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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서평, 독후감

아, 무서운 세상이다.-이적의 정화작전을 읽고-

by anarchopists 2019. 1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1/05 04:38]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 무서운 세상이다.
이적의《정화작전》(전예원, 1988)을 읽고 나서


1. 이 책 《淨化作戰》(이하, 정화작전)의 성격은 수기소설(手記小說)이다. 수기작가 이적(李謫)은 1950년대 말에 태어나 장로회 신학대를 졸업하였다. 현재 김포 월곳면 용강리(京畿道金浦市月串面龍康里)마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회원으로 몸담고 있으면서 평화, 통일운동 등 사회운동을 통하여 실천적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적대행위(對北敵對行爲, 애기봉 등탑점등, 대북전단실포 등)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 이 수기소설은 1988년에 쓰인 책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다. 소설은 작가가 직접 삼청교육대(三淸敎育隊)로 끌려가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이 삼청순화교육대에 강제 입소(1980.10, 계엄포고령 13호 위반)를 당하면서 삼청근로봉사대 그리고 청송감호소를 거쳐 출감하기까지(1983. 5.1)의 본인이 겪은 반인륜적, 비인간적, 비윤리적 참혹상을 수기형식으로 써나갔다. 작가는 인민재판식 즉결심판에서 삼청순화교육대, 삼청근로봉사대, 청송감호소로 개 끌려가듯 끌려다녀야 하는 A급 대상자로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2년 6개월 이상을 국가폭력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생존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작가는 삼청교육대에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참혹한 국가폭력을 몸으로 목격하면서 더 이상 이런 참혹한 반인륜적 국가폭력에 의해 시대의 희생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철통같이 엄하기 그지없는 군 조교들의 감시아래서도 비밀리에 일기를 써서 감추어 두었다가 이를 바탕으로 이 수기소설을 엮어냈다. 대단한 용기이다. 찬사를 보낸다.

이 수기소설의 배경이 된 시기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권력을 찬탈하면서 정통성이 없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정치적 희생자를 강제하였던 시기이다. 작가가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대하는 시기는 1980년대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이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5.16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권력유지를 위해 꿈직한 5.18광주학살과 함께 박정희식 사회정화운동을 강제한다.

박정희가 강제한 사회정화운동은 국토건설단으로 대표된다.
국토건설단(1962, 2.10 설치 1962년 12월 19일 폐지)의 설치 목적은 겉으로 사회정화운도이었지만 기실(其實)은 박정희가 쿠데타로 잡은 정통성 없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곧 사회정화 명목으로 엄청나게 많은 양민(쿠데타 반대 위험인자)들은 불량자로 낙인찍어 강제 노역(대표적인 것은 제주 동서를 가르는 5.16도로 건설이다)에 보냄으로써 사회적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국토건설단은 비인간적 반인륜적으로 운영되었다. 그 결과, 살인적 폭력과 감정적 개인린치 등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사람을 죽어나가게 만들었다. 그와 같이 전두환도 권력찬탈과 함께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위협할 방편으로,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공포분위기 조성을 위해 계엄이라는 더러운 이름 아래 삼청교육대라는 기구를 강제한다.

그리고 박정희식으로 많은 선량한 양민들을 불량자로 둔갑시켜 삼청교육대(군부대에서 운영하는)에 강제 입대시키고 순화교육의 명목으로 이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유린한다. 그리고 강제노역에 동원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청송에 보호감호소를 만들고 이곳으로 보내 인간을 노예화하였다.

한 마디로 국토건설단이나 삼청순화교육대는 이름만 달랐지,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의 권력기반 강화에 이용하기 위해 사회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기구였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들 기구는 더러운 계엄이라는 정치권력을 만들고 조직한 국가폭력기구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정화운동이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시대의 희생자’ 강제색출을 뜻한다. 곧 저들의 사회정화운동의 목적은 겉으로 구악일소(舊惡一掃)와 깡패소탕이지만 사실은 권력탈취를 위한 사회적 공포분위기 조성이었다. 따라서 박정희나 전두환은 정화대상자를 불량배로 불렀다. 이는 마치 일제가 민족해방운동가나 독립군들을 ‘불량선인’(不良鮮人)으로 부른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이른바 불량배 속에는 사회적응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70% 이상)은 선량한 양민들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는 국토건설단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일 년도 안 되어 국토건설단을 해체 한다. 그러나 전두환은 삼청교육대(1980. 8. 4일 설치, 1981 1, 24일 비상계엄 해제)를 삼청순화교육대, 삼청근로봉사대, 보호감호처분의 명목으로 3년 이상 지속시킨다. 그리고 더 악랄한 국가폭력을 휘두른다. 박정희도 마찬가지이지만 전두환의 권력찬탈은 그만큼 정통성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말을 바꾸면, 박정희 권력 때의 국토건설단이나 전두환 권력 때의 삼청교육대는 사회정화운동을 가장한 무자비한 인권탄압(권력에 의한 자의적 학살행위가 빈번하였던)이요, 참혹한 국가폭력이었다.

3. 《정화작전》은 첫 페이지부터 비참하고 참담해서 도저히 읽어나갈 수 없는 책이다. 대한민국 전두환 독재권력 때 일어나 법치외적 폭력에 대하여 치가 떨리게 만드는 수기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눈물이 나오고 치가 떨리는 것은 주인공이 당하는 처지가 마음 아파서도이지만, 이 나라의 처지가 너무 슬퍼서이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슬픈 기우(杞憂)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박정히 독재권력 때의 권력 맛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독이 대낮에 주인이 있는 집안에 버젓이 들어와 집안 물건을 강탈해 가듯, 국가 권력기구에 버젓이 들어와 국가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무섭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것은 없는 죄를 대라고 다그치는 악질형사들의 고문보다 더 지독한 정신적 고통과 함께 영혼의 아픔이 오는 비극이다. 삶에 대한 절망을 느낀다. 저들이 또 다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친위쿠데타(政變)를 일으키고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유신교육대’ (또는 새마을교육대) 같은 것을 만들어 우리 같은 성량한 사람들을 불량자로 낙인을 찍어 잡아가 두들겨 패면 어떡하지 하는 기우가 가슴을 조여 온다.

