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말씀]
“6.25전쟁이 지나간 후 서로 이겼노라 했다. 형제 싸움에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은 진 것이 아닌가? 어찌 승정 축하를
할까? 슬피 울어도 부족할 일인데. 어는 군인도 어느 장교도 주는 훈장 자랑으로 달고 다녔지 “형제를 죽이고 훈장은 무슨 훈장이냐?”하고 떼어 던진 것을 보지 못했다./ 전쟁 중에 가장 보기 싫은 것은 종교단체들이었다. 피난을 가면 제 교도만 가려 하고 구호물자 나오면 서로 싸우고 썩 잘 쓴다는 것이 그것을 미끼로 교세 늘리려고나 하고...대적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 정치하는 자의 잘못을 책망하는 정말 의(義)의 빛을 보여주고, 그 때문에 핍박을 당한 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향락적인 생활은 마찬가지고 다른 나라 원조는 당연히 받을 것으로 알아 부끄러워할 줄 모를 뿐 아니라 그것을 잘 얻어오는 것이 공로요 솜씨로 알고...”(<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함석헌전집》 14, 한길사, 1985, 118-119쪽)
[오늘의 생각]
일찍이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쳤다. 반세기도 전에 한 말이지만 아직도 메아리는 없지만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민족은 분단으로 고착화되고 있고 사회는 특별히 양극화의 분열이 가속되고 있다. 또한 그는 “생각하는 씨이라야 한다.”고도 했다. 씨은 하나이면서 또한 여럿이다. 사(私)적으로 하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또한 여럿, 즉 전체가 함께 동의하는 공(公)적인 생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과 사는 한가지다.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이 함석헌이 생각하는 생각의 본질이다. (《생각과 실천》, 정대현외 7인 지음, 한길사, 2011, 18쪽)
이 두 글을 가지고 오늘 세가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는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가 하지 말라는 4가지(子絶四)는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이다. 무의(毋意)는 제멋대로 생각해 지레짐작하지 말고, 무필(毋必)은 기어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지 말며, 무고(毋固)는 고집부리지 말며, 무아(毋我)는 아집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을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를 억압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대다. 따라서 언론은 활짝 열려있다. 네티즌은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네티즌이 언론인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면 언론인의 역할은 감시하고 비판은 하되 결코 거짓을 말하거나 남을 공공연히 해치는 말을 세상에 던져선 안 된다. 내키는 대로 말을 쏟아 놓아서는 안 된다. 세상은 ‘말’ 때문에 얼마나 혼란스러워 지는지 모른다. 거짓 정보는 사회를 어지럽히고 한 개인으로는 그의 인격과 심성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게 사실을 확인하여 말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생각은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두 개의 사과가 있다. 하나는 아이작 뉴턴의 사과로서 1666년 과수원 나무 아래서 한가롭게 누워 있던 스물네 살의 뉴턴 머리 위로 떨어진 사과이다. “왜 사과는 똑바로 떨어질까. 사과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걸까?”란 의문을 가지면서 발견한 것이 현대 물리학의 시작인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두 번째 사과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은 6개월 만에 그만두었던 스티브 잡스! 1976년 그가 스물 한 살에 양부모의 집 차고에서 누가 한 입 베어 문 사과 모양이 애플컴퓨터사의 로고가 되었다.
이러한 애플의 1990년대 후반의 광고 카피는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다. 이것은 잡스의 철학과 특별함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일찍이 잡스는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훨씬 가까웠다. 아이폰 신화로 이어지기까지는 그의 야심작들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또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자신이 스카우트한 측근에 의해 쫓겨나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그에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생각 유전자가 있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상상했다.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20세기 IT 산업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라.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바꿀 줄 알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구겐하임 미술관 별관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장소를 바꾸고, 시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Changing Place, Changing Time, Changing Thought, Changing Future).”
인스턴트 시대에 사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언제부턴가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그러면 이 나라는 희망이 죽어가는 사회다. 젊은이들에게 생각하라고 말하면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취직도 못하는데 생각은 무슨 놈의 생각! 남녀노소,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돈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가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저 편하면 안주하고 힘들면 주저앉는다. 끝까지 악착같이 해보겠다는 헝그리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배를 불리기 전에 생각을 불려야 한다.우리의 인생길에 생각하지 않는 순간 우리 삶은 퍼석해진다. 생각을 상실한 틈새마다 절망의 곰팡이만 피어오를 것이다. 그게 인생을 늙게 하는 거다. 아니 죽은 거다. 생각은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이다. 삶이 팍팍하고 절박할수록 생각해야 한다. 삶의 그 어떤 처지에서든 생각만 하면 길이 보인다.
