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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여성해방운동-시집살이 그만

by anarchopists 2021. 9. 20.

2021년 계절이 더운 공기를 물리치고 겨우 가을 문턱에 들어섰는가 싶었는데 벌써 추석명절철이다. 문득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 생각난다. 하여 시집살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각해 본다. 현재시간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 여성 중심의 사회가 지속되었다. 생산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시대이다. 그러다가 농경사회가 접어들고 농산물 생산수단이 발달하고 청동기에 접어들면서 농업생산물의 확대는 토지, 농기구, 가축 등 생산수단의 독점과 함께 사유재산제를 발달시켜 놓았다. 사유재산제의 발달은 공동체문화를 파괴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신분분화라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냈다. 지배계급을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재산, 그리고 전쟁과 채권, 그리고 사법권력을 통하여 노예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들을 엘리트 권력이라고 한다. 노예 중에는 성적 쾌락을 위한 성노예들도 존재하였다. 여기서 엘리트 권력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성노예여자(이를 첩이라 한다.)를 독점하기 위히여 법치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곧 성문법의 탄생이다. 율령격식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규제는 재산을 흠치지 말라는 것과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법조항이다. 곧 엘리트 권력의 재산과 첩을 노리지 말라는 금법이다.이것이 고조선8조법금이고 부여의 4조 금법이요, 함무라비법전이요 중국의 대송률, 대명률이다. 이 성문법의 확장이 오늘날 각 나라의 기본 헌법과 각종 법률인 율령격식律令格式이다.

이때부터 여성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와 자유가 없었다. 오로지 남자에 귀속되어 자기 삶을 저당잡히고 살아야 했다. 곧 한국에서 말하는 시집살이다. 시집살이는 농업경제를 주로 하던 전통시대의 낡은 유물이다. 역사박물관에 보내야 할 전통자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 박물관에 있어야 할 낡은 우상에 사로 잡혀 있는 게 낙후된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유독 강하게 남아 있는 여자의 시집살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여자와 남자가 혼인(결혼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을 하면 여자 남자네 집으로 시집을 갔다. 라는 한자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옥편에만 나오는 글자였다. 곧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여자가 남자네 집으로 들어가 부인婦人으로써 여생을 마친다는 뜻이다. 와 부의 자원풀이를 통하여 그 뜻을 살펴보면, 는 여자가 남자네 집으로 들어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농경시대의 문화가 담겨 있다. 남자네 집을 사모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는 여자가 남자네 집으로 들어가 청소하고 밥 짓는 일을 한다는 순전히 노예적 사고가 담긴 글자이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와 혼인을 하면, 으레/당연하게 남자네 집에 들어가 남자네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해주고 집안 청소하는 노예적 일꾼이라는 뜻이다. 그 댓가로 밥을 먹고 산다는 뜻이 시라는 글자다.

그래서 자식을 낳아도 자식의 성도 남자/남편의 성을 딴다. 여자는 혼인하고 남자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사라진다. 그저 며느니(새아가, 애야)일 뿐이다. 이런 억울함은 없다. 곧 여성의 신분 추락을 의미하는 글자가 시와 부라는 글자다. 그래서 자식의 입자에서도 아버지는 친이고 어머니는 외였다. 아버지 집안은 친가親家고 어머니 집안은 외가外家. 친외親外는 본질적으로 반대의 개념을 지닌다. 친은 가깝다는 뜻이고, 외는 가깝다라는 뜻의 반댓말이다. 곧 외가라 함은 멀리해야 할 집안이라는 뜻이다. 친가는 자식과 손자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갖지만 외가는 딸자식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가질

수 없다. 그래서 2세의 이름 앞에 붙은 성도 남자네(친가) 성을 쓴다. 외가의 성은 붙일 수 없다. 부인(노예적 존재인)의 자식이 아니고, 남편의 자식이다. 그래서 중국의 옛글, 詩經시경에 보면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父兮生我, 母兮鞠我)라 하여 남자의 씨(종자=하늘)를 중요시하고 여자의 밭(전답=)을 기르는 용도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남존여비의 사상은 한국의 성리학적 윤리가 더욱 심화시켜주었다. 곧 한국적 성리학이 오염시킨 무서운 전염병이 시집이라는 용어와 친외의 구별규칙이다. 이제 친외의 구별은 사라져야 한다. 이제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데 남녀 평등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왜 자식에게 여자의 성을 붙이면 안 되는가. 법적으로 허용은 되었지만 관습적 우상이 아직도 자식의 성을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낡은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시집살이에서 나온 낡은문화 중의 하나가 제사문화다. 여자가 혼인을 하면 남편네 조상에 대한 제사와 차례를 지낸다. 시집간 여자는 제 식구, 제 부모, 제 조상에게 제사/차례를 평생 드리지 못하고 남자네 집/남편 집귀신으로 평생을 마치게 된다. 남편네 조상과 여성은 아무런 은원관계가 없다. 남편네 조상에 대한 제사를 받드는 것은 시집살이 노예문화의 병폐다. 그래서 여자는 제 식구, 제 부모, 제 조상에게 제사/차례를 평생 드리지 못하고 남자네 집/남편 집귀신으로 평생을 마치게 된다. 이제 명절만이라도 부인들은 자기네 집(흔히 친정이라고 한다)으로 가족 가족을 만나고, 자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농경시대의 낡은관습을 벗어던질 때이다. 시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명절이 되면 여자는 제 부모집으로 가서 제 조상을 모시고, 남자도 제집의 제사/차례를 모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아프칸처럼 아직도 여성이 남자의 노리개로 존재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이제는 사라지게 할 시대가 왔다. 명절증후군이 왜 생겼는가. 여자가 남자네 제사상을 차리느냐고 생긴 용어가 아니던가. 자기 조상을 위한 제사상을 차렸기 때문이 아니다.

또 하나 실펴 보아야 문제가 있다. 지금도 여성들은 자기 성(sex)에 대하여 소극적이다. 남자는 성에 대하여 아직도 자유로운 사고에 놓여 있다. 곧 바람이라는 속어다. 생리적으로 남자는 바람의 성질을 가졌다고 한다. 여성은 바람의 성질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생리적 이치도 남자 중심의 사고다. 곧 여성은 임신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애 이외는 잉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강제된 시집윤리의 통념 때문이다. 여성도 바람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시집윤리의 사회적 통념에 의하여 자신의 바람기를 스스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적인 자숙自肅은 잘못된 사회적 시집윤리와 관습적 풍습에 의하여 오랜 세월 팔자로 강요되어 온 탓이다. 모든 게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낡은 우상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혼인은 상호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집살이의 개념은 사라져야 한다. 남자가 가장이라는 낡은 개념을 버려야 한다. 혼인 전은 아버지, 혼인하면 남편,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부종사(三父從事)의 개념은 완전히 떨쳐져야 한다. 가사노동의 평등, 성적 욕구의 평등, 가정경제 운용의 평등, 자녀 성결정의 평등이 이루어질 때, 우리사회는 행복한 혼인생활, 자유로운 혼인생활이 완성되리라는 생각이다. (2021. 9.19 함석헌평화연구소, 황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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