삼청순화교육대에 잡혀 온 사람들은 대부분 선량한 양민들로 평가된다. 단지, 국가기관에 비교적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잡혀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곧 전두환 권력유지에 방해가 될 위험인물이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계엄포고령 13호에 의해 즉결처분(경찰서의 등급심사)을 받아 A, B, C, D급으로 분류되었다. 즉결처분은 교과서에서 본 인민재판과 흡사했다.(이 책, 60쪽) 경찰서의 등급심사는 영관급 군인이 관할하였다. 심사분류에서 핵심은 사회비판세력을 가려내는 일이다. 등급심사에서 사회비판자들은 A급 대상자(삼청순화교육대를 거쳐, 삼청근로봉사대, 그리고 청송감호소까지 가는)로 분류된다.

사회비판세력이란 주로 정직한 언론사 기자, 관청 관리들에게 ‘눈에 가시거리’였던 기자들이 해당된다.
사회비판세력 이외에 더 억울한 사람은, 경찰관이 평소에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 경찰관의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 전두환 쿠데타 이전에 경찰에 비협조적이었던 사람, 마음잡고 착실하게 일하고 있는 전과자, 이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정한 자유인이었고 민주주의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선량한 양민이었다. 그리고 동네어른들에게 밉뵌 자, 불량하다고 판단된 학생, 외상술값 안 갚은 자, 아버지에게 투정 부린 자(존속폭행으로 잡아감), 사무실 임대료 밀린 자, 김대중을 지지한 자(빨갱이)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정치보복도 있었다. 곧 행정관료들이 평소 자기들 생각과 어긋난 자를 사상 의심 자(기자깡패, 빨갱이)로 고발하였다. 삼청교육대는 정신순화라는 이름을 빌려 그야말로 “위선과 조작에 능통한 정권의 폭압, 정치보복-김대중 지지자를 빨갱이로 몰고, 깡패식으로 잡은 정권의 완전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81쪽)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와중에도, 평소 경찰과 안면이 있는 사회기생충 같은 놈들, 전문적인 악질범은 법망을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말하는 악질 범죄꾼들은 전두환과 같은 패거리이었기에 모두 미리 도피시켰다. 이들은 전두환의 권력유지에 훼방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두환은 자신의 권력 내내 내세운 정책구호가 ‘사회정의구현’이었고 그 실천적 선전활동이 '바르기살기운동'이다. 그런 그가 정작 정의(正義)하고는 너무나 먼 불의(不義)한 짓거리를 집권 내내 몸소 실천하였다. 결국은 수천억 재산을 29만원으로 둔갑시킨 천하에 몹쓸, 짐승보다 못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런 그가 말한 사화정화운동의 대상은 자신의 권력유지에 훼방이 되는 자들이었다, 직장정화라 하여 노조운동한 사람 잡아들이고, 언론정화라 하여 평소 감정을 가지고 있던 언론사 기자들 잡아들이고, 코메디언 정화라 하여 마음에 안 드는 코메디언 잡아들이고, 불심검문에 항의하였다고 잡아들이고, 팔에 문신이 있다고 잡아들이고, 고관부인과 춤추었다고 잡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범죄조서는 경찰서에서 거의 조작되었다. 그들의 마음대로.

4. 1988년에 쓰인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오늘의 이 나라 역사가 다시 오류를 일으키며 1980년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글쓴이와 작가는 1980년대 초반 전두환이 국가권력을 찬탈한 이후 시대의 희생자가 되었던 한 사람으로 시대 아픔을 이 시대 사람들에게 다시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화작전을 다 읽고 나니, 눈물이 고이면서 아람회사건과 삼청교육대가 연관되어 생각난다. 당시 민족통일과 사회민주화운동을 하던 글쓴이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지 않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다. 그 때 나는 긴급조치가 풀리면서 시골에서 들어와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취업이 되어 교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즈음 학생과에서 한 학생을 문제 학생으로 지적해 주면서 삼청교육대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거절하고 나는 그 학생들을 오히려 보호하였다. 그런데 그 문제 학생이 끝내 문제를 일으켰다. 적반하장으로 " 5.18광주학살의 원인은 전두환에 있다"는 말을 한 필자를 ‘수상’하다고 경찰에 고발하였다. 그래서 글쓴이는 ‘아람회사건’을 일으키는 발단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 정화작전을 읽고 나니 그 당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지 않고 사법부 관할로 들어가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당했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구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든다. 경찰의 혹독한 고문이 차라리 삼청교육대 정화교육보다 났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삼청교육대의 순화교육과정에서 일어난 군대조교들의 비인간적 비윤리적, 반인륜적 폭력과 폭행, 살인행위는 상상의 지옥소굴이 현실로 되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폭력인 고문은 물론이고 국토건설단, 삼청교육대와 같은 권력유지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시대의 희생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라서 계엄의 이름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곧 국토건설단과 삼청교육대에 강제로 끌려가 인권을 탄압 당하고 죽은 자들에 대한 국가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취래원농부, 2013. 12. 28. 초, 2014. 1.5 다시 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에서 사진은 구굴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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