 관계가 개선됐는가 여부는 ‘한국인들의 결정’ - 다분히 정치적 멘트이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결정‘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즉 남북 관계의 진전 여부에 대한 평가는 이명박 정부가 내려야 한다는 뜻을 갖는 발언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 관계 진전의 평가 주체라는 말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논의가 전개된다면 정세에 대해 상대적인 낙관을 가능케 한다. 한미 양국이 북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국정부만이 반대하고 있으며 캠벨의 발언은 이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요소가 추가되었다. ‘작계 5029’가 그것이다. 한미 양국은 김정은 후계 체계에 따른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작계 5029’를 보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한미 양국은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 공동성명에 북한의 '불안정 사태'라는 문구가 처음 명기하기도 했다. 작계 5029를 현실화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다.

혼란스럽다고 표현했던 이유는 작계 5029는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효과보다는 더욱 격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작계 5029는 북측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의도에 대해서도 북측은 회의하게 될 것이다.

남측 역시 자극할 것이다. 이미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북고립압박정책을 유지해왔던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그 정책의 지속과 강화를 유지할 수 있는 너무도 명확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극은 캠벨이 언급했던 ‘선 남북관계 진전, 후 북미대화’라는 경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결국 상황은 다시 꼬여갈 것이다.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북측은 지금까지 상당한 유화정책을 추진해왔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었다. 그런 북측에게 ‘작계 5029’의 보완은 그같은 움직임을 주춤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이 ‘작계 5029’의 직접적 효과라면, 북측의 평화공세 지속되더라도 결국 남측 이명박 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이 지속함으로써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간접적 효과이다.

작계 5029는 필연적으로 남북관계 진전과는 엇박자를 내게 된다. 오바마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무책임한 언술을 내뱉을 것이 아니라 대북 정책 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북 정책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미국 관리가 ‘남북 관계 진전’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남북관계는 진전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2010. 10.13, 장창준)

장창준 선생님은
젊은 일꾼으로 통일문제연구자이다. 2001~2006년 동안, 남북공동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복관계 전문가로서 활발한 연구실적을 내놓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중 사진은 다음 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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