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서평, 독후감

서평, 종태

by anarchopists 2019. 1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12/29 04:32]에 발행한 글입니다.

변경섭의 장편소설,
종태(2013. 3.31, 헤드림) 서평


이 소설은 성격상 성장소설에 해당한다. 소설의 내용은 다른 소설과 달리 담백하다. 작가 변경섭이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소설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어린 주인공의 생각을 통하여 세상에 토해내고 있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인지 단박에 읽어내려 갔다. 서평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초등학교(옛날은 國民學校)를 다녔다. 그 시대를 회상하게 해주면서도 글쓴이도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는 동질감에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1.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현수라는 주인공이 죽은 친구(종태) 문상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초등학교(1970년대 초등학교, 충청남도 아산시 배경) 시절 종태와 어울려 놀면서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소설은 주인공 현수가 종태(소설제목)의 죽음소식을 듣고 문상을 가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종태라는 어릴 적 친구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고향이 싫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현수는 결국 문상을 가기로 결정한다. 현수가 야간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면서 기차 안에서 종태와 주인공 자신이 얽힌 어릴 적 일들을 회상한다. 주인공 현수 또래들이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는 성장과정을 세상변화에 대입하여 재미있게 그렸다. 이 소설에서 설정한 시대 배경은 박정희의 독재권력 시대이다. 박정희가 영구 황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새마을운동의 전개와 유신체제로 돌입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였다. 우리는 잠시 박정희의 실체에 대하여 이야기해 봄으로써 이 소설이 설정한 시대배경을 잘 이해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박정희는 자기출세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인간적 품성은 그를 출세만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로 만들었다.(최상천, 《알몸 박정희》, 사람나라, 2001) 그의 기회주의 기질은 그를 친일장교로 만들었고, 해방조국에서는 남로당 조직책이 되게 만들었다. 남로당 간부였던 그는 시간이 가면서 남한의 정세가 이승만에게 유리해지자, 그의 기회주의적 기질은 남로당을 배반하고 국군장교가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4.19시민혁명 이후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처럼, 참 다운 자유와 민주주의국가로 가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이러한 과도기적 분의기를 이용하여 5.16군사반란(1961)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군사반란의 우두머리였던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이른바 빨갱이=공산주의=반국가세력=폭력세력이라는 등식을 만들고 자신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이용한다. 결국 그는 편법을 쓰고 약속을 배반하면서까지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후, 호시탐탐 제제화(帝制化: 황제가 되기 위한 음모)를 꿈꾼다. 그리고 그 음모는 헌정질서의 파괴와 반평화 폭력정치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박정희는 이상한 이념을 끌어온다. 어불성설의 ‘한국적 근대화’(조국근대화)라는 구호가 그것이다. 당시 한국은 이미 근대화가 된 나라였다. 또 다른 근대화가 필요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조국근대화화’라는 구실을 내세워 박정희는 국헌을 유린한다. 곧, 3선개헌(1969. 9.14. 국회 날치기통과, 1969.10.17. 국민투표)이다. 이것이 첫 번째 제제화 음모다. 이어 박정희는 두 번째 제제화 음모를 꾸몄다. 국제사회 변화가 오자, 이를 기회로 이용한다. 국제사회 변화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닉슨 독트린(1969.7.25.)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월남파병 철수와 주한미군의 감축이다. 이어 미국은 한국에게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이것으로 박정희의 반공을 국시로 하던 조국근대화 음모는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자 박정희는 남북대화와 냉전체제 와해라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기회로 이용하여 평화통일론을 앞세운 민족주의 탈을 뒤집어쓴다.(民族中興論, 1970. 8. 15) 결국 박정희는 용도폐기된 시대사조를 가지고 마치 자기가 시대영웅인 것처럼 개인독재를 위장하였다.

