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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논쟁] 함석헌과 사회진화론 4

by anarchopists 2020. 1.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4/02 06:17]에 발행한 글입니다.

3. 서구 사회 이론 해석의 문제

나. 사회진화론과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의 혼동
다시 지적하지만, 정치적으로 남용된 개념이 엄밀하게 말해서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에 해당하는 것이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는 사회진화론 자체나 그것을 대표하는 이론이 아니다. 사회 다윈주의는 "다윈주의를 사회현상에 확대 적용한 것으로서 특정적으로 사회학의 한 가지 이론"일 뿐 사회진화론 자체는 아니다. "사회문화적 진보는 집단 간 갈등 및 경쟁의 소산이며 (부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과 같은) 사회적으로 엘리트 계층이 존재투쟁에서 생물학적 우위를 점유한다고 보는 견해"는 결국 ‘단명으로 끝난 이론이었다. 이것을 사회진화론 자체와 혼동하는 것은 주제 담론의 역사와 맥락을 놓친 결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진화론의 고전적인 형태를 정립한 허버트 스펜서의 입장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스펜서가 비판 받아야 될 주장만 내세운 진화론자였던가. 그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철학자, 저명한 고전 자유주의 정치이론가이며 사회학 이론가였다. 그의 박학다식한 학문연구는 종교학, 경제학, 정치학, 철학, 윤리학,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을 포함한 광범한 주제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모든 분야를 꿰뚫는 패러다임으로서 물리적 세계, 생물학적 유기체, 인간 정신, 인간 문화 및 사회의 진보적 발전으로서 포괄적인 진화 개념을 발전시켰다.

스펜서는 진화의 법칙을 축으로 하여 종합철학(synthetic philosophy)의 체계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스펜서는 다윈의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설을 새롭게 ‘(최)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해석했다. 다윈은 그의 논의를 의식적으로 생물학적 현상에 제한시켰다. 스펜서는 인간사회는 물론 우주를 아우르는 보편적 진화를 논했다. 다윈은 변종과 유전성(inheritance)을 다 중시한다.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변종을 적자생존의 맥락에서 사회 계층화를 뒷받침하는 개념으로서만 인정하지 이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유전성만 중시하였다. 유전성이 변종을 개입시키지 않으므로 사회계층화가 항구화되는것이 자연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와드(Lester Ward), 헉슬리(T.H. Huxley) 등 다른 사회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의 사회적 함의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과학자로서 이들은 자연의 불평등에 대한 관념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이들은 사회개혁가들이었다. 이 디렘마에 대한 그들의 해결책은 불평등을, 당분간 참아내야 하지만, 점차적으로 인위적 선택에 의하여 제거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그 사회에 덜 적합한 구성원들을 지원하는 책임을 져야한다, 동시에 덜 적합한 자들은 재생산을 하지 않도록 말려야 한다는 것이다."(404)

여기서 오늘의 가치관과 윤리의 관점에서 부정적이거나 탓할 내용은 거의 없다. 일반적인 사회진화론 정신에 충실하다. 다만 다소 부정적으로 들리는 부분은 우생학의 냄새가 나는 q분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악용한 우생학 자체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벼와 개의 경우처럼, 식물과 동물 배양에 적용한 우생학의 덕을 우리가 생활 속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는 낙태 문제에서처럼 좀 더 신중하게 윤리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사회 다윈주의는 20세기 초까지에는 사회과학 내 한 운동으로서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자연선택은 더 이상 사회적 행위에 대한 합법적인 정당화로 간주되지 않았다. 인간행동의 생물학적 범위와 윤리적 범위가 다른 것으로 간주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두르켐을 포함한 사회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도덕적 표준(norms) 이론을 토대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고전적 형태의 사회 다윈주의는 이제 역사적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학자들은 사회문화 진화에 대한 단선적인 이론들이 내세운 일괄적 일반화를 거부했다. 특히 마가렛 미드를 포함하여 문화인류학자들이 고전적인 사회진화론을 거부했다. 이 흐름 속에서 현대 사회문화진화론은 고전 사회진화론의 대부분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1. 이론이 너무 (자)민족중심적(ethnocentric)이었다 - 다른 사회들에 대해서 과도한 가치 판단과 서양문명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
2. 모든 문화가 동일한 통로나 발전을 따르고 동일한 목표를 갖는다고 가정했다.
3. 문명을 물질문화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4. 진화 이론의 깊은 오해로 말미암아 진화를 진보나 적합성(fitness)과 동일시했다.
(so. cu. ev. 7-8)

