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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오늘의 명상] 순수종교는 인위적 교리를 벗어나야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8/3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순수종교는 인위적 교리를 벗어나야

1. “생각은 해서 뭘 합니까?” 그거는 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는 다가 아니야요. 한 층 더 있어. 그걸 영계(靈界 )라고 그러는데, 철학적으로 말을 하면 직관 (intuition)이라고 그러는 거. 이런 게 있어야 되지, 아니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사람이 어디서 왔지? 왜 그걸 지금 생각하나? 에이. 쓸데없는 일 그만두자” 해도 또 해보고 싶고 또 해보고 그랬던 것이 저 옛날에 굉장히 놀랍게 났던 성인이라는 사람들. 사람이 잘되는 것도 그것 때문에, 못 되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그거를 무시한 것이 서양의 지금 문명이란 말이야...

2. 결과가 뭐냐. 이 문명이라는 건 순전히 “먹고 놀자”야. 의미가 없어요. 먹고 입는 쾌락이라는 거, 죽기 전에 쾌락하자지 영원한 쾌락이 아니야. 될 수 있으면 남을 내 마음의 종으로 부리고 나는 턱 앉아서 놀아도 좋다고 그러지만 사실상 공장에 있는 아가씨들은 노예지 뭐예요! 정당하게 주지도 않고 말이야.,,

3. 정신이라는 건 아예 없는 사람들이댜. 동양 사람이 그런다는 건 참 원통한 일이오. 동양은 옛날부터 정신에 문명의 특색이 있었어. 그런데 세계가 달라지니까 지금의 현상으로 봐서 서양에서 큰 회개가 일어날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간다면 그놈의 문명은 그대로 망하고 말 거요! 그 사람들 대부분이 망하고 말는지도 몰라요...

4. 책을 보고 짜내고, 여기서 붙이고 저기서 붙이고 해서 만들어 내는 원고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영감)이 와서 하고 싶은 말,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건데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런 게 더러 오는 수가 있을 거야요. 아직까지 그런 것도 못 지냈다면 참 불쌍하군요.
(함석헌저작집 13권 212-215)

여기 물질주의, 쾌락주의에 대한 경고가 실려 있다. 그것은 서양 문명의 결과물이다. 원래 정신문명이 탁월했던 동양조차 여기에 정신을 잃고 함몰되고 있다. 함석헌에게 사고와 가치의 기준은 물질이 아니고 정신, 즉 영적인 차원이다. 영, 영성(spirituality)은 신과 인간의 본질이다. 그래서 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다.” 그것은 종교의 바탕이다. 그는 종교적 시각으로 역사와 사회를 비추고 꿰뚫어본다. 그는 종교를 인간의 모든 행위와 사고의 밑바탕이 된다고 늘 강조했다. 그의 종교는 비뚤어진 조직종교가 아니다. 종교의 발전과정에서 첨가된 모든 인위적인 덧붙임과 교리(교조)를 거두어낸 순수 알맹이를 말한다.

함석헌은 보통 사람과 달리 물욕을 부리지 않았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무소유였다. 그에겐 지식인이 갖기 마련인 명예욕도 없었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50대 중반에 가서야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글을 쓰면서 부터였다. 그가 가졌던 지위라야 (오산학교)교사가 전부였다. 해방 공간에 북한에서 잠시 맡은 평안북도 자치원원회 교육부장은 그에게 씌워진 짐일 뿐 명예도 지위도 아니었다. 신의주 학생사건주모자로 몰려 죽을 번한 자리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남쪽으로 피난했다.

그의 글이 힘 있게 다가오는 것은 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짜낸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말하고 썼다. 영감을 기다려서만 글을 썼다. 강연이나 강설을 할 때 준비된 원고 없이 순발적으로 나오는 생각을 펼쳤다. 그것은 남의 말을 도용한 것이 아니고 체험적인 내용이다. 체험이 없이 머리만 굴리는 먹물들이 그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들한테 교육 받은 청소년들이 함석헌의 글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2010.8.25,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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