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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세상 바로 보기

[길을 묻는다] 이제는 국가주의를 반성할 때가 아닌가 4

by anarchopists 2020. 1. 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4/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제는 국가주의를 반성할 때가 아닌가

4. 참다운 시민사회운동의 전개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 미군정기를 거친 이후다. 우리의 독자적 정부가 수립되어 국민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는 1948년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에서 박정희 독재까지는 시민사회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것은 시민들이 주체적ㆍ자발적결사체로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통치권력과 자본권력에게 저항하고 정책의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사회운동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운동이 불가능하였던 것은, 1970년대 유가적 자본주의(산업화)의 실험이 성공하고 한국사회가 서구사회화 하는 과정에서 통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분야를 독점하였기 때문이다. 이 탓으로 한국사회에서 인간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바람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결국 4.19정신을 계승한 많은 민주인사들에 의하여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의 잠재적 역량의 결과로 독재적 통치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는 피살되었다.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의 일환으로서 민주화운동의 잠재된 역량은 표면화되었다. 이것이 5.18광주민중기의(1980. 5,18)요, 6.10민주항쟁(1987)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자발적결사체로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통치권력ㆍ자본권력ㆍ언론권력에 대항하는 본격적인 시민사회운동이 전개되는 시기는 1980년에서 1987년이 이르는 기간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일게 되는 배경을 알아보자.

함석헌은 이렇게 보았다. “오늘의 정치는 시끄러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업을 하기 위해 큰 소리를 내는 기계,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산천을 흔들고 인심을 마비시키는 전쟁의 아우성, 복잡한 교통, 정책의 선전소리, 민중을 시켜 외치는 구호소리, 음악이랍시고 떠들어대는 소리, 관광이랍시고 미쳐 돌아가게 하는 풍조, 국민의 체력을 올린다, 국위를 드러낸다하면서 하는 스포츠, 어느 것 하나도 씨알의 속을 빼먹기를 목적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그) 시끄러움에 반항해야 합니다.”(《함석헌저작집》8, <우물안 개구리>, 205쪽)

그렇다. 한국은 다른 민주주의국가와 달리 양심이 바르지 못한 정치꾼들에 의해 장기간의 독재와 권위주의적 반공독재를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 잘못된 경제정책과 사회인식 때문에 우리사회가 정상궤도에서 많이 비켜나갔다. 수출위주형ㆍ금융특혜형ㆍ정경유착형ㆍ경쟁주의형 경제정책으로 자본의 집중화가 일어나고 이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또 권위주의적 통치에 따른 남녀의 차별과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가 생겨났다. 여기다 경쟁위주의적ㆍ 일등주의적ㆍ우월주의적 교육정책은 비윤리적ㆍ비도덕적ㆍ비인간적 범죄구조를 꽈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각종 노동운동(민주노동조합운동, 참교육운동, 공무원노동조합운동)이 나오게 되었다.

한편,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함께 밀려든 근대사회는 단시간 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로 확대하여 인간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인위적 위험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환경오염과 함께 찾아온 기상이변이다. 오늘날의 기상이변은 자연위험이 아니고 불확실성의 인위적 위험이다. 그리고 국가권력들의 핵시설 확대와 팽창, 핵무기의 확산은 인류공멸의 위기를 불러오는 인위적 위험이다. 또 다국적 기업을 이끄는 자본가들의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식품개발 또한 미래의 공포를 예고하는 인위적 위험이다. 이러한 통치권력과 자본권력들의 환경파괴행위에 대하여 시민사회는 분노하였다. 여기서 정부의 그릇된 반(反)환경정책에 대한 저항과 대안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이 나왔다. 환경운동과 함께 같은 맥락에서 건전한 먹걸이운동과 식량안보운동도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과학기술의 발달과 기계화ㆍ전산화 등 높은 생산성의 향상은 오히려 영구적 실업과 불완전 고용을 부추기는 사회적 위험을 낳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통치 및 자본권력을 가진 계층, 국가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계층, 기술의 발달로 취업에서 소외된 비정규 노동자ㆍ일용고용자ㆍ영구실업자 계층 등으로 사회계층의 분화가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구조도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회정의를 생각하는 시민사회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과학기술에 의한 생산성 확대보다는 인간의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노동정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노동 일수의 감소, 근무시간의 자유선택, 직업기회의 공평한 분배 등이다. 여기서 인간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연대운동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함석헌의 글을 다시 의미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국가의 나아가는 길이 앞이 막혔다. 우리는 후진국이라 하여,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를 따라가는 길이 사는 길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선진국 자체는 고민하고 있다. 참의미로 말해서 우리는 그 대국주의에 희생된 민족이다. 그러므로 이미 고도로 발달한 기술시대에 그들과 경쟁하여 그들을 이길 가능성은 도저히 없을 뿐 아니라, 그 길이 이미 선고받은 길임을 알 필요가 있다.(《함석헌저작집》5, <민족노선의 반성과 새 진로>, 98쪽) (황보윤식 내일 계속)


(가칭) <함석헌학회>가 창립됩니다. 많은 참석바랍니다.
일시: 2010년 4월 16일(금) 오후 2시
장소: 서울 시청쪽(1호선 4번 츨구) 프레스쎈타 19층(기자회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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