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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일요칼럼-김조년] 뇌물에서 자유로울 자 누가 있는가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2 08: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놀다 간 자리

우리가 한 세상 사는 것은 그냥 한 바람결을 지나는 것뿐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누가 말하였듯이 그냥 소풍 나왔다가 떠나는 자리다. 그 자리는 영원한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그저 한 순간일 뿐이다. 그냥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시 이마에 흐른 땀을 식히거나 피곤한 허리를 펴고 다리를 주무르며 머물다 가는 것 같은 자리다. 그 자리는 그래서 언제나 기쁘고 즐거울 필요가 있다.

인생이 괴롭고 처절한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참 어리석다.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그 자리가 마치 영원한 바윗덩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아니, 그 자리에 앉은 자기 엉덩이가 마치 그 바윗덩이와 하나가 된 듯이 보이는 모양이다. 헛것을 보고 산다. 아니, 그것이 허깨비가 아니라 실체이기를 바라면서 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갖 추잡한 짓을 다 동원하여 조금이라도 그 모양을 길게 하려고 기를 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역사가 말하고 사람들이 말하고 진리가 그토록 간절히 말하건만 사람들은 그 말을 또 다시 듣지 않는다. 그래서 탈이다.

말은 최근이라고 하지만, 항상 있던 그 일 때문에 오늘날 몹시 시끄럽고 비참하고 안타깝고 분하고 허탈하다. 삼성의 이건희가 어마어마한 비자금으로 온갖 곳에 뇌물을 뿌렸다고 얼마동안 야단법석이다가 그냥 그렇게 사그라지듯이 잠잠할 때, 태광의 박연차가 여기저기 뇌물을 마구 뿌려댄 것이 탈이 났다고 떠들썩한다. 전 대통령과 그 주변과 또 현정권의 ‘실세’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손길을 뻗혔다는 것이다. 그 액수로 보아서는 별로 심각하게 볼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고질병인 뇌물이라는 괴물을 잡기 위하여서는 매우 귀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일반 시민들이 그놈들은 다 그러려니 하던 때 같으면 그래도 충격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주변인들은 돈에 오염되고 더러운 물을 대신 퍼마시고 뒤집어쓰는 것이 있었을지라도 ‘그’ 대통령은 좀 깨끗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 전임 대통령들은 말년에 가족들이나 주변 실세들이 더러운 돈에 얽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식물대통령’으로 지내던 것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그 자리에 앉았다 가는 사람들이 좀 제대로 놀다가 깔끔하게 떠나기를 바랬다. 특히 그가 매우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알려 졌고, 많은 부분 그렇게 하였고, 또 깨끗하게 정치를 하여 보려고 맘먹고 실천하려고 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그가 떠난 자리는 좀 깔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직 그에 대한 것이 다 들어난 것은 아니라 판단이 빠를 수도 있지만, 그를 보든 시민들에게 주는 낙망의 깊이는 참으로 크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실세는 어디에도 없다. 다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풍선이와 같은 그 바람에 ‘실세’라는 이름을 붙여 뇌물을 준다. 뇌물은 참으로 묘하다. 같은 물건이라도 깔끔한 선물이 되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빛나게 하지만, 그놈이 뇌물이 되면 사람과 세상을 아주 더럽게 만든다. 아마도 오늘 우리 사회가 이 모양으로 뇌물사회가 된 것은 조상 대대로 뇌물에 한 맺힌 원혼들이 수두룩하게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 원혼들이 하늘과 땅과 인정을 떠돌기 때문에 이렇게 뇌물사회로 우리 사회가 고착된 듯이 된 모양이다.

깔끔한 삶 그 원혼들을 달래줄 필요가 있다. 뇌물은 모든 사람을 종, 노예로 만든다. 준 놈이나 받은 놈이나 누구든 일단 그 놈을 주고받는 순간 노예로 급전직하 전락한다. 한 치의 양보나 터럭만큼의 인정도 없이 뇌물을 주고받은 놈들은 다 노예로 산다. 불안한 일생을 산단 말이다. 그것이 대물림한다. 그런데 뇌물이 사람을 썩게 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엄격히 따지면 이미 썩고 노예가 된 맘에 뇌물은 꼬인다. 그러니 경찰이나 검찰 또는 어떤 사정기관이 결코 뇌물을 막을 수 없다. 또 그 기관들이 미리 무엇을 펼 수 있는 제도와 행동이 없는 한 언제나 청소하듯 하는 사후처리로서는 결코 뇌물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허세나 죽은 정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으로는 결코 부패와 부정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달라지지 않는단 말이다. 또한 죽은 힘을 이리저리 처리하는 것 역시 의미 있게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죽은 권력, 사라진 권력이 잘못 놀고 간 그 자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덮고 가란 말 아니다. 물론 깨끗이 청소하여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서 팔팔하게 이른바 ‘실세’라고 착각하면서 놀고 있는 그 정권과 힘 주변에 몰려드는 부패와 부정을 더 자세하고 세게 살펴야 한다.

그러니 사람들아 너무 지나간 잘못을 파헤치는 것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지 말자. 누구인가 기대했던 이가 잘못하였다고 너무 실망하지도 말자. 원래 권력은 돈과 합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훌훌 털고 내 살 길을 찾아보자. 이제까지 그런 관행과 전통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좀 그런 일을 하였다고 어디 세상이 빠개지기라도 하던가? 그렇다고 그냥 좋은 게 좋다고 덮자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기적을 기대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 대신 우리 생활에서, 정치에서 돈돈돈 하지 말자. 그 영혼과 상서로운 기운이 없는 검고 음흉한 돈을 생각지도 말자. 그 대신 평화와 화평의 기운이 넘치는 돈, 내 삶에 기쁨과 행복을 주는 생명의 돈, 영혼이 깃들어 있는 돈을 만들 것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민중이, 시민이, 씨알이 이러할 때 어떻게 정치계나 기업이나 관료계에서 썩은 돈 냄새가 풍겨날까? 맘 하나 이렇게 잘 먹고 사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과 같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거기에 희망이 있지 결코 정치가에게는 희망이 없다. 대통령을 믿지 말자. 기업을 믿지 말자. 그 대신 서로 깊은 맘을 알아주는, 평범한 삶 속에서 깨끗하게 살아보고자 맘 고쳐먹어 보는 우리 자신을 믿어보자
.(김조년, 2009. 4. 10.)

김조년 선생님은
■ 김조년 선생님은 현재 한남대학교 사화복지학과(사회학) 교수로 계신다. 함석헌 선생님과 많은 교류를 하시고 함 선생님이 서거하신 뒤에는 “함석헌기념사업회” 감사,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등을 맡고 계신다. 그리고 한남대학교에서 '함석헌과 한국사회'란 제목으로 사이버강의를 개설하고 있으며. 격월간 “표주박통신” 주필을 맡고 계신다.
■ 그 외 자본주의 대안운동으로 “대전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 이사장, “대전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전 공동의장)을 맡고 계신다.
■ 저서로는 “사랑하는 벗에게”, “성찰의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 “평상의 편지”, 카토 본트여스 판 베에크,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번역본) 등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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