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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헬조선을 아십니까

by anarchopists 2019. 10.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5/11/30 06:2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학회≫ 2015년 추계 학술 발표회

-여는 말-헬조선을 아십니까
  ‘헬조선’이란 말을 아십니까. 저는 부끄럽게도 최근에야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조어거니 생각하고 어떤 신문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공동체를 지칭할 수도 있겠거니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다가 최근 한 신문이 젊은이들의 처지를 자세히 보도하는 특집기사를 보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헬 조선’의 원인을 제공한 세대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 기사에서는 ‘사회 붕괴’ 소리까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제 관찰과 일치합니다. 도덕도 원칙도 없는 사회가 공동체로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 부산의 교수와 지식인들(400명)은 선언서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대한민국호는 항로를 잃고 거센 파도에 표류하고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뿐만 아니라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와 이로 인해 심화하는 빈부 격차 등을 언급하며 "위기를 위기로 극복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민족과 국가는 소멸되었다"고경고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험로이지만 올바른 길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도덕, 윤리, 상식, 양심은 일상 사전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권력의 유지와 쟁취를 겨냥한 해괴한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만이 판치는 사회를 만들어 그야말로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로서 존재해야할 이유도 상실되었습니다. 북이나 남이나 마찬가지 형국입니다. 자살률 등 각종 부정적인 통계는 대개 세계 최악을 찍고 있습니다. 어디에라도 희망을 걸 데라도 있다면 참을 만 한데, 과연 있을까요. 젊은이에게 무언가가 있다고도 하는데 그것이 일부이지 전체적인 사회세력으로 전환될 시점이 과연 올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기존의 세대로 편입되고 말 것이 아닌가요.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청년들에게 대보십시오.

(* 왼쪽부터 석경징 교수, 신대식박사, 이재봉교수)
함석헌 선생이 중시한 정치, 언론, 교육, 종교가 모조리 다 부패하고 제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랩니다. 모든 것이 상업화, 사유화되는 판이고 국가, 정부가 사유화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당이 사당화하든지 이익-집단화 되었습니다. 사회 각층 모두가 사리사욕의 늪에 빠져있습니다. 공의를 부르짖고 공분(公憤)을 표출할 집단이 (일부 노동자 빼고) 어디 존재합니까. 심지어 함석헌의 뜻을 살리고 실천해야할 사람들과 도구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 주요한 통로인 저술이 5년 전부터 봉쇄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겨우 3권이 풀렸지만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함선생이 그렇게 외치던 ‘진리의 바통’이 전달될 통로가 없습니다.

사회 붕괴의 조짐 하나는 소통의 주통로인 언어의 오용과 혼란입니다. 말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가리키고 그려내는 도구여야 하는데 명실상부(名實相符)하지 못하니 상호 간, 정부와 국민 간, 부모와 자식 간 소통이 안 됩니다. 정치인 특히 국가수반의 공약(公約)은 거개가 공약(空約)이 된지 오랩니다. 그것을 비판 없이 앵무새처럼 받아 적어서 그대로 전달하는 언론은 더 이상 공론(公論)이 못 되고 헛된 공론(空論)만 일삼는 정부광고지일 뿐입니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인 방송은 (한 종합 채널의 뉴스 정도를 빼고) 모조리 집권당과 정부 사설 방송이 되어 버렸습니다. 더 이상 공영방송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실상과 사실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환경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는 원천무효에 해당 합니다.

다른 폭력도 점차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이렇듯 언어폭력과 각종 폭력이 오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캐더린 한 선생이 주도하고 있는 비폭력대화 기법이 지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최근의 정치폭력 사건이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國定)화 강행입니다. 이것은 함석헌 선생의 역사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살아 계셨다면 뭐라고 외셨을까 우리가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정화도, 그가 역설한 대로, 사라져야할 국가주의가 저지른 폭력이라 할 것입니다. 민중, 국민이 주체인 역사를 부정하고 왕조사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반동적인 짓이라고 질타하실 것입니다. (남북이 헌법에서는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다 왕조임을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국정화를 고집하는 사람이 ‘종북’주의자라는 최광 교수의 논리는 들어맞습니다.) 오늘 한국사회는 수구세력이 쳐놓은 ‘종북’의 올가미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국정화 문제에서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역사는 ‘민중의 이야기’여야지 소수 지배층의 가족사가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역사는 엄정한 사관과 민중이 기술하는 것인데, (사실상 왕이 된) 통치자가 직접 기술하겠다는 주장은 군주시대 수준에도 못 미친 주장입니다. 정권과 지도자는 역사 기술의 대상이지 주체가 되겠다는 것은 무식한 독재자, 독재국가의 발상입니다. 다양한 가치관, 세계관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시대에 한 가지 역사기술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인류역사를 퇴행시키는 짓입니다. 함석헌이 중시한 생명의 본질적 특성은 성정과 진화입니다. 퇴행은 반생명적인 행위입니다. 더구나 친일파를 정당화시키는 역사기술은 북한보다도 뒤떨어진 주장입니다. 여기서 함석헌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그는 창씨개명도 거부하고 민족교육이 불가능해진 오산학교의 교사직도 내팽개친 진정한 역사가요 엄정한 사관이었습니다.

역사는 해석이라 한다면, 모든 해석은 주관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객관성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함석헌은 그래서 주관과 객관의 구별을 없앴습니다. 주관이 객관이고 객관이 주관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역사책이 더 공정하고 올바른지 그것은 독자(피교육자)와 교육자가 판단할 일이지 정부나 지배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현 정부가 객관성을 들이댈 자격이 없습니다. 이러한 함석헌의 역사관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청와대와 교육부, 국회의원들에게 우리 학회 이름으로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보내주면 어떨까요.)

오늘 발표회는 이 중요한 ‘언어’와 ‘(비)폭력의 사회적인 실상을 폭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두 가지는 함석헌선생도 중시하고 실천한 주제입니다. 그 도구로서 그는 『씨알의 소리』를 발간했습니다. 공허하고 폭력적인 언어의 난무는 한국사회를 바벨탑처럼 몰락시키는 지름길입니다. 함석헌은 비폭력을 (간디처럼) 종교적 진리와 타당한 실천방법으로 내세우고 평생을 사회정의와 사회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지적하고 저항해야할 학자, 지식인들은 함석헌이 발현한 꼿꼿한 선비 정신의 전통은 어디 가고 ‘연구’라는 이름으로 공리공론만 일삼고 있습니다. 오늘 발표하는 세 분은 그런 학자가 아니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평생 정의로운 사회와 민족공동체를 위해서 몸소 실천한 분들이기에 공리공론이 아닌 실천, 체험의 결과와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가 함께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임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경청과 활발한 논의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5.11.14
함석헌학회 회장 김영호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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