(함석헌도 민족중심주의, 물질주의 등 여기에 지적된 문제점을 대부분 넘어서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진화론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화이론(neoevolutionism)이 대두하게 된다. 진화 이론은 1950년대 초 이후 갱신과정을 거치면서 그 과학적 유용성이 증명되었으며, 사회진화론은 사회변화에 대한 연구에서 체계적인 접근법이 되어왔다. 스펜서의 영향력은 각 분야에 두루 미쳤는데. 그 가운데는 함석헌이 영향을 받은 레오 톨스토이와 웰스(H.G. Wells)가 들어있다. 이 점에서도 스펜서를 함석헌의 사상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인물처럼 다루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스펜서도 다윈주의자라 볼 수 없다.

“약자가 막다른 곳으로 내몰려야 되는 가혹하고 용서 없는 규범과는 대조적으로, 스펜서의 주요한 정치적 메시지는 약속된 인간 완성상태로 가는 미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집단적인 행동보다는 (개인적인) 자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정치적인(antipolitical) 것이었다.”(8) 스펜서가 일본 제국주의자에게 정치적 이념을 제공했다는 것이 얼마나 일방적인 오해와 왜곡인가를 다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오갈 데 없이 내몰리는 고의적인 행위는 스펜서에게는 ‘불완전하게 진화된 행위’(imperfectly evolved conduct)이다. 완전하게 진화된 행위, 즉 윤리적 행위 속에서는 단체 간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대립과 적대감은 협조(co-operation)와 서로 돕기(mutual aid)로 대치될 것이다. 함석헌도 진화론 해석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완전하게 진화된 행위’는 오직 호전적/투쟁적인(militant) 사회가 항구적으로 평화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속도에 비례하는 만큼만 성취될 수 있다. 오직 그 사회에서만 이기주의(egoism)와 이타주의(altruism) 간의 충돌이 극복, 초월 될 수 있다. 스펜서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전통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수단을 '의무'의 해석에서 찾았다. 사회가 진보해가면서 이기주의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가게 되는데, 즉 만약 우리가 우리를 즐겁게 하는 대상을 획득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인즉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우리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상호 양립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복리가 우리자신의 복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타인의 복리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함석헌의 입장도 이와 상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한 맥락에서 함석헌은 공(公)과 사(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공을 앞세우는 것, 즉 선공후사(先公後私) 나아가서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끝내는 공과 사의 구분이 없음을 말한다. 함석헌은 또한 전체주의(holism)를 앞세우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하거나 양보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체론은 팽배한 이기주의를 대치하는 치유방책이다. 참다운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는 참다운 이타주의나 전체주의와 통하게 될 것이다. 다만 어떤 쪽을 발단으로 더 강조하느냐의 방법론적 차이일 것이다.

스펜서의 정치사상은, 어쨌든 그를 ‘사회 다윈주의자’를 포함하여 ‘무정부주의자’로 삼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해석될 만큼 폭넓은 것으로서 개인의 권리와 창의성, 국가의 간섭 배제, 사회발전에 강력한 중심적 권위의 필요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다. 스펜서의 생각은 중국과 일본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그것은 서양 열강과 겨룰 만한 강력한 민족-국가를 확립하려는 개혁가들의 욕구에 그가 호소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학자 옌푸(嚴復)가 스펜서의 사상을 중국에 소개했는데 그는 스펜서의 저술이 청 나라의 개혁을 위한 처방이라고 보았다.(9)

일본 학자 토쿠토미 소호는 스펜서의 영향을 받아, 일본이 스펜서가 분류한 ‘호전적(militant)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단계의 문 앞에 와있으며, 빨리 일본적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서양 윤리와 학습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스펜서는 또한 가네코 겐타로와의 서신교류에서 제국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9) 이 같은 사실들은 스펜서를 근거로 내세워 일부 한국 학자들과 반론자가 벌인 ‘사회진화론’ 비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무근거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증언해준다.

