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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박근혜님에게 《討黃巢書》을 보내드립니다.

by anarchopists 2019. 10.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6/11/17 06:44]에 발행한 글입니다.

박근혜님에게 《討黃巢檄文》을 보내드립니다.

우리 역사에 남북국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는 만주와 한반도 땅을 장악하고 있던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거쳐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 698~926)로 진입합니다. 사국시대에 불행하게도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사국을 신라 중심으로 통합하면서 만주와 원산만 이북의 땅을 중국 당나라에 내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 영토는 한반도로 축소가 됩니다. 그러나 고구려 후손들이 고구려가 영토(만주와 연해주)를 되찾고자 ‘발해’를 세웁니다.(698) 그리고 원산만을 경계로 신라와 대치합니다. 이를 우리 역사에서 남북국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북국시대를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로 보는 것은 ‘자기축소지향’적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북국시대는 남조의 신라가 분열되고(900) 발해가 거란족이 일으킨 요나라에 멸망하면서(926) 그 존재를 다하고 고려라는 나라로 통일계승을 하게 됩니다.

남북국시대, 남조 신라에 최순실의 조상일지 모르는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9세기는 신라가 부패타락하면서 기울어가는 나라운세에 있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남북이 이념적으로 대치하면서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대통령이 무능하여 주변사람들에게 노리게감으로 전락하여 나라사람들의 분노가 진동하는 시대 분위기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마 뒤, 신라왕실에 반기를 드는 궁예(弓裔), 견훤(甄萱) 등 호족세력이 나타나 나라가 삼분사열(三分四裂)되어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최치원(崔致遠)은 기울어져 가는 조국에서 더 이상 버티며 살기 어렵다는 부친의 판단에서 당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나 당나라에 와 보니 당나라 왕실도 신라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환관의 횡포와 인민의 수탈”로 당시 피지배층이었던 농민들이 살아 갈 길이 막막한 지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각지에서 당 왕실에 반기를 드는 농민기의(起義)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농민기의를 이끌었던 사람이 왕선지(王仙之)와 황소(黃巢)입니다. 황소는 낙양을 점령한 뒤 당 나라 수도 장안(長安)까지 점령(880)하고 당시 당나라 왕이었던 이현(李儇, 시호 희종)을 망명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나라이름을 대제(大齊), 자신의 통치기간(연호)을 금통(金統)이라 했습니다. 황소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바른 정치를 못하고 그를 둘러싼 간신배들과 함께 나라와 백성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이익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우리는 최치원이 토황소격문(황소의 난을 격퇴시키는 글)으로 볼 때 분명 황소는 처음에 기의(起義)를 하였지만 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후에는 그를 따르는 농민들을 배반하고(空約) 반적(叛賊)이 됩니다. 그러던 차에 최치원은 당의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사천성(四川省)으로 도망가 있던 왕 이현으로부터 토벌총사령관 밑의 괸직인 종사관(諸道都統檢校太尉)의 벼슬을 받습니다. 이에 토벌사령관은 최치원에게 황소를 격퇴하는 격문을 쓰게 합니다.(격황소서檄黃巢書) 이러한 사실은 중국 역사책이 아닌 최치원이 당시 신라의 왕(金晸, 시호 헌강왕)에게 바친 그의 문집인 《桂苑筆耕》(계원필경집)에 실려 있어 알게 됩니다. ‘격황소서’라는 제목이 우리에게는 《討黃巢檄文》(토황소격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는 처음부터 재미있는 글귀가 나옵니다.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양심)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는 것을 권(權=권력)이라 한다. 지혜로운 자가 성공하는 이유는 때를 잘 알고 이에 순응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은 자가 실패하는 까닭은 세상의 이치를 거슬렸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이 백년을 사는 동안, 죽고 사는 때를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일은 마음이 주관하는 바, 그 마음으로 일의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있다.”(夫守正修常曰道, 臨危制變曰權, 智者成之於順時 愚者敗之於逆理 然則雖百年繫命, 生死難期 而萬事主心 是非可辨)라고 함으로써 사람은 어떤 일에서 물러날 때와 들어갈 때를 알아야 하는데 그 때를 알려주는 것은 인간의 육신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공허한 자는 “때”를 알지 못하여 패가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지 못했던 ‘마음’ 때문에 총에 맞아 죽는 일을 당했다고 봅니다.

이어서 최치원은 다음과 같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큼 더 좋은 일은 없다.”(凡爲人事 莫若自知) 또 쓰기를, “《道德經》(도덕경)에 이르기를, “사나운 회오리바람도 아침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소낙비도 하루 종일 내릴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늘의 조화도 영원치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道德經云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자연의 이치도 생성되고 소멸되는 때가 있이어 영원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주제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썼다고 봅니다. 먼 옛날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도덕경에 말을 전한 노자(老子) 또한 생물연대는 모르지만, 공자(孔子)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니 대략 기원전 6세기 사람으로 보입니다. 곧 그리스의 소트라테스보다 100여년 앞서 간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가 벌써 “너 자신을 알라”는 깊은 뜻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너 자신 알라”는 이 말의 뜻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른다면 옛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이 됩니다. 더구나 나라의 최고지도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연의 조화도 영원한 것이 없는데 어찌 사람의 일이 영원하겠습니까. 그래서 “너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물러날 “때”와 “자신을 아는”일은 인간으로써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최치원은 또 쓰고 있습니다. “너는 교만과 독선을 그만 부리고 기회가 났을 때,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고 과거의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飛吾折簡之詞 解爾倒懸之急 汝其無成膠柱 早學見機, 善自爲謀 過而能改) 그리고 “물러날 때를 잘 헤아려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잘 판단하라”(爾須酌量進退 分別否臧) 최치원의 글은 처음에는 부드럽게 써들어가다가, 점점 격한 필체를 보입니다.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 위와 같이 글이 격해집니다. 그야말로 격문(狊文)입니다. 개가 닭을 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최치원의 윗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겠지만 여기서는 일국의 황제인 황소에게 격(狊)하듯 “너”라고 번역해 봅니다. “너 이제 교만과 독선을 그만 부리고 기회가 났을 때 살길을 모색하라” 지난 12일 서울의 촛불집회에서 함성을 지르는 100만 민인들의 소리라고 봅니다.

