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1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3강]
간디가 지극히 보통 사람으로 내면과 저항을 동시에 추구하고 실현했다는 점도 함석헌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간디는 천재도 아니고 특별한 스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한 그렇다고 간디만의 무슨 극적인 사건도 없었다. 한마디로 해서 간디는 자기를 계발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그의 길은 누구나 따를 수 있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특별한 어떤 능력이나 신비체험을 한 사람만이 따를 수 있는 기이 아니라, 무식한 백성이라도 생각만 깨면 따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으로 보았다.
“간디는 자기와 씨알의 구별이 없다. 자기가 곧 씨알이 돼서 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선이니, 박애니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었던 것같다. “자서전을 읽어가며 놀랍고도 또 눈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저 페이지마다 사건마다, 씨알, 씨알, 봉사, 봉사로 옷의 실밥처럼 무늬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함석헌은 간디의 사상과 삶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간디의 방식을 원용하고 있는 부분도 많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특히 간디가 집회와 글을 통하여 민중들을 계몽하고 또한 체계적으로 지도자를 육성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을 생각할 때 잊어서는 아니되는 것은 사티아그라하요, 그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생각할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발행했던 <청년 인도>와 <하리잔>이라는 주간지와 곳곳에 세웠던 ‘아슈람’들이다.
특히 그 아슈람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새 인도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훈련된 정예분자 아니고는 그 대중은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다.” 간디가 민중 교육에 힘쓴 것처럼, 함석헌도 민중교육에 전념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라가 새로워지려면, 백성들이 단순히 복종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뜻을 알고 자진해서 따라가는 운동이라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교육이 절대라고 생각했다. 간디가 남아공에서 인도 국민회의를 조직하고 ‘자유란 생각도 할 줄 모르던 지리멸(支離滅)한 인간이 찌꺼기들을 깨워 국민의식, 역사의식을 갖게 하자는’ 운동을 펼친 것처럼, 함석헌도 그렇게 했다.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명저를 남긴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간디가 ‘인도의 소리’를 발간한 것처럼,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를 발간했으며, 간디가 톨스토이 농장에 공동체 살림을 한 것처럼, 함석헌은 천안에서 씨알농장을 열었다. 물론 그 목적은 언제나 민중을 깨우는 데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함석헌은 언제나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간디는 아무리 위대해도 간디고, 우리는 아무리 작아도 우리 자신이며, 인도는 인도요 한국은 한국입니다.” “그가 똘스또이, 러스킨, 도로우의 영향을 입으면서도 그는 그의 식으로 자기 길을 찾았던 것같이 우리도 우리 길을 스스로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신에서는 그와 다를 수 없습니다.” (이거룡, 내일 계속)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후 인도 마드라스 대학 라다크리슈난 연구소(석사), 델리대학 대학원(박사)를 졸업했다. 'EBS 세상보기' 강좌를 통해 심원한 인도의 사상과 문화를 쉽고 생동감 있게 다룬 바 있다. 현재 서울 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있으며 인도학교를 개설 중이다. 저서로는 라다크리슈난의 명저 <인도철학사>(전4권, 한길사)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와 공저로 <논쟁으로 본 불교철학> <구도자의 나라>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이거룡, 제3강]
간디는 간디고, 나는 나다.
“간디는 자기와 씨알의 구별이 없다. 자기가 곧 씨알이 돼서 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선이니, 박애니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었던 것같다. “자서전을 읽어가며 놀랍고도 또 눈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저 페이지마다 사건마다, 씨알, 씨알, 봉사, 봉사로 옷의 실밥처럼 무늬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 아슈람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새 인도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훈련된 정예분자 아니고는 그 대중은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다.” 간디가 민중 교육에 힘쓴 것처럼, 함석헌도 민중교육에 전념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라가 새로워지려면, 백성들이 단순히 복종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뜻을 알고 자진해서 따라가는 운동이라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교육이 절대라고 생각했다. 간디가 남아공에서 인도 국민회의를 조직하고 ‘자유란 생각도 할 줄 모르던 지리멸(支離滅)한 인간이 찌꺼기들을 깨워 국민의식, 역사의식을 갖게 하자는’ 운동을 펼친 것처럼, 함석헌도 그렇게 했다.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명저를 남긴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간디가 ‘인도의 소리’를 발간한 것처럼,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를 발간했으며, 간디가 톨스토이 농장에 공동체 살림을 한 것처럼, 함석헌은 천안에서 씨알농장을 열었다. 물론 그 목적은 언제나 민중을 깨우는 데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함석헌은 언제나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간디는 아무리 위대해도 간디고, 우리는 아무리 작아도 우리 자신이며, 인도는 인도요 한국은 한국입니다.” “그가 똘스또이, 러스킨, 도로우의 영향을 입으면서도 그는 그의 식으로 자기 길을 찾았던 것같이 우리도 우리 길을 스스로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신에서는 그와 다를 수 없습니다.” (이거룡,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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