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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다] 이제는 국가주의를 반성할 때가 아닌가 3

by anarchopists 2020. 1. 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4/14 12:04]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제는 국가주의를 반성할 때가 아닌가

3. 시민계급의 등장과 시민사회 형성
시민은 곧 함석헌이 말하는 씨알이다. 함석헌은 현대 씨알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문제는 국가관념이 달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민중 위에 계급이 있어 민중을 통솔해야 한다는 국가관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국가체제를 맞았는데도 민이, 씨알이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 씨알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지배나 압제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함석헌저작집》25, <나라 꼴이 이래서야>, 129쪽) 그렇다면, 씨알, 곧 시민계급은 무엇인가.

시민계급[bourgeoisie]을 알기 위해, 시민(citizen; Bürger)이라는 말의 개념과 발달과정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시민이라는 말은 유럽역사의 시원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서 생겨난다. 기원전 5~6세기에 그리스ㆍ로마에 상공업을 통한 부유한 상공인 계층이 생겨난다. 당시의 시민은 이들 부유한 상공인 계층을 말했다. 상공인층들이 물건을 흥정하는 저자거리를 시(市: 물건을 사고파는 곳)하고 한다. 곧 시장(市場)이다. 이 저자거리를 중심으로 장사꾼들이 모인다 하여 도시(都市)라 하였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장사꾼을 한자로 빌려 쓰면, 시민(市民; plebs, 남성 중심의 상공인계층)이다.
 
이들은 그들의 장사하는 권리를 누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당시 통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귀족(patrici: 통치자)의 권력독점을 반대하였다. 그리고 국가권력의 형태에 대한 개혁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귀족계급의 권력독점을 반대하며 참정권과 시민의 권리를 쟁취해 냈다. 이 결과 민주정과 공화정이라는 정치형태가 지구상에 나타났다 그런데 당시 시민(장시꾼)은 남성 중심의 상공인계층이었다. 이후 로마가 붕괴되고 유럽에는 농업적 생산약식이 자리를 잡게 된다. 장원 중심의 봉건사회가 도래하였다. 그러자 상공업 세력인 시민계급은 농민보다 못한 계급이 되어 밑으로 잠수를 하게 된다.

이후 유럽은 12~13세기, 통일적 관념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가톨릭의 자기모순이 극에 달하면서 이슬람국가인 중동아시아와 십자군전쟁을 일으킨다. 십자군전쟁을 계기로 유럽에 상공업이 다시 발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상공인세력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들은 장원 안에 자신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곽(Burg; bourg 장사하는 곳; 제한적 自由都市)을 건설한다. 그래서 성안(市)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시민(Bürger, bourgeois)이라는 개념이 재생성 되었다. 유럽에서 상공업의 발달과 이슬람과 교류는 유럽의 시민계급들에게 의식의 전환도 일으키게 만들었다. 곧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다. 이들 시민계급은 르네상스를 통하여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갖게 된다.