한편 박정희는 강제된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식 ‘경제개발5개년계획’(유가주의 공업문명 또는 유가자본주의라고 한다.)을 경제발전정책으로 추진하였다. 그의 추종세력들은 이를 부끄럽게도 ‘成功的’(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박정희의 계획경제정책은 오히려 우리 사회를 씻을 수 없는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갔음은 이이 알려진 사실이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차수를 변경하며 계속되면 될수록 한국의 경제구조는 수출위주형ㆍ금융특혜형ㆍ정경유착형 유가자본주의사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부조리, 부패, 비리 등 악순환이 꽈리를 틀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 탓으로, 자본집중, 빈부심화, 저성장율, 실업률 증가 등 비정상적인 사회구조와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인간적 범죄구조가 목걸이의 구술처럼 형성하게 되었다. 곧 한국사회에 부패하고 타락한 자본주의사회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돈에 의한 능력경쟁과 대결구도의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반대급부적 사회폭력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곧 인간의 기본권리인 민주와 자유를 파괴하는 타락한 국가권력에 대한 폭력적 저항이다.

결국 이러한 타락·부패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저항(민중기의)이 일어났다. 곧 광주대단지 폭동사건(1971.8.10.), 체불임금 지불을 요구하는 파월(派越)노동자들의 대한항공 빌딩 방화사건(1971.9.15.), 전태일의 분신사건(1970. 11.13) 등이다. 이러한 사회적 대립구도를 조성하는 경제정책에 따른 민중들의 부정적 반응은 박정희 제제화 음모에 방해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국내에서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 반응과 국제사회의 냉전와해 분위기는 박정희의 기회주의 기질을 근질거리게 만들었다. 곧 ‘7.4남북공동성명’(1972, 이하 7.4성명)의 발표다. 박정희는 그의 제제화 음모에 국제사회 냉전화해 분위기를 기회로 이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7.4성명’에는 민족에 대한 진정성이 전혀 없었다. 박정희 제제화와 김일성 부자세습화 길을 열어주는 기만적인 민족배반적 협상만이 있었다.

7.4성명 이후, 박정희는 내부적으로 남북대화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국민총화와 능률의 극대화라는 구실을 내걸었다. 곧 영구집권과 권력강화를 위한 연막이었다. 7.4성명 후 남북적십자 제1차 본회담(1972. 8.29)과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1차 회의(1972.10.12.) 등 남북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념 등 문제로 난관에 부딪치면서 불안한 정국이 조성되었다. 박정희는 이 기회를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느닷없이 국회를 해산하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모든 대학은 휴교가 강제되었다. 정당의 정치활동도 금지되었다. 그리고 신문· 통신에 대한 사전 검열제가 실시되었다. 비상계엄령은 비상국무회의로 하여금 국무회의와 국회의 입법기능까지 떠맡도록 했다. 이게 바로 10월 유신이다.(1972.10.17. 대통령특별선언) 그리고 그는 일본 메이지유신=일본의 근대화=천황일인체제화를 그대로 모방하여 한국의 조국근대화=유신체제=박정희 황제체제화를 음모하였다. 이것이 10월 유신체제(1972.10.17)로 나타났다.

10월 유신체제에는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중국의 무술정변[戊戌維新, 1898]처럼 입헌군주제를 꿈꾸는 박정희의 음흉한 음모가 겉으로 드러난 셈이다. 박정희는 그가 황제(입헌군주)가 되는 발판으로 ‘유신헌법’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국민투표 1972. 11.21, 1972.12.27.공포) 명분은 조국근대화를 위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기본법 제정이다.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인 유신헌법에는 민주주의제도(곧, 국가권력에 대한 의회적-시민사회적 통제), 자유주의 이념(곧, 국민기본권, 노동3권, 정치활동 보장 등)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유신헌법에는 파시즘체제를 이끌 기구만 있었다. 곧 ‘유정회’와 ‘통일주체국민회의’다. 이들 기구의 실체는 박정희를 황제화하기 위한 제도적 틀이었다. 유신헌법에 의해 박정희는 8대 대통령에 당선된다.(1972. 12.27 취임) 곧 박정희 황제의 탄생이었다.