아마도 박근혜님은 구중궁궐에서만 자라서 인지 성찰(省察)과 반성(反省)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당신이 성찰/반성을 안 한다면 글쓴이가 대신 성찰해 봅니다. 우리는 여기서 2012부터 일어난 과거를 성찰해 봅니다. 성찰할 일은 적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큰 것만 추려 봅니다.

1) 18대 대선의 선거부정과 개표부정이 있었다는 민인들의 소리를 개무시(개보듯 무시한다는 뜻)하고 있는 점
2) 국정의 책임자로써 세월호 참사 원인을 밝히려 하지 않고 있는 점.
3) 절대다수의 역사교수와 교사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 한 점
4) 겨레통일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전쟁분위기(북조선의 도발 유도)를 부추긴 점.
5) 미국에 대한 자발적 노예가 되어 싸드 배치가 국익이 된다고 우긴 점.
6) 대선 공약(公約)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공약(空約)으로 만든 점
7) 통일대박을 기만한 점과 통일의 초석인 개성공단을 폐쇄한 점
8) 굴욕적인 한일위안부협상을 한 점과 위안부의 치욕적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점
9) 부익부 빈익빈 정책으로 평등경제원칙을 위반한 점과 말도 안 되는 창조경제를 남발한 점
10) 메르스로 나라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갔던 점
11) 국가기밀을 민간인(이른바 비선실세)에게 팔아넘긴 점
12) 직업창출 운운하며 해고노동자를 다량으로 창출한 점
13) 나라관료 선발을 전제군주처럼 한 점.
14) 국가폭력을 조장한 점-백남기사태를 묵살한 점.
15) 간신배들로 주변인물을 채운 점 등등

박근혜 당신이 ‘피를 토하는’ 성찰이 요구되는 부분들입니다. 최치원이 오늘날에 되살아나서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면, 토근혜격(討槿惠檄)을 썼으리라 생각됩니다. 글 내용에 무엇을 담았을까요, 아마도 “물러날 때를 잘 헤아려서, 물러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현명하게 판단하라(爾須酌量進退 分別否臧)고 또 썼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100만 촛불시민들도 최치원처럼 점잖은 말을 쓰고 있다고 봅니다. 집회에 나온 분노하는 민인들의 각자 쥔 팻말에서 ”박근혜 퇴진“, ”박근혜 즉각 하야“ 등 부드러운 문구를 쓰고 있습니다. 성난 분노의 목소리이면서 착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일개 외국인 최치원이 과감하게 대제의 황제에게 격문을 날렸지만 우리는 행정부 수장인 박근혜님에게 격문이 아닌 권문(勸文)을 보내봅니다. 최치원의 격문으로 황소는 그만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자빠지고 맙니다. 만찬가지로, 이 권문을 기하여 행정부 수장이신 박근혜님이 자신을 알고 그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머님의 피살, 아버지의 피살과 함께 가문의 수치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어처구니없게도 근시안적 사고와 얄팍한 혼을 가진 변호사를 선임하여 구구한 변병을 하는 등 시비의 판단이 흐리고 있으니 딱합니다. 최치원이 말을 했듯이 기회가 있을 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살길을 모색하는 게 현명하지 않나 하는 판단입니다. 이글을 마치기 전에 한 시민이 한 이야기를 옮기면서 끝을 맺겠습니다.

경복궁의 뒤뜰을 걸어보았답니다. 그 당시 고달픈 민초들의 삶이 보입니다. 날마다 계속되는 헐벗는 가난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풀뿌리처럼 살아간 민초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왕족 등 특권계급이 사라지고, 신분질서가 없어진 지금인데도 자신이 여왕인 듯 착각하며 질기게 버티고 있는 건물 안 사람이 저곳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라의 우두머리라는 사람이 고작 생각하는 게, 자신은 닭000이고 민초들은 새000라고밖에는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딱한 세상입니다. 이제 내려와야 할 때임을 모르고 있으니 새대가리보다 못한 닭000입니다. 역시 민초들은 예나 지금이나 순진합니다. 뒤늦게 후회하고 맞벌이도 접어두고 촛불 들고 희망을 찾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니 보기가 애처롭습니다. 당신 물러가라고 한들 나라가 망신창이 되고 지들 먹고사는 문제가 이미 농락을 당한 이 마당에....보기가 더욱 안타깝습니다. 먼 옛날, 지배층에게 희생한 저들 민초들의 슬픔보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나라 지도자를 향해 분노를 터트린 이 나라 민초들이 더욱 초라하게 보입니다. 자기이익만을 쫓는 나라지도자를 앉혀놓고, 어둠의 불을 밝히고 있는 민초들이 너무나 처량하게 보입니다. 세계언론도 자기들 언론에 보도를 했네요. 지구 끝까지 이 나라의 부끄러움이 회자되었네요. 세계역사에 땟국이 되어 들어가 앉을 우리 대한민국이 되고야 말았네요. 우리 역사상 청와대는 초유의 범죄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웃기는 변호사를 선임했네요.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거지요. 청와대는 오늘도 그저 희희락락하며 고집스럽게 우리 민초들을 개무시하고 있군요. 창피합니다. 한국인이라는 게. (2016. 11.15, 취래원농사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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