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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일요시론-황보윤식] 무덤문화 바로 잡자

by anarchopists 2020. 1.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9 09:31]에 발행한 글입니다.


죽은 사람보다는 산사람 중심으로 생각하자
-왜곡되어가는 무덤문화 바로 잡을 때이다-


1. 인간은 자기 가족과 친인척 중 누군가 죽으면,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고 안식처(무덤)를 만든다. 그리고 가족들은 제(祭)를 올린다. 무덤은 사전적으로 사람의 주검(死體)을 매장한 시설물 및 기념물을 말하지만 어원은 죽은 자를 ‘묻고 덮는다.’라는 움직씨가 이름씨로 변화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개념상으로는 유택(幽宅)이라 한다. 죽은 자의 저승집이라는 뜻이다. 우리민족은 중기구석기(슬기사람, 약 7~8만년 전)부터 주검을 매장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신석기까지 무덤은 우리 민족공동체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조상 및 부모공경사상에 의한 순수한 효(孝)사상의 발로였다. 이렇게 ‘순수한 효사상’의 상징이었던 무덤은 지배계급이 발생하면서 이들에 의해 크게 왜곡되고 변질된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최고 지배계급인 왕족의 무덤은 능(陵)으로 불리고, 기타의 무덤은 묘(墓)라 부른다. 봉건적 신분사회를 반영한 탓이다. 그리고 고대사회(남북국시대)까지 능묘를 고분(古墳)이라 한다. 고분에는 피지배계급 서민의 묘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만나는 고분들은 권력과 재부를 독점하던 지배계급의 상징물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왜곡된 무덤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남한 사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산저산 곳곳의 지상에 기형적인 ‘석곽가족납골묘’를 설치하는 또 다른 변질된 무덤축조양식이 전라ㆍ경상지방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크게 잘못되었다. 이에 우리나라 무덤문화의 본질을 살펴보고 그 대응과제를 말해보고자 한다.

2. 그러면 우리민족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온 무덤문화가 어째서 왜곡되고 변질되었는지를 알아보자. 우리민족의 무덤은 신석기시대 모계씨족사회에서는 민족구성원이 똑같이 돌무지무덤을 썼다. 그러다가 청동기시대 부계씨족사회가 수립되고 고대국가를 거치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의 위세를 가진 지배계급들이 외부로부터 외래사상 곧, 유교사상ㆍ불교ㆍ도교ㆍ풍수지리사상을 도입하여 통치권력을 강화하고 재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한다. 이에 따라 ‘순수한 효’의 모범으로 상징되던 무덤문화도 사악한 통치자와 천박한 부유층에 의하여 권력의 상징과 부의 위세에 이용된다.

이 결과 명당에다 무덤을 쓰게 되면 권력과 재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곧 부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추상적 관념론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상적 관념론은 과학이 발달한 오늘 날까지 권력지향무리와 자본축적무리에 의하여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전임 권력자이었던 전두환, 노태우와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이 그들의 선영(先塋)을 이른바 명당자리로 이장했다. 그리고 최근에 대권주자의 한 사람인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팠고 대선준비과정에서 가회동으로 집을 옮겼다. 이것은 모두 대권에 눈이 어두워 한 짓이다. 또 삼성재벌 이건희 집안이 경북 영덕의 칠보산 수목원 내 일정지역을 가족묘로 조성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또한 풍수도참과 무관하지 않다.

풍수도참에서 명당사상은 인간이 자연의 과학적 작용을 마치 신비한 힘이 있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조장한 주장에 불과하다. 풍수지리에서 자연적 이치(물, 공기, 음식)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풍수도참에서 죽은 자가 묻힌 명당의 자연적 원리는 그 곳에 살고 있지 않는 산 사람의 삶에는 결코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남한사회에서 산 사람들의 염원(念願, 권력과 돈)이 실현되는 것은 《맹자》(孟子)에서 말하는 시대정신(天時)ㆍ지연(地利)ㆍ인맥(人和)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성취되는 것이지, 죽은 자의 영기(靈氣)가 작용해서 비롯된 게 아니다. 따라서 천박한 정치적 출세욕과 이기적 재부축적에 눈이 멀어 풍수도참사상에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이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으니 사회문화 발전이 걱정스럽다.

