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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정환 목사 칼럼

농민의 울부짖음이 무섭지 않은가.

by anarchopists 2019. 11.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1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미 FTA와 농민 씨알

내 고향은 지금 소리죽여 흐느낌의 눈물도 말라 버린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형해(形骸)만 남아있다. 그 어린 시절의 활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니 마음은 뻥 뚫려 찬바람만 지나간다. 들려오는 소리는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재벌들의 상품은 더 많이 수출되어 국익이 된다고 한다. 국익이 된다면 마땅히 쌍수를 들고 반겨야 할 터인데 왜 이리 마음이 착찹할까?

“애당초 농촌을 참는 것들이라고, 말 못하는 것들이라고, 무시하고, 그 기업가라는 욕심쟁이들만을 내세운 것이 잘못입니다. 이제 그런 식의 대기업은 앞이 없습니다.”
(<서풍의 노래>, 《함석헌전집》 5, 한길사, 1989, 206쪽)

1%의 재벌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때, 나머지 99%의 다수가 자신의 몫을 얻는 것이 불편하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는 정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겨우 6%대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므로 무조건 국익에 도움이 되니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무리를 한 결과가 오늘의 혼란이요, 그 상처가 곧 농촌입니다.” (앞의 글, 202쪽)

한자사전에 보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뜻을 이렇게 풀고 있다. “농업(農業)은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根本)이라는 말. 농업(農業)을 장려(奬勵)하는 말.”이라 한다. 과연 오늘의 현실에서도 천하의 인간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 될 수 있을까? 농업은 천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말은 소셜네트워크(SNS) 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오늘의 사람들이 인정이나 해줄까? 해준다면 오늘의 한·미 FTA 협상이 적절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선택은 현명하고 시의적절 했던가?

이 우주는 역(易) 곧 변하는 힘의 마당이고, 삶이란 거기 적응하면서 자기창조를 해나가는 것인데, 그 적응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잘못입니까?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되는 생명의 원리가 ‘천천히’라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깨뜨릴 수 없는 법칙이 있습니다. 변하지만, 천천히 됩니다. (앞의 글, 201-202쪽)

탈무드에 보면 빵을 먹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을 15번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쌀을 먹기 위해서는 여든 여덟 번 손이 가야 한다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다. ‘쌀 미’(米)자에는 ‘십’(十) 자 아래, 위와 아래의 팔이 합쳐져 88번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빵 한 조각에도, 쌀 한 톨에도 누군가의 지극한 사랑과 수고가 담겨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 육신의 건강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작금의 농촌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함석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라도 농촌을 살려낼 생각을 하여야 사람도 살아나고 민족도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고도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누구를 안락하게 하기 위해 있는 기계요 가축이며, 다른 민족의 죄짐을 대신 지는 속죄양일 것입니다.”
(앞의 글, 205쪽)  

“개인사상의 자유와 촌락공동체의 자치를 무시하는 민족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련을 정신으로 이기고 나면 인류를 건지는 운동의 앞장이 될 것입니다.” (앞의 글, 207쪽)   

농촌이 살아야 민족도 살고 나라도 산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농민 씨알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들 씨알은 이 나라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하늘 도리가 고마워서 그 잘못에서 전체의 멸망을 면케 하려고, 씨알에게는 겸손과 참는 덕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 “겸손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했습니다. 씨알이 못난 척 견디고 참지 않는다면 인간의 종자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참기 때문에 생명 자체의 지혜에 의해 다 망한 가운데서도 다시 살아납니다. 이 나라가 뉘 나라입니까? 결코 임금, 영웅, 대통령, 정치가의 나라가 아닙니다. 씨알, 죽도록 참는, 참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씨알의 나라지.” (앞의 글,  206쪽)  <2011. 12.16, 박정환)

박정환 목사님은
박정환 목사님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영남신학대학교와 장신대 신학대학원(목회연구과)을 거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생태영성을 연구하여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강사이면서 포항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포항바다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바다’라 함은 “바름과 다름”의 합성어다. 박목사님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정보는 cafe.daum.net/seachurch에서 얻을 수 있다.

또한 박목사님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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