스펜서의 반-제국주의적 소신은 이미 그의 사상의 큰 틀에서 표명된 반-국가주의의 입장에 함의되어 있다. 이것은 또한 그의 사회발전 단계론에도 내포되어 있다. 그는 사회가 개인 자유의 증가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고 사회 및 정치 생활에서 정부의 간섭이 최소화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 점에서 사회 발전을 두 국면으로 구분했는데 군사(military) 사회와 산업(industrial) 사회가 그것이다. "더 초기적이고 더 원시적인 군사 사회는 정복과 방어를 목표로 삼고 중앙집권적이며, 경제적으로 자립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집단의 선을 개인의 선보다 우위에 두고, 강제, 힘 그리고 억압을 사용하고, 충성, 복종 그리고 규율을 보상한다. 산업사회는 생산과 무역을 목표로 삼고, 권력이 분산되며, 경제적인 관계를 통해서 다른 사회들과 상호 관련되고, 자발적인 협조와 개인적인 자기-억제를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며, 개인의 선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자발적 관계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조절하며, 창의성, 독립성 그리고 혁신을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마치 20세기 전체주의(totalitarianism)를 예견이라도 하듯, 스펜서는 정부가 개인적인 권리를 침해하도록 허용하거나 군사 조직체가 너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하여 경고했다. 제국주의와 확장주의가 언론과 일반 대중이 지지한 인기있는 개념이 되어있던 시대에, 스펜서는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시대적으로 스펜서 시대 이후에 등장한 독일 나치의 전체주의나 파시즘을 그가 알았다면 용납했을 리가 없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일본 제국주의와 나치 정권은 '군사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단계의 산물이다. 제국주의의 주구 노릇을 한 학자들이 스펜서를 근거로 삼았다면 그것은 오독이다.

스펜서가 진화를 사회와 윤리의 영역에 확대 적용할 때는 자연 선택 보다는 라마르크의 이론(용불용설)을 활용했다고 하는 견해가 우세하다.(Wikipedia, 'Spencer' 1, 5) 자연선택을 우생학의 토대로 삼은 다윈주의와 스펜서 사이에 다소 거리가 있음을 가리킨다. 스펜서는 우주의 모든 구조들은 단순한 동질성(homogeneity)에서 복잡한 이질성(heterogeneity)으로 발전한다고 가정했다. 이는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틀로 삼는 다원주의와 부합하는 사고이다. 오늘의 척도로 보아도 그는 긍정적인 점이 더 많은 다면적인 사상가였다.

스펜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를 우선한다고 보았다. 그는 국가는 ‘꼭 필요한’ 기관이 아니며 자발적인 시장 조직이 국가의 강제적인 측면을 대치하면서 ‘붕괴’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조직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그가 하물며 독재국가나 제국주의에 있어서 비판적일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는 또한 개인이 ‘국가를 무시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은 사회의 진화가 무정부주의로 귀결되거나 아니면 국가가 역할을 계속해야 된다면 최소 기능으로 축소해야 된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는 무정부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했다. 자유주의자들과 철학적 무정부주의자들은 그를 선구자로 여겼던 것이다.


국가제도를 반대하는 점에서 함석헌은 스펜서와 닮은 점이 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함석헌의 끈질긴 주장이었다. 전쟁과 세계의 갈등은 대개 국가주의 때문에 일어난다. 국가제도는 뱀의 허물처럼 벗어버려야 할 유물이다. 다만 함석헌은 국가주의를 반대하지만 스펜서처럼 개인주의 신봉자는 아니었다. 세계주의자, 전체주의자(holist), 또는 공동체주의자라 할 수 있다. (김영호, 내일 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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