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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윤석렬, ‘자유민주주의’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by anarchopists 2021. 3. 5.

대한민국의 검사/검찰/검찰조직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부패권력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고. 공익의 대변자라고. 그리고 나라 사람들에 대한 봉사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헌법조항에서 말하는, 그리고 검찰들이 들먹이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말은 자본시장과 엘리트관료 사회를 수호한다는 뜻이지, 진정으로 나라 사람 전체의 자유와 민주를 수호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검찰이 부패권력을 막는 최고 기관이라고 하지만, 한 번도 부패권력을 막은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국정목표로 삼았음에도 검찰조직은 거의 방관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공익의 대변자라고 하지만, 그 말에도 선뜻 수긍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현 대한민국의 검찰은 그 자체가 권력이요, 무소불위의 조직이라는 생각이다. 곧 이 나라 삼대 깡패조직’(폭력조직, 검찰조직, 사제조직)이라는 세간의 말이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도대체가 검찰/검사/검찰조직은 어디서 나온 말인지 잠시 역사적 고찰을 해보자.

우리 땅 역사에서 검찰(檢察)이라는 말은 전통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통치자/지배자인 왕과 그 하수인인 지방수령들이 곧 행정과 사법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 검찰제도가 도입된 것은 서양(13세기 말)보다 600년 늦은, 19세기다. 갑오경장 때다.(1895.3) 그 뒤, 조선의 왕과 엘리트 관료들의 무능과 매국으로 일제강점/병탄기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검찰은 총독부 권력유지를 위한 최고의 악질기구였다. 이렇게 시작된 검찰조직은 분단해방후 미군정기에 검찰청이 설치되면서 옥상옥 권력기구로 재탄생한다. 곧 미군정청의 반공노선에 따라 발탁된 검사/검찰들은 일제강점기 일제통치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제 나라/제 백성을 혹독하게 두들겨 패고, 짓밟고, 고문하고, 가두고, 죽였던 기득권을 가진 반공검사들이었다.(친일검사, 사법관시보, 서기 등)

이들 미군정기 검찰들은 일제에게서 배운, 범죄자에 대한 기소유예제도, 대공감찰기능, 검사동일체원칙, 검찰항고제도 등 온갖 나쁜 제도를 몸에 두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검찰청 건물의 안팍으로, ‘遵法精神’(준법정신)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 준법정신은 일제가 대한국(식민지조선)인들에게 본보기로 걸었던 슬로건이다. 말 안 들으면 죽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미군정기 친일검사들로 조직되고 시작된 검찰조직은, 대한민국정부 수립기 이승만과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권력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검찰조직의 뿌리는 친일적 혈통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검찰조직이 친일적 혈통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 본성이 국가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호조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친일적 혈통을 지닌 검찰조직은 박정희 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파쇼권력이 되었다. 그러한 검찰파쇼의 전통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쳐 오면서도 해소가 안 된 부분이다. 윤석렬이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보였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독재권력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검찰파쇼, 곧 수사권, 기소편의주의, 임의수사처분(승낙동행, 임의출두, 승낙유치), 미죄불검법(微罪不檢法) 등은 전적으로 검찰의 입맛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들이다. 더구나 금권정치와 정경유착을 통한 상명하복의 검찰파쇼는 이제까지 집권한 정치권력’, ‘집권한 정당세력’, 자본의 집단권력과 함께 4대 권력/폭력으로 군림해 왔다. 그동안 검찰조직은 대한민국 4대 권력에 자리하면서 권력의 안전과 지속적 유지를 위하여 사상검사로 거듭난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이라는 국가폭력을 가지고 권력에 대한 비판세력인 양심적 인사들을 수없이 잡아들였다.

이제, 검찰도 개혁을 하여야 한다. 검찰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폭력은 살아져야 한다. 곧 강제수사권, 식민지형 검찰조직, 인권유린적 수사관행,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 등은 사라져야 한다. 검찰조직은 정말로 인권의 보류가 되어야 한다. 윤석렬이 법무장관과 연속적 대립각을 세운 것은 검찰파쇼를 계속 유지하려는 친일적 혈통의 냄새를 물씬 풍긴 소행이었다. 검찰의 진정성/공정성을 내걸려면, 대한민국 검찰의 핏속에 흐르는 친일적 피()를 순수하고 착한 우리 민족의 피로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미군정청에서 시작되어 독재시절을 거치면서 물려받은 친일혈통적 검찰파쇼는 이제 윤석렬을 끝으로 마감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검찰도 이제는 엘리트 집단의 구호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허구성을 버리고 전체 나라 사람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는 공익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으로 본다.

윤석렬이 검찰조직을 떠나면서 구태의연한 말을 또 남겼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결국 윤석렬은 자본가 중심의 자본주의와 엘리트 중심의 대한민국을 끝까지 수호하겠다는 말을 남긴 셈이다. 전체 나라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 속에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인권과 권익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 속의 자유는 자본시장의 자유를 뜻하는 말이다. 나라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지, 나라의 발전을 국민이 이끌어 간다는 뜻이 아니다. 곧 대의代議라는 말은 엘리트 중심이라는 뜻이다. 윤석렬이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검찰 출신으로서 검찰파쇼로 내려오는 친일적 혈통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엘리트의식을 버리고 여민동락與民同樂 대동주의大同主義의 이치를 먼저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본다. 오늘날의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밥그릇)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제 검찰도 시대의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 권력은 작을수록 적다. 권력의 개념을 이제는 진정한 봉사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시대가 왔다. 윤석렬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수골守骨세력들의 부추김에 놀아나 대권大權까지 꿈꾼다면 그것은 돈키호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21. 3.5, 함석헌평화연구소 풍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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