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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그리스도인, 제3의 인종(trion genos)

by anarchopists 2019. 10.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3/2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제3의 인종(trion genos)



“당시 그리스의 분류 용어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제3의 인종”(trion genos)인 셈이다. 이 용어는 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피타고라스 및 다른 왕과 현인의 독특한 위상을 서술하기 위해 피타고라스학파가 만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성격을 그리스적이지도 않고 동시에 유대적이지도 않다고 가장 분명하고 잘 서술해 놓은 문헌이 바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Epistle to Diognetus)>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인종”이며,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Jonathan Z. Smith, 장석만 옮김, 종교상상하기, 청년사, 2013, 51-52쪽)


종교인은 편집증이 있는 것처럼 진리 혹은 진리의 원천에 대해서 입에 달고 삽니다. 마치 그 말을 고백하지 않으면 삶의 서술이나 종교 담론이 어려운 듯이 강박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진리서술이 강한 만큼 몸으로 살아내는 몸의 서술(진술) 또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지, 거기에 부합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함석헌은 말합니다. “진리는 모든 것이 의존의생(依存依生)하는 원동력, 원리, 원천이기 때문에 그것을 증거하는 자, 즉 몸으로써 그것을 증험하는 자는 위대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95쪽) 종교인이 “위대한 결과”를 낳는 것은 자신의 진리 서술을 몸으로 증명해내었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아르케(arche, 원리, 원천)는 설득력을 상실합니다. 자신의 삶의 법칙으로서의 아르케는 모든 생명과 모든 삶의 이법들이 흘러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삶과 종교를 지탱하는 초월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에 따라 함석헌은 “예수가 도 자체, 진리 그 자체, 생명 그 자체, 산 완전자”(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95쪽)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를 망각하지 않고 붙잡는 자야말로 영성적 퇴행을 범하지 않고, 유아적 신앙 퇴행을 범하지 않는 삶의 진보와 성숙, 그리고 성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함석헌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예수의 증인이 됨은 예수의 종이 됨이라.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예수를 위해 삶이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96쪽)


증인이 된다함은 말로써 자신의 신념과 경험, 그리고 확신을 증명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증인은 거울 속에 반영되어 있는 형상을 오롯이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치 대상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구현해내듯이, 있는 그대로를 자신의 몸-짓으로 흔적을 드러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의 지시와 명령, 그리고 삶과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의 삶이 곧 종의 삶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인과 종이 동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의 의지와 생각, 그리고 행위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의 운명과 존재가 곧 종의 운명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종은 주인을 위해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주인인 예수를 위해서 사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떠나서는 의미가 없는 존재입니다. 모든 삶의 의미와 이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고 그리스도만이 삶의 장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 산다는 것은 결국 그의 언어와 행위를 (재)실행하고 자기 의식을 대신하여 그의 의식으로 대체하여 그 존재를 본래의 인격으로 삼아서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예수를 증거할 수 없”(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96쪽)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격을 그의 인격과 동일시하면서, 그의 인격과 그의 관점을 세계 속에서 절대화하려면 자신의 능력이나 억지로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초월자의 능력, 곧 성령을 입지 않으면 삶의 문법이 바뀌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예수를 즐거워해야 하고 생명에 불타는 사람”(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97쪽)이 되어야 하는데, 그와 같은 변화는 성령에 의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달리 말해 새로운 존재로 위치 이동을 하고 예수를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으며, 죽음과 폭력에 저항하는 마음은 초월적 주체의 내적 점유와 압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의 사람됨은 예수로 인해서, 나의 즐거움은 예수로 인해서, 나의 생명은 예수로 인해서라는 고백은 성령의 주도적인 힘에 의해서 행위 서술이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새롭게 하는 영이다. 사람을 변질시키는 영이다. 성령을 받는다 함은 진리 정복을 당하는 일이다. 옛 내가 전혀 무력해지는 일이다. 죽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성령의 사람은 아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97쪽) 성령은 나를 재구성하고 재조합합니다. 나의 의식을 완전히 탈바꿈시킵니다. 그래서 나의 의식 혹은 나라는 존재는 무력화되어 나의 행위 원천을 예수 혹은 성령에다 두게 됩니다. 나의 정신과 이성은 그에 의해서 점령당함으로써 초월자의 의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함석헌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죽음’, ‘종교인의 죽음’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이유, 그리고 종교로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종교인의 진정한 죽음이 없어서입니다. 진리 운운하면서 진리 서술과 몸-짓 서술행위가 일치하지 않아 종교 본래의 그 원천과 원리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무의식은 고사하고 초월자의 의식을 자신의 의식으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조차도 초월자의 흔적을 찾지 못할 정도로 종교인 자신의 욕망적 자아가 살아 있다는 것은 신의 존재를 부재로 바꿔놓습니다. 그것을 두고 함석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설령 무한이 어두움이라 할지라도
무한의 어두움 속에서 빛이 스며들어 올 수 있도록 자신의 이기적 본성과 악한 마음을 극복하고 초월자의 정신을 자기 의식화하여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아가 사라지고 초월자의 정신과 초월이성(선험이성)에다 자신을 내던진다는 것은 무한한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욕망적 자아의 표면으로 올라와 악의 구렁텅이로 복귀/회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초월자의 정신 혹은 초월이성과 벗해야만 합니다. 오만한 자기식대로의 삶의 주체성과 초월 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신뢰-건강하고 건전한 이성적 신뢰가 아닌-는 한낱 초월자의 신뢰와 반하는 것이며, 초월자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기, 욕망적 자기의 죽음을 끊임없이 연습하십시오. 그리하여 초월자의 정신, 초월이성이 자기 것(화), 자기 원천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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