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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독자 칼럼

" 이 페허를 응시하라" 누가 우리의 동지인가

by anarchopists 2019. 10.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8/03 14:13]에 발행한 글입니다.


세월호,
이해할 수 없는 한국정부

수백의 막 피어오르는 꽃송이를 태운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수백의 어린 생명들이 아비규환의 처참한 고통 속에서 낡은 세월호 배와 함께 서서히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온 국민들은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그 모습을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가에게 물었다. “국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세월호 참사 후에 해경에서 부터 대통령까지 국가권력기관이 보여준 무능과 무책임, 거짓과 기만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세월호를 이해하기 위해서 책 한권을 샀다. 레베카 솔닛이 짓고, 정해영이 옮긴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라는 책이다. 레베카 솔닛은, 미국의 사회운동가이며 실천적 지식인이다. 책의 내용은, 1906년 센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부터 최근의 9.11테러와 카트리나 재난까지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재난 유토피아’(disaster utopia)라는 용어를 썼다. 재난은 사람들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사랑과 연대의 마음을 일깨우고, 재난의 현장은 이러한 대중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창조적이고 활력 있는 유토피아적인 공동체로 가득 차게 된다고 말한다. 곧 저자가 말하는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의 정의다.

반면에 권력자들은 어떠한가? 재난이 닥치면 패닉(panic, 恐慌)에 빠지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권력자와 엘리트관료들이다. 이들은 대중들이 통제할 수 없는 야만적인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두려움 상태를 만들고 대중들을 통제한/하려고 한다. 그래서 재난 상황을 악화시키며 스스로 재난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저자는 이것을 엘리트 패닉(elite panic)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세월호 참사를 돌이켜 생각해보자. 대중, 권력자, 엘리트관료조직 이 셋의 시선은 엇갈렸다. 대중들은 죽어가는 아이들의 고통, 그 아이 부모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배로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다. 아이들을 구하러 달려온 민간잠수사들, 구조작업과 유가족들을 도우러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전국을 뒤덮은 노란 추모리본의 물결들......

하지만 권력자, 엘리트 관료조직들은 책임을 질 것에 대한 두려움, 비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책임회피와 거짓을 일삼는다. 이들의 생각은 세월호가 아닌 자신의 윗선의 문책과 질책 그리고 여론의 비난에만 신경을 집중시킨다. 세월호에서 나타난 ‘재난 유토피아’는 재난의 현장보다는 전 국민의 가슴을 관통하며 흐르는 공감대이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엘리트 패닉은 박근혜 정권의 사실상 붕괴상태다.

저자는 또한 재난이 대중들을 각성시키고, 권력자들의 본질을 폭로하면서 커다란 사회변혁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한다. 멕시코 지진은 제도혁명당 독재를 붕괴시키는 단초가 되었고, 카트리나 재난은 미국 공화당 부시정권을 무너지게 만드는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 또한 박근혜 정권의 위기뿐만이 아닌 한국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글쓴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2005년 미국 뉴올리안즈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권력자들과 언론은 지극히 인종주의적 편견을 나타냈다. 주민의 대부분인 흑인들은 재난으로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주와 언론들은 이들 피해주민들이 약탈과 폭력, 살인과 방화를 일삼는 야만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키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나섰다. 또 재난 피해주민들의 탈출을 막고, 죄인처럼 체육관에 수용하였다. 그리고 백인 자경단원들은 재난피해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재난을 당한 주민들은 서로 돕고 연대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했고, 다양한 재난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저자는 말한다. 약탈과 징발은 다르다. 피해주민들이 당장의 필요한 생필품들을 재난지역의 슈퍼마켓 등에서 징발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주 소수였다고 말한다. 언론과 방송은 이러한 징발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피해지역 주민들을 야만적인 폭도로 그렸다.

글쓴이 역시 이러한 왜곡된 언론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카트리나 재난시 텔레비전 화면에 약탈로 설명되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참 미국이라는 나라는 저렇게 재난을 당했을 때 약탈을 하는 야만적인 나라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전두환 권력이 국권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국민들의 판단을 호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강도권력과 언론권력의 보도와는 달리 광주시민은 광주가 무정부 상태였음에도 약탈과 살인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렇게 자연에 의한 재난과 못된 권력에 항쟁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폭력과 조작된 허위보도로, 국민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사회인식을 잘못할 수가 있다. ‘진실의 은폐’로 사회발전이 엉뚱하게 끌려간다면 그것은 권력자들이 국가의 발전을 역행시키는 짓이며, 국민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르는 짓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누가 진정한 국민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하여 ‘재난유토피아’ 마저 부정한 자는 국가권력자, 엘리트관료, 언론권력이었음을 우리는 확실히 알았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꼭 읽어보고 7.30 선거의 결과를 반성해 보았으면 한다. 필독을 권한다.(2014. 8.3, 김삿갓)

* 김삿갓님은 필명입니다. 아직 개인정보를 보내오지 않아 필자의 정보는 보내드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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