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행사 관련

[박종강-제1강] 마하트마 간디의 변호사생활

by anarchopists 2020. 2.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5 09:01]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박정강]


간디의 변호사생활


들어가며
간디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영국지배에서 인도를 독립시킨 인도건국의 아버지이자 물레를 돌리면서 비폭력저항으로 인도를 독립시킨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다. 그러나 실상 간디의 출발은 변호사였고 변호사활동을 통해 사회개혁운동을 해 온 줄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인류역사상 자유롭게 독립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바로 간디다. 즉 간디의 사회변혁운동은 실정법에 대한 대응을 토대로 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은 간디가 변호사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간디는 변호사로서 남아프리카에서 철저한 단련을 통해, 자신의 비폭력저항(사티아그라하)을 인도에 뿌리내렸고, 이젠 전 세계에 하나씩 열매를 맺게 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결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가 발단되어 전세계의 경제위기를 가져와 온 세상이 야단법석이다. 이럼에도, 아직도 각 나라는 자기나라, 자기민족의 이익만 챙기려는 관성을 보인다.

이때, 힌두, 이슬람, 시크, 파르시 등을 아우르면서 양심의 소리 내면의 소리를 듣고 문제를 해결하다간 간디를 되살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이 나라의 문제해결방식은 너무 폭력적이다. 국회의 법안심의과정이나 용산재개발과 관련된 철거민사망사고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사회전반에 깔린 안개가 폭력의 기운이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양심의 소리, 진리에 귀 기울이면서 모든 이에게 평화를 전달하려 했던 간디를 이 땅에 스카우트해보면 어떨까?

이 나라 변호사법 1조에도 변호사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것을 변호사의 사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간디의 수많은 활동 중에서 간디가 변호사로서 구체적으로 의뢰인을 어떻게 변호하였는가에 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과연 이 시대 이 나라의 법률가가 행하여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간디의 영국변호사 자격취득 과정
본래, 간디의 조부 우탐찬드 간디, 부 카람찬드 간디는 토후국인 포르반다르의 총리를 역임했고, 카스트는 바이샤계급이었다. 간디는 1869년 카람찬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서 1887년 아메다바드의 사말다스대학에 입학한다. 간디는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는데 간디는 간디집안의 후견인의 권유로 영국유학을 결심한다.

당시 간디집안의 후견인인 마지브다베는 “간디집안이 대대로 누려온 포르반다르의 총리를 할려면 영국유학을 통해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권유하였다. 그래서 간디는 1887.8.10. 뭄바이에서 영국런던으로 향했고, 1988.9.29. 런던에 도착한다. 당시 런던에는 4개의 법학원이 있었는데, 간디는 이너템플법학원에 입학하고 2년 6개월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한다.

영국의 변호사제도는 법정변호사(Barrister)와 사무변호사(Solicitor)로 구분된다. 간디는 법정변호사가 될 수 있는 이너템플대학원과정을 마친 것이다.

당시 간디가 런던을 떠나기 전 영국에 와서 법률가가 되려했던 연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간디는 “한마디로 야망이죠, 영국에 가면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철학자와 시인들의 나라이자, 문명의 중심인 영국을 구경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간디도 변호사를 하고자 것이 사실 간디집안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하는 욕구였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고, 그것은 이 나라 법률가들이 법률가가 되려했던 동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박종강, 내일 계속)

박종강 변호사님은
사법고시 33회 출신이다. 법률사무소 “민중”에 소속되어 사회적 약자를 돕는 변론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세병인권변호단,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기자, 한국소비자보호원 소송지원단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제도권의 로스쿨에 반대하여 빙송통신 로스쿨(민중로스쿨)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 함석헌학회 감사직을 맡고 있으며 새물결포럼, 함석헌평화포럼에도 관여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