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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독자칼럼] 어느 노동자의 고민- 잔업과 특근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

by anarchopists 2019. 12.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0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어느 노동자의 고민
잔업과 특근,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

5월은 빨간 날이 많다. 달력의 빨간 날을 보면서 놀러갈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지친 몸을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 또 있다. 특근 몇 대가리를 해서 돈을 얼마를 더 벌 수 있겠다는 계산도 할 수 있다. 5월 작업계획이 ‘풀 잔업’, ‘풀 특근’으로 잡혔다. 이번 주만 해도 2,3,4,6일은 10시간씩 ( 회사 사정으로 4일은 정상근무를 했다 ), 5일 특근, 7,8일 특근이다. 회사의 작업계획은 거의 차질없이 진행이 된다. 특근날도 평일 날 못지않게 출근율이 좋다.

모두들 그동안 잔업, 특근이 거의 없어서 가정경제에 조금씩 구멍은 났을 것이고, 잔업, 특근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서 구멍 난 가정경제를 메꿔야겠다고 생각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삶의 질과 잔업, 특근에 대한 자기 통제력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잘 산다는 것. 돈보다도 적절한 휴식과 여유,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통제가 전제가 될 것이다. 모두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다 알고, 누구나 ' 잔업, 특근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고 한다. 하지만 잔업, 특근이 없으면 생활이 쪼들린다고 잔업, 특근을 시켜달라고 한다. 그리고 잔업, 특근이 없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임금이 올라야 한다고도 한다.

잔업, 특근에서 벗어나서 주40시간만 일하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단지 돈보다 휴식과 여유에 무게를 더 두는 노동자들의 인식의 변화가 문제인가? 아니면 임금이 확 더 올라야 하는가? 잔업, 특근을 구조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주문물량에 따라 생산이 결정되는 공장. 주문만 하면 물량을 만들어 내는 공장, 매주 40시간 일하다가도 필요하면 70시간을 일할 수도 있는 공장.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너무나 놀라고 좋아했을 것 같다. 정말 자본이 원하는 놀라운 유연성의 공장이 아닌가? 아마도 지엠대우 공장은 전 세계 지엠공장 중에서 주문물량에 맞추어서 생산일정을 정확히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공장이 아닐까? 일단은 노동자들의 몸과 건강의 한계치에 대한 고려 없이, 주문물량에 따라서 무한정 생산일정을 늘렸다, 줄였다하는 지엠의 생산방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잔업, 특근, 자발적인가, 아니면 강제적인가?
잔업, 특근은 강제적인가, 자발적인가? 다들 돈이 필요하니까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노골적인 강제잔업, 특근의 양태를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자발적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매달 작업계획서가 나온다. 주문물량이 나오면 이에 맞추어 생산계획을 짜고, 한 달 단위로 작업계획서가 나온다.

이 작업계획서는 위로 생산담당임원에서 밑의 작업자에게까지 반드시 완수해야 할 명령체계로 작동을 한다. 생산의 모든 관리체계는 잔업, 특근에 빠지는 인원을 최소화시켜서 생산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들어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통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작업자들에게는 노골적인 강압을 한다. 잔업, 특근을 빠지겠다고 하면 ' 왜 '를 묻고 ' 그런 것 가지고 왜 빠지냐? '는 압박을 한다. 그래서 상당수의 유순한(?)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을 빠지는 것이 아주 특별한 일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직장동료 간 압박도 있다. 잔업, 특근에서 빠지더라도 생산에 지장을 주지 않을 범위에서 빠져야 한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다양한 형태의 압박이 온다. 그것은 관리자의 압박도 있지만 직장동료들 간의 압박도 있다. 한 사람이 계속 빠지면 누군가 필요할 때 특근을 빠질 수 없다는 그런 압박.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규범을 통한 규제도 있다

잔업, 특근에 빠지지 않고, 연월차를 적게 쓰는 사람 = 근태가 좋은 사람 = 성실한 사람 잔업, 특근을 잘하지 않고 연월차를 많이 쓰는 사람 = 근태가 좋지 않은 사람 = 불성실한 사람 이러한 근태에 근거한 ‘평가틀’은 회사가 부서이동 등의 판단기준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또한 이러한 기준이 현장노동자들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심지어 대의원 선거에서도 판단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준이 내면화되면 ,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 대중성'이라는 이름하에 현장조합원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근태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잔업, 특근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가기 보다는, 잔업, 특근을 열심히 해서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활동을 잘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조밀하고 교활한 강제성과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필요성에 의한 잔업, 특근의 추구 (= 경제적 강제 )와 결합이 되는 것이다.

자기결정권, 자기결정력?
잔업, 특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이든 조직적이든 잔업, 특근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잔업, 특근의 작업계획의 작성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별로, 월별로 잔업과 특근 등 초과노동의 시간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조합이 잔업, 특근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과도한 잔업과 특근을 제어할 수 있기도 하지만, 잔업, 특근의 통제력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대 회사 교섭력은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노동조합이 잔업과 특근을 통제하려 하면 잔업과 특근을 하려고 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반발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이다. 즉 잔업과 특근에 대한 대중적인 토론과 성찰이 있어야만 노동조합의 ‘개입력’이 생길 수 있다. 잔업과 특근이 없었던 한달 전의 공장과 잔업과 특근이 풀로 돌아가는 지금의 공장은 전혀 다른 공장이다. 그리고 개개의 노동자들의 일상도 전혀 다른 일상이고, 전혀 다른 삶을 생산한다.

매일 매일 몸과 정신, 관계의 파괴는 눈에 보일 정도로 크고 강력하다. 이것을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그나마 일이 있어서 돈을 더 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2011. 5.6, 김삿갓)

* 김삿갓님은 네이버 불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엠대우의 노동자로 노동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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