이어 박정희는 그의 독재적 영도력을 선봉(先鋒)에서 휘날려줄 대중운동을 선도한다. 곧 ‘새마을운동’의 본격화다. 마치 중국의 국민당 정부시절 장개석이 중국의 군국주의화(軍國主義化)를 위해 이끌었던 신생활운동(1934~37, 야만적․불합리한 미신을 타파하고淸算鬼生活, 문명생활整齊․淸潔․簡單․素朴․迅速․實在․守時間․守秩序의 新生活을 하자)을 모방하여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였다. 곧 새마을운동은 대만 황제화를 꿈꾸었던 장개석의 신생활운동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이다. 박정희는 그의 군국주의적 황제등극을 위해 신생활운동이 필요했던 거다. 이것이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의 결과로, 한국사회는 농촌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사회 전체가 전통문화의 파괴와 함께 오로지 박정희 황제를 위한 사회체제와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이어 박정희는 그의 황제화(유신헌법)로 가는 길에 일체 비판이나 어떤 말도 금하는 긴급조치(국가폭력)를 발동한다.(1호, 1974.1.8~ 9호, 1975. 5.13) 이로써 나라사람들은 국가적 감시체제와 억압적 통제체제하에 놓이게 된다.(이상, 박정희 관련 부분은 《생각과 실천》, 한길사, 2012, 219~224쪽, 함석헌학회 2013 추계학술발표 자료 참조)

결국 박정희 독재권력 때 있었던 유신체제는 일제가 입헌군주제를 탄생시킨 명치유신을 모방한 제도였고, 새마을운동은 중국의 장개석이 영구 군주체제 음모로 전개되었던 신생활운동을 모방한 정치작품들이었다. 작가는 바로 아이들의 성장모습에다 이라한 시대상황을 대비하여 우리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것이 변경섭 작가의 문학적 특징이다.

2. 작가는 일제시대부터 그렇게 되어가고는 있었지만, 특히 박정희 새마을운동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초가지붕문화, 우물문화, 모내기문화 등)가 깡그리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또 이기주의, 자본주의가 농촌에 파급되어, 농촌과 농민이 자본에 의해 어그러져 가는 모습을 주인공 현수의 생각으로 읽게 만들었다. 곧 새마을운동은 어린아이 눈에 비친 나쁜 마귀할멈이었다. 그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볼 수 있다. 현수가 그가 어릴 적 다니던 학교에 가보니, 학교 울타리 구실을 하였던 아카시아 나무들이 죄다 베어지고 시멘트 담벼락이 들어섰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전통적 농경사회가 자본적 산업도시로 바꾸었음을 말하려는 작가의 표현이다. 다만 현수라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자칫 초등학교 어린이였던 현수가 정말 그렇게 성숙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을 남기고 있기도 한다.

또 작가는 어린이 눈을 통하여 자본의 타락성과 부패한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곧 아이들 세상도 어른들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소설의 힘을 빌려 강조하고 있다. 백(권력의 힘, 돈의 힘)이 상용되던 시대의 이야기를 어린아이들 눈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곧 주인공 현수가 몸담고 있는 학급의 반장 영천의 경우이다. 그가 반장이 된 것은 그 어미의 치맛바람 덕이다. 바로 돈의 힘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반장(영천)은 정치로 말하면 여당권력이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학급아이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타락한 자본주의를 표현한 거다. 또 담임은 여러분이 영천을 반장을 추천하였다고 아이들 앞에서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일방적인 담임의 반장 임명이다. 영천의 반장노릇은 그 엄마의 돈의 힘이 작용이다. 곧 부패한 민주주의 현실이다. 서평을 쓰는 이 사람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대전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공부 못하는 애(목사 아들)가 전후기(옛날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뤘다.) 고등학교 시험에서 모두 떨어졌다. 그러나 그 애비(대전의 한 유명한 목사)가 그 아들을 대전 외곽의 고등학교(농고)에 입학시켰다. 그러다가 그해 한 학기를 마치고는 대전 시내 좋은 학교로 편입해오는 편법을 썼다. 유명한 목사가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도 환멸과 함께 자괴감을 느꼈다.