진심(眞心)이면 통한다. 정심(正心)이면 뚫린다. 그러므로 절실하고 절박하게 생각하라. 다시 생각을 꿈꾸자. 생각의 유전자가 바닥났는가?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서라도 생각하자. 그러면 미래가 바뀐다.(2012.2.27., 박정환)
박정환 목사님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영남신학대학교와 장신대 신학대학원(목회연구과)을 거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생태영성을 연구하여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강사이면서 포항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포항바다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바다’라 함은 “바름과 다름”의 합성어다. 박목사님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정보는 cafe.daum.net/seachurch에서 얻을 수 있다.
또한 박목사님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의 말씀]
“6.25전쟁이 지나간 후 서로 이겼노라 했다. 형제 싸움에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은 진 것이 아닌가? 어찌 승정 축하를
[오늘의 생각]
일찍이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쳤다. 반세기도 전에 한 말이지만 아직도 메아리는 없지만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민족은 분단으로 고착화되고 있고 사회는 특별히 양극화의 분열이 가속되고 있다. 또한 그는 “생각하는 씨이라야 한다.”고도 했다. 씨은 하나이면서 또한 여럿이다. 사(私)적으로 하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또한 여럿, 즉 전체가 함께 동의하는 공(公)적인 생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과 사는 한가지다.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이 함석헌이 생각하는 생각의 본질이다. (《생각과 실천》, 정대현외 7인 지음, 한길사, 2011, 18쪽)
이 두 글을 가지고 오늘 세가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는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가 하지 말라는 4가지(子絶四)는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이다. 무의(毋意)는 제멋대로 생각해 지레짐작하지 말고, 무필(毋必)은 기어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지 말며, 무고(毋固)는 고집부리지 말며, 무아(毋我)는 아집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을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를 억압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대다. 따라서 언론은 활짝 열려있다. 네티즌은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네티즌이 언론인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면 언론인의 역할은 감시하고 비판은 하되 결코 거짓을 말하거나 남을 공공연히 해치는 말을 세상에 던져선 안 된다. 내키는 대로 말을 쏟아 놓아서는 안 된다. 세상은 ‘말’ 때문에 얼마나 혼란스러워 지는지 모른다. 거짓 정보는 사회를 어지럽히고 한 개인으로는 그의 인격과 심성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게 사실을 확인하여 말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생각은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두 개의 사과가 있다. 하나는 아이작 뉴턴의 사과로서 1666년 과수원 나무 아래서 한가롭게 누워 있던 스물네 살의 뉴턴 머리 위로 떨어진 사과이다. “왜 사과는 똑바로 떨어질까. 사과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걸까?”란 의문을 가지면서 발견한 것이 현대 물리학의 시작인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두 번째 사과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은 6개월 만에 그만두었던 스티브 잡스! 1976년 그가 스물 한 살에 양부모의 집 차고에서 누가 한 입 베어 문 사과 모양이 애플컴퓨터사의 로고가 되었다.
이러한 애플의 1990년대 후반의 광고 카피는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다. 이것은 잡스의 철학과 특별함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일찍이 잡스는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훨씬 가까웠다. 아이폰 신화로 이어지기까지는 그의 야심작들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또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자신이 스카우트한 측근에 의해 쫓겨나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그에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생각 유전자가 있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상상했다.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20세기 IT 산업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라.
인스턴트 시대에 사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언제부턴가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그러면 이 나라는 희망이 죽어가는 사회다. 젊은이들에게 생각하라고 말하면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취직도 못하는데 생각은 무슨 놈의 생각! 남녀노소,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돈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가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저 편하면 안주하고 힘들면 주저앉는다. 끝까지 악착같이 해보겠다는 헝그리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배를 불리기 전에 생각을 불려야 한다.우리의 인생길에 생각하지 않는 순간 우리 삶은 퍼석해진다. 생각을 상실한 틈새마다 절망의 곰팡이만 피어오를 것이다. 그게 인생을 늙게 하는 거다. 아니 죽은 거다. 생각은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이다. 삶이 팍팍하고 절박할수록 생각해야 한다. 삶의 그 어떤 처지에서든 생각만 하면 길이 보인다.
진심(眞心)이면 통한다. 정심(正心)이면 뚫린다. 그러므로 절실하고 절박하게 생각하라. 다시 생각을 꿈꾸자. 생각의 유전자가 바닥났는가?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서라도 생각하자. 그러면 미래가 바뀐다.(2012.2.27., 박정환)
박정환 목사님은
또한 박목사님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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