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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어록과 단상

목사가 세상살림까지 하시겠다구

by anarchopists 2019. 12.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24 06:2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어록과 단상:
“삶은 하늘 맘을 닮은 사랑 내기다”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선생은 또 목사까지도 하나의 제도화된 속에서 자격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참다운 교육의 또 종교의 지도자가 없는 것이 커다란 문제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네가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가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까 그 말은 듣되 행하는 것은 본받지 말라”, 세상이 옳게 되었으면 모세의 자리에-모세의 자리는 딴 것이 아니고 정치와 종교 다 합한 사람의 모든 살림을 다스려가는 자리입니다-있는 것처럼, 말도 옳게 해야만 딴 사람도 지도할 수 있지만, 말만 그렇게 하는 것뿐이지 살림이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옳은 말을 버릴 수 없어서 말은 듣되 그 살림은 본받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내 속의 스승은 만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이의 말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은 향락을 위한 모든 것을 생산해서 소비하게 합니다. 사람이 만일 실질적으로 나만이 아니고 딴 사람도 똑같이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표준으로 하고 어떤 사람도 같이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비교적 살기 쉬울 것입니다. 곧 우리의 삶이 깊어질 것입니다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375-376).

성직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참 맘이 담긴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말을 하되 사람의 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맘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의 맘은 사시사철 때를 따라 씨알들을 먹이고 입히면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푼 넓고도 깊은 맘이다. 그러니 하늘의 맘은 살림의 맘이다. 그 맘을 말하는 성직자는 하늘의 맘도 알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늘의 맘이 살리는 맘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성직자는 하늘의 맘을 따라 하늘의 말을 말해야 한다. 더불어 하늘의 맘을 알고 살림의 맘을 담은 몸의 바탈을-뜰-틀[模範]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성직자는 하늘의 맘을 그럴듯하게 싸고 감춰서 소리는 내뱉을 수 있으나, 하늘의 맘을 닮은 몸짓이 없다면 아무리 그 사람의 입에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텅 빈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일부 성직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서 있는 터에서 하는 말이 옳은 말이나 되듯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해보겠다고 정당을 꾸리는 말-흉내 혹은 입에 있는 혀를 움직여 막된 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말이 하늘의 맘을 담은 맑은-말이 아니라 그저 한갓 사람의 맘이 담긴 몸-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백성들도 이미 “욕심이 현대의 종교가 되었”(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377)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가 이럴수록 “말하는 것과 살림하는 것이 일치되어야”(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375) 하는데, 앞서서 하늘의 맘에 쏙 드는 참 몸짓으로 백성을 이끌어 주는 스승이 없으니 그게 문제다. 사람의 몸-말을 하늘 맘-뜻이 담긴 하늘 맘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은 스승이 아니다. 그들은 몸-말과 몸-소리는 있어도 하늘의 맘, 그리고 하늘의 말과 함께 씨알을 이끄는 하늘의 참 몸짓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씨알은 똑바로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그가 하늘의 맘을 품고 있는 하늘의 참 몸짓을 같이 아우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래야 그가 참 스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참-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내기다. 으뜸이 되잔 것이 삶의 바탈이요 겨냥이다...... 삶은 내기다, 내고 내라는 나다...... 삶은 사랑이다. 사랑내기다. 사랑이 으뜸이요, 으뜸은 사랑이다”(함석헌전집, 『두려워 말고 외치라 11』, 한길사, 1984, 382-384).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서 사랑을 내고, 내고 또 내서 그 사랑이 마치 ‘나’인 양 그리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사랑이 나고, 내가 사랑이듯이.
그래서 하늘 맘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사랑만이 으뜸으로 알고 살아간다. 정치(政治)란 안으로는 자신의 몸을 다스리고(政), 밖으로는 백성의 몸과 마음을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治). 몸을 다스릴 수 있어야(政), 백성의 몸을 지킬 수가 있는 법이다(治).
몸을 바로 잡아야 몸-말에서 옳은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그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늘 맘에 기대는 척하면서 단지 몸-말로만 백성의 맘을 마음대로 잡아보겠다고 하니 어디 될 법한 소리인가.

성직자는 하늘 맘을 그들 맘속에 백성보다 더 그득하게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성직자는 오롯이 하늘 맘이야 말로 사랑임을 으뜸으로 알고 백성들의 맘속에서 사랑을 내고 또 내면서 살아가도록 해주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것이 이 흐릿한 세상에서 맑은 맘을 가지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될 때에야 하늘 맘이 깊고도 넓어서 헤아릴 수 없듯이, 이 세상도 하늘 맘이 많이 퍼져서 살맛나는 세상, 살맛이 깊이 우러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이처럼 성직자가 하늘 맘에 바탈을 두고 하늘 맘을 펼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직자의 본디 그러한 정치가 곧 사목(司牧) 혹은 목회(牧會)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묻고 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하늘인가 아니면 이 세상인가. 저마다 하늘 맘이 내 맘처럼 깨닫고 살아가면서 하늘 맘을 그들의 참-말과 참-몸짓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하늘 맘을 따르고 하늘에 속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든, 성직자이든, 아니면 백성들이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늘 맘을 내 맘에 모시고 하늘 맘이 주는 맘을 말하고 우리 몸에 하늘 맘이 머물고 있듯이 살아가기를 바란다(2011/09/24;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아래)은 동아일보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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