3. 다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소설에서 반장 영천은 늘 완장을 차고 다닌다. 해방조국에서까지 완장은 일제시대의 권위적 억압의 상징으로 나쁜 풍속의 연장이다. 완장만 차면 무슨 권력이라도 얻은 듯 기고만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윤흥길의 《완장》(1981~82, 현대문학)이라는 소설에서 읽은 그 장면들이 사실은 모두 맞았던 시절이 박정희 시대이다. 박정희 때는 빨강완장도 있고 노랑완장도 있었다. 그리고 이 완장 속에는 국가로부터 주어진 개별적 통제권리, 처벌권리, 축재권리 등등 모든 권력이 들어있었다. 완장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완장을 차고 다니면 벼슬아치보다 더하다. 완장은 곧 봉건시대의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이다.

소설에서는 유신체제가 만들어져가지는 과정도 한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유신을 지지하는 주민기반(국민투표에서 높은 지지율을 도출해 내기 위한 사전 준비)을 만들어내기 위해 학교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어린 학생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곧 때 아닌 가정방문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담임과 반장이 조를 짜서 가정방문 일정을 만든다. 이에 대하여 집안이 가난하고 자기 부모가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가정방문에 반대하고 실천적으로 저항한다. 여기서 반장과 담임선생은 권력자이고 이에 저항하는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권력자에 저항하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가정방문에 반대한 아이들은 고의로 집을 비우기로 했다.(아카나무 숲의 모의) 이 사실을 눈치 챈 반장 영천이 담임선생에게 고자질 한다. 선생이 가정방문을 고의로 기피한 아이들은 교무실로 끌려들어간다. 곧, 교무실은 경찰서 취조실인 셈이다. 모의에 가담한 아이들 중 가장 마음이 여린 아이가 먼저 담임의 협박에 못 이겨 자백한다.(박정희와 전두환 독재권력 때 국가전복음모 조작사건과 같은 성격의) 그리고 담임은 가담 아이들이 누구냐고 대라고 다그친다. 곧 고문이다. 담임은 가정방문 방해 행위를 국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폭언을 한다. 이것은 강제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행위다. 그리고 모의에 가담했던 아이들은 반성문을 썼다. 강제된 충성맹세다.

4. 주인공 현수는 고향이 싫었다. 비인간적인 현실로 가득 찬 도시로 변해가는 농촌모습이 싫었다. 이렇게 작가는 초등학교 어린 학생 현수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이 권력에 대해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것, 돈 벌겠다고 바둥바둥 거려도 안 벌리는 돈벌이(토끼사육), 외로움과 아픔만을 안고 살아가는 서민들이 웅크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조국의 현실에 비유하여 그렸다. 종태처럼 불의를 보고도 용기를 못 냈던 주인공은 그것을 종태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여긴다. 곧 권력이 저지르고 있는 부정과 불의를 보고도 말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을 죄인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죄책감은 주인공 현수를 내성적이고 폐쇄적으로 몰고 갔다. 이는 곧 작가가 현실을 외면하며 자기 일에만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한국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을 하고 싶은 게다.

소설의 끝 장면에서 작가는 현수가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현실도피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곧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현실도피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다. 어떤 면에서 현실도피는 곧 현실과 타협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실과 타협함으로써 자기비호를 하는 셈이다. 소설에서 “A읍을 벗어나기만 하면 매일 같이 옥죄는 듯한 답답함에서 탈출할 수 있고” .... 이 이야기는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우리들 속에 시간이 갈수록 자꾸 답답한 마음이 쌓이는 것은 웬일일까.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이 좋아지지 않고, 말할 자유, 글쓸 자유는 고사하고 생각하는 자유마저 박탈당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이야기를 마치자, 소설에서 종태의 죽음은 성공할 수 없는 사회이단의 죽음을 의미한다. 지쳐 쓰러지고 있는 한국사회 진보세력들의 처절한 모습을 말한다. 종태가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담임을 치받고 학교를 뛰쳐나간 것은 억압이 구조화 된 세상에 대한 자유정신의 실천이었다. 그러나 그 종말은 죽음이었다. 권력의 억압과 압제(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작신 맞고 팔 병신이 됨)로 많은 자유인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다. 참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모처럼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2013. 12.18 초고, 12.21 정리, 취래원농부 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