그리그 다양한 형태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새로운 직업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곧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게 되었다. 이에서 시민계급들은 자기 직업에 충실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계몽주의 사조에 젖게 된다. 계몽주의는 시민계급에게 이성에 의하여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고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이들 시민계급은 그들이 최고의 가치로 알게 된 부의 축적에 방해가 되는 존재, 곧 절대적 군주와 권위적 종교에 대하여 과감히 도전하게 되었다. 곧 혁명적 사상이다. 이렇게 해서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시민계급(상공인)들에 의해 사회가 주도되는 시민사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계급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니까 근대에 생성된 부르주아지라는 시민계급은 이렇게 부를 배경으로 신분적 자유와 함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계급이다. 이제 유럽사회는 재편되었다. 이제까지 국가와 사회의 지배계급이었던 왕족과 귀족에 대신하여 부를 배경으로 한 시민계급이 시회지배세력에 부상되었다. 그리고 물질주의 사조가 새로운 사회인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흘러 18세기, 시민계급에 의하여 산업혁명이 전개되었다. 자본주의생산양식이 인간사회의 중심된 삶의 방식이 되었다. 그러자 이들 시민계급은 축적된 부를 이용하여 자본권력으로 부상하였다. 세계는 물질주의 사회가 되었다. 자본이 아니면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로 불리는 시민계급은 국가의 비호의 필요성, 물질적 이익, 사회적 체면, 귀족과 동등해 지려는 욕망이 생겼다. 이렇게 두 권력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협착하였다. 자본권력은 이제 국가의 통치권력에 협력함으로써 공적권력이 되었다. 곧 부르주아지들이 경멸하고 타도하려고 했던 그 통치권력과 그들은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시민혁명을 주도하고 위대한 인권선언을 만들어냈던 시민계급이 이제는 경멸적 시민계급으로 전락하였다. 곧 자본권력이 퉁치권력과 함께 국가의 공적폭력집단이 되고 말았다.


경멸적 자본권력에 저항하여 새로운 시회세력이 대두되었다. 사회주의세력과 프롤레타리아세력이다. 이들에 의한 19세기 자유주의운동을 거쳐 20세기 국민국가와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국민국가와 함께 앞에서 말한 새로운 시민사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전에 자본권력이 만들어 왔던 시민사회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시민계급에 대한 개념의 재해석이 시도되었다. 오늘의 시민사회는 자본권력과 자본가를 제외한 모든 남녀노동자(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와 남녀농민, 그리고 남녀학생ㆍ주부, 여기에 소자본가 등으로 구성되었다. 희망의 사회가 왔다. 평등의 사회가 왔다. 그리고 자치의 세계를 향해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가 진전될수록, 시민사회는 거짓된 정치인과 자본가의 기만으로 진보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부패한 사고를 가진 정치엘리트로 구성된 통치권력의 독재화, 제 이익과 자기중심적인 자본가에 의한 자본권력의 독재화, 부정한 사고를 가진 언론엘리트의 거대 언론매체 독점과 여론조작 등 언론권력의 독재화가 노정되고 있다.

함석헌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지적하였다. “우리(씨알) 생각과 말의 자유, 마음과 이웃의 평화, 생존과 발전의 평등을 근본에서부터 깨트리는 이 시끄러움은 정치에서 필연적으로 오는 결과일 뿐 아니라 계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한 놈은 제 한 말이 거짓인 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점점 더 거짓으로 버텨야 합니다.”(《함석헌저작집》8, <우물안 개구리> 203쪽) 그래서 시민계급은 거짓된 그리고 평화적ㆍ평등적 공생관계를 깨트리는 통치권력ㆍ자본권력ㆍ언론권력으로 구성된 국가권력의 전횡(거짓)에 맞서 시민의 자발적결사체인 시민사회를 만들어갔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사회는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거짓된 권력집합체와 참다운 인간사회를 지향하는 진실된 시민사회로 양립되는 양상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시민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시민들은 이러한 자발적결사체를 중심으로 활동함으로써 책임 있는 정치적 권리의 행사, 준법정신의 함양,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을 확대시켜 나간다. 그리고 정의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또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생명공동체를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정부의 권력집중화(獨裁化ㆍ帝制化)를 견제하고 시민의 평등의식을 계몽하여 민주주의의 평등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시민사회운동은 국가사회라는 울타리에서 공적권력(통치권력ㆍ자본권력ㆍ언론권력)의 폭력과 수탈, 불공정과 불합리, 부조리와 부패, 그리고 자연과 환경파괴에 맞서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운동을 말한다.(황보윤식, 내일계속)

(가칭) <함석헌학회>가 창립됩니다. 많은 참석바랍니다.
일시: 2010년 4월 16일(금) 오후 2시
장소: 서울 시청쪽(1호선 4번 츨구) 프레스쎈타 19층(기자회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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