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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김조년 제3강] 일, 믿음, 배움

by anarchopists 2020. 1.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1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의 낌새와 소리
-일과 믿음과 배움-

함석헌은 젊은 시절부터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는 생활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문화정책으로 제도교육이 힘들어졌을 때, 오산학교에서 물러난 뒤 평양의 ‘송산농산학원’을 몇 몇 제자들과 함께 하였고, 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 천안의 ‘씨농장’을 하였으며, 그 동지들이 추진하던 강원도 ‘안반덕생활’을 꾸렸으며, 마지막으로 아산의 ‘구화고등공민학교’를 살려 보려고 하였다. 이 모든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미숙한 면에서도 있었겠지만, 시대와 사회흐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흐름이란 아래와 같은 거대한 인류사회의 흐름이었다.

“현대 사람은 수백 년 물질주의적인 인생관에 젖어왔기 때문에 말로는 종교를 믿는다 하는 사람도 사실로는 물질적인 현상의 세계만을 참이라고 믿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정신의 세계는 신화라 미신이라 심리적인 환상이라 해서 한마디로 치워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옛 사람이 고심하고 정성들여서 개발했던 영적 세계가 아주 묵은 먼지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문제가 결국은 폭력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찍이 자랑했던 인간이 개인에도 단체에도 세계에서도, 문제의 해결은 결국 실력에 있다고 믿어버리게 된 것은 인간으로서는 큰 수치입니다.”(5. 135)

악하고 음란한 짓만 하는 세대에 대한 질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이란 생명 죽이기 좋아하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일과 종교와 배움은 생명 살리기의 핵심이다. 이것은 경쟁을 통하여 모든 것을 판가름하려는 흐름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생활이다.

오늘의 교육, 종교, 노동은 완전히 경쟁과 물질과 힘의 논리에 사로잡힌 감옥수가 되었다. 이러한 경쟁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승진을 위한, 조금 더 낫기 위한,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허무해 질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것에 자신의 투신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살벌한 체계로 만든다. 모든 것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고, 움직여도 활기가 없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최근에 살인제도를 없애느냐 그대로 두느냐가 다시 논란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의 밑바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살인이란 가장 큰 폭력이며 인간에, 아니 생명에 대한 악의 핵심 행위인데, 그것을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위로 몸과 맘,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나와 이웃을 분리하는 것은 생명 죽임의 큰 폭력이다. 이러한 때 소외된 일, 종교, 교육을 생명력 있는 공동체로 살리는 것은 혁명과 같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종교를 강조하는 것은 그 나름의 역사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종교 없이 위대한 나라 세운 민족이 없고, 위대한 종교 없이 위대한 역사를 만든 민족도 없다고 판단한다. 민족을 세우고 나라를 세우고 사회를 세우는 것의 기초는 위대한 종교에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곧 깊은 인생관, 높은 세계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뜻을 찾음, 현상세계를 뚫음이며 절대에 대듦이고 하느님과 맞섬이면서, 궁극으로는 하느님이 되잠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공동체 운동은 한 나라를 만듦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일은 그가 항상 말하던 “높은 정신을 찾아내는 데” 있고, 그 정신으로 “세계혁명”에 도달하는 데 있다. 그것은 “생명의 이름에서”, “자유의 이름에서”, “진리의 이름에서”, “영광의 으름에서”, “거룩한 이의 이름에서” 던지는 선전포고다.

“참을 한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거짓을 한 자에게 영원한 사망을”
주는 날 삶을 빌리지 않고 직접 힘들여 산 삶을 보이기 위한 일이다. “흰 손”으로 살지 않고, 둘도 없는 인격에 맞추어 참을 배워 직접 살기 위한 집단 몸부림이다. 거지의 삶이 아니요, 거저 얻는 구원의 삶이 아니라, “그의 삶”이 내 삶 되게 하기 위한 처절한 직접 삶을 구현하자는 운동이었다. 그것을 위하여는 또한 믿음, 말씀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말씀: 내 믿음, 내 종교, 하늘ㆍ땅ㆍ사람의 통일
함석헌은 어려서부터 기독교와 접촉하여 자랐고, 일생을 깊은 종교 체험과 명상으로 살았다. 종교계급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면서, 즉 종교상의 아무런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일생을 그만큼 깊이 종교생활에 심혈을 기울인 인물도 매우 드물 것이다.

어느 사람들은 이른바 평신도라고 하여도 종교생활(활동)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함석헌의 경우에는 종교를 생활화하였으면서도, 그것을 생계를 잇는 직업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그의 종교생활은 직업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소명으로서 종교의 삶을 일상생활에 받아들였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을 영화하고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종교관이요, 그 종교는 남의 종교가 아니라 내 종교, 내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찌무라를 통하여 새롭게 믿게 된 기독교를 다시 조선이라는 상황에서 사는 사람의 신앙으로 재해석하다가, 종국에는 어느 곳, 어느 시대에나 사는 자신으로 살아가는 가장 본질이 되는 삶의 기초로서 종교를 가지게 된다. 조직화하고 규격화하면 직접신앙이 아닌 대신신앙, 대속신앙을 강조한다.

그것을 극복하여 자신과 궁극존재의 직접 접촉만이 참 신앙에 가깝게 간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조직, 최소한의 규칙과 공통의 신조를 가질 뿐이다. 그것은 그와 본질존재인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모습을,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혼자서 하지 않고 가능한 한 함께 하려고 하였다. 그것이 공동체인데, 그 공동체는 단순한 노동공동체뿐만 아니라, 생활공동체로서 배움과 일이 함께 있어야 했다.


배움과 일과 거룩한 접촉이 함께 하는 공동체를 획책하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같이 갈기 운동’이었다. 물론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여 본 것은 끝없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본다. 오늘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직접 말씀을 받고,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조년 선생님은
■ 김조년 선생님은 현재 한남대학교 사화복지학과(사회학) 교수로 계신다. 함석헌 선생님과 많은 교류를 하시고 함 선생님이 서거하신 뒤에는 “함석헌기념사업회” 감사,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등을 맡고 계신다. 그리고 한남대학교에서 '함석헌과 한국사회'란 제목으로 사이버강의를 개설하고 있으며. 격월간 “표주박통신” 주필을 맡고 계신다.
■ 그 외 자본주의 대안운동으로 “대전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 이사장, “대전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전 공동의장)을 맡고 계신다.
■ 저서로는 “사랑하는 벗에게”, “성찰의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 “평상의 편지”, 카토 본트여스 판 베에크,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번역본) 등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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