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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예수 사건: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현실과 관념의 공속성

by anarchopists 2019. 10.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4/30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예수 사건: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현실과 관념의 공속성



예수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식 변화의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함석헌이 말하고 있듯이, 우주적인 새로운 사건이자 새로운 질서의 도래입니다.
예수 사건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존재 변화의 경험을 가지고 옵니다. 예수 사건은 존재 사건, 즉 있음의 사건이요 의미의 사건이지만 역사 속을 꿰뚫고 들어오는 예수는 인류에게 낯선 타자요 동시에 타자가 아닙니다. 그는 역사-내-존재와 만나는 순간 타자가 아닙니다. 모든 존재와 더불어 있는 공속성(Zusammengehörigkeit, 共屬性) 혹은 공속관계의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공속성은 동일자(the same, to auto) 혹은 동일성(sameness)을 전제로 합니다. 이 타자인 동일자는 존재 그 자체로서 사유되는 즉시, 시간 안에서 발생하는 즉시, 이해의 차원, 가변의 차원으로 인식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일자가 사물성(Dinghaftigkeit)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는 동일성 안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재 그 자체로서의 자기-동일성의 존재는 모든 존재자와 사유보다 앞섭니다. 타자의 목소리는 들을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없는 혹은 잘못 들을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함께 속해 있을 수도 있고, 함께 속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차이(다름)가 없지만 차이(다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기-동일성은 타자이면서 타자가 아닙니다(Michael Roth, The Politics of Resistance: Heidegger’s Line,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96, 19-23).


함석헌은 ‘예수 출현에 의해서 우주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났다.’고 보고 그 질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한 화해의 질서, 화해의 사건이라고 말합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한 뱃길 19, 한길사, 1985, 279-280쪽). 한마디로 예수 사건의 핵심은 화해라는 말입니다. 화해는 인간이 결코 홀로 있지 않음, 내던져져 있지 않음이요 관심과 사랑의 존재임을 확증하는 예수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죽음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예수 사건으로서 공속성의 존재로 있음입니다. 금세기 탁월한 성서신학자요 성공회 주교였던 톰 라이트(Tom Wright)는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잠듦’(1고린 7,39; 11,30; 15,6.8.20.51; 1테살 4,13-15)”(Tom Wright, 박규태 옮김,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 IVP, 2013, 47쪽)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듦이란 그리스도인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리스도와 함께[그리스도에] 속해 있음(belonging together)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가 죄인인 인간을 자신의 생명적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화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화해사건이 유한한 인간이 그리스도와 공속적 존재로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은 예수 사건을 새 목적의 계시, 즉 세계와 인간의 진화, 질적 변화의 진보를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함석헌, 앞의 책, 281쪽). 공속성은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 질적 변화에 대한 한 교리, 즉 연옥에 대해서 톰 라이트는 거부하지만, 루가복음 23,43절의 구원받은 강도의 이야기에서의 ‘낙원은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는 길에 자리한 아름다운 쉼터’(Tom Wright, 앞의 책, 48, 52쪽)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질적 변화, 예수 사건으로 인한 존재 변화[연옥의 상태와 비슷한 변화]를 적시합니다. 이는 함석헌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예수는 그리스도인에게 새 생활의 원리인 회개와 신앙생활을 들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함석헌, 앞의 책, 281-282쪽). 회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쉼터에 ‘오늘’ 머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쉼을 누리는 행복한 상태에 있’(Tom Wright, 앞의 책, 63쪽)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의 무한한 사랑의 계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 사건은 이 세계와 인간을 위한 한없는 사랑의 징표입니다. 그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사랑과 정신의 각성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새로운 도덕을 깨닫고 삶으로 승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예수 사건이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 생각을 바꾸도록 한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은, “신약성경의 하느님 나라라는 말은 늘 어떤 장소가 아니라, 어떤 사실을 가리킨다. 즉 하느님이 다스리는 장소(하늘)가 아니라, 하느님이 왕으로서 다스리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즉 ‘오는 시대’가 ‘현 시대’ 속을 뚫고 들어와, 저 멀리 형체도 없는 ‘하늘’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땅에서 새 세계를 열리라는 것”(Tom Wright, 앞의 책, 94-95쪽)이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가능하게 했던 예수 사건과 그의 행위는 역사를 뚫고 들어온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구원의 사건을 경험하고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맛보는 행복을 얻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결국 이 시대가 ‘신앙의 시대’로 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함석헌, 앞의 책, 281쪽).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죽은 이들은 하느님이 그 생명을 유지시킨다.’(Tom Wright, 앞의 책, 115쪽)고 믿는 것입니다. 신앙의 시대는 모든 익명적인 존재들을 포함한 생명적인 것들의 생명의 시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공통의 생명적 존재가 예수 사건과 공속적 존재임을 경험·인식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현대는 위기의 시대, 위험의 시대입니다. 표류하는 인류에게 좌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함석헌은 말합니다. “현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요구한다.”(함석헌, 앞의 책, 283쪽)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독보적 존재, 독단, 독재성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시대적 존재의 기반, 시대의 목표와 목적을 두는 잣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혹은 覺者]로 수렴되는, 그리스도를 우주 진화의 목표로 인식하는 차원을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그에게로 환원됩니다. 모든 존재는 그에게로 향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타자가 됩니다. 우리와 같으면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타자에게 향하는 기도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긍정할 뿐만 아니라 의식이 연결되는 힘이 있습니다. “참된 기도는 사랑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만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을 것이다... 하느님의 임재 앞에 그들을 품고 올려드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적절한 일이기 때문이요, 어떤 유익이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올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이 역사하신다고 내가 믿기 때문이다. 사랑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그치지 않는다. 그친다면 그것은 심히 빈곤한 사랑일 뿐이다! 사실, 비통은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사랑이 대개 취하는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빈 공간을 부둥켜안은 사랑이요, 희미한 공기에 입맞추는 사랑이며, 부재가 주는 고통을 느끼는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이 기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하느님 앞에 놓아두는 관행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Tom Wright, 앞의 책, 116쪽)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가 공속적 존재이듯이, 산 자와 죽은 자는 기도로 함께-있음의 존재, 함께-속해 있음의 존재가 됩니다. 기도로 그들이 현재화되며, 기도로 그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으며, 기도로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기도로 그들을 하느님 앞에 놓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와 공속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사건은 탈-물리적(meta-physics; 형이상학적) 사건입니다. metaphysics, 곧 지금 처해 있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려는(meta; trans) 신앙적 몸부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신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월을 향한 몸짓, 초월을 지향하는 기도, 초월을 위한 예수살이는 물질적·물리적·가시적 한계를 신앙으로 넘어서려는 유한한 인간의 태도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와 예수,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속적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설령 현실 세계와 관념 세계(초월 세계)가 떨어져 있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대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예수 사건으로 인한 공속성은 궁극적인 인격체 전체의 부활의 희망을 연결시켜주는 끈이 될 것입니다.




*위 이미지는 경향신문 2011. 11. 18./ 빛그림사진여행 카페/ 연합뉴스 2014. 4. 21.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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