3. 그러면 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무덤문화의 창출이 필요한 지 생각해 보자. 먼저, 죽은 자의 저승집이 산 사람의 생활공간을 너무 많이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시장경제 중심의 자본주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종 공장시설ㆍ환락시설들이 농경지를 점령하면서 절대농경지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아져서 생존에 필요한 땅 면적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쯤 되면 강토의 가용면적에 대하여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현재 남한사회 전 강토의 가용면적은 4.7%인데 이 중 무덤면적이 1%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강산의 효율적 이용과 미래 자연자원의 가치성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왜곡된 무덤시설에 대하여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둘째, 무덤문화의 의미가 상실되어 가는 이유는 오늘날의 사회가 미진하나마 헌법상으로 평등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태초부터 평등하였다. 그런데 몽매한 시대에 힘을 가진 자들이 무력으로 지배와 피지배계급의 불평등사회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화려한 무덤을 조성하고 피지배층에 경외(敬畏)를 강요해왔다. 그렇지만 인류는 자유ㆍ평등ㆍ민주주의정신으로 지배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사회를 회복했다. 이제는 정치적 권력과 자본적 권위가 삶의 모범으로 추앙받는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지배계급의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던 무덤 또한 의미를 상실하였다.

셋째, 현대 산업사회에서 무덤의 의미가 적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핵가족과 가부장적가족제도의 붕괴다. 지금 사회구조는 급격한 변화를 맞으면서 농업사회에서 적용되던 관혼상제 원형은 산업사회에 맞는 관혼상제로 탈바꿈하였다. 여기에 가족제도ㆍ상속제도도 바뀌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섬기는 시대가 아니다. 호주제도 또한 양성평등의 개인호주제가 성립하였다. 따라서 남성 중심의 가족주의 상징인 조상 및 부모공경사상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5~60대 이상 된 어른들은 무덤을 부모(조상)와 연결하여 의미를 두지만 10대 20대는 결코 무덤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마도 3~40대의 절반 이상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앞으로 무덤시설은 죽은 사람 중심에서 산 사람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즉, 무덤시설을 대폭 축소하가나 아예 없애야 한다. 죽은 조상과 부모공경은 집안에 업주가리(業主嘉利: 부루항아리) 또는 신줏단지(城主壇地)를 두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받드는 것으로 끝내고, 무덤은 더 이상 시설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미래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한민족이 통일을 이룬다 해도 한반도의 인구밀도는 상당히 높다. 그래서 통일조국의 영토를 효율적이고 요긴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 또 인류 미래의 관광산업은 자연산림 그 자체가 된다. 때문에 천연의 산림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통일조국의 수입원이 된다. 그리고 한반도지역의 지구온난화현상과 함께 기상관계 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대재앙을 정비례시킨다. 이산화탄소량을 줄이려면 산림을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 이러저러한 면을 보더라도 주검 자체를 자연에 돌려주는 자연적 무덤문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자연적 무덤문화라 함은 주검자체, 또는 화장(火葬)하되 세골(洗骨)한 뼈를 목관에 담아 나무 밑에 직접 매장함을 말한다. 더불어 자연적 장례는 죽은 이에 대한 경건성이 부여되면서 산 자에게는 장례비용이 저렴해야 한다. 이것을 참의미의 수목장(樹木葬, Natural Burials)이라 한다. 곧 남한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2001)에서 말하는 화장ㆍ분골(粉骨)해서 나무 밑에 뿌리는 수목장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자연수목장 이외, 정부에서 추진하는 장사법에는 문제가 많다. 화장분골한 후 공동납골당에 안치하는 무덤문화는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함께 화장터 사용료가 만만치 않다.

또 사설납골당의 경우, 운영주의 천박한 상술, 고가(高價)의 유골안치료, 납골당시설이 차지하는 엄청난 공간 등으로 매장무덤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는 성공적 대안이 아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추진하는 수목장 또한 시설주들이 엄청난 장례비용을 부른다. 전통적 관념에 사로잡혀 굳이 무덤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면, 그리고 지금 유행하고 있는 흉물스런 ‘석관가족납골묘’를 고집한다면 자기 집이나 마을 한 구석의 지하시설로 바꾸거나 또는 동네 나대지 등에 공동으로 시설하는 게 좋다. 그리고 죽은 자의 저승집은 ‘석관가족납골묘’나 납골장처럼 지상공간에 안치해서는 안 되고 지하공간에 마련되는 게 자연이치에도 맞고 죽은 자에게 도리가 된다. (황보윤식, 2007. 2.25 쓴 글을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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