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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부활, 생의 의미의 영속적 발생

by anarchopists 2019. 10.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5/06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부활, 생의 의미의 영속적 발생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사건을 부정(否定)하고 무화(無化)시켜야만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건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시간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어남(ereignis)이 있어야 합니다. 사건의 독특한 시간의식, 즉 역사성을 가지려면 계기적 순간(moment)으로서 현존해야 합니다. 특수한 일어남이 단순히 연속적인 현상이라면 그것을 사건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어남 혹은 사건의 발생은 눈으로(Auge) 바라봄, 눈으로 확인되는 시점(Augenblick), 눈앞에 현존함이라는 감각적·감성적 인식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의 사건을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사건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사건은 목격(目擊, Augenschein)이라는 확증과 기억이라는 실제적·역사적(Geschichte)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단지 감성적 인식이 아닌 어떤 내적인 연관성과 개념, 그리고 관념을 통한 이성적 인식과 확신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예수의 부활사건은 가능성을 넘어 현실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사건은 한낱 기억이 아니라 목격이라는 체험적 확신을 가진,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분명한 사실로 믿고 있습니다. 부활 전례 혹은 부활 의례는 매번 반복됨으로써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현재화(presencing)하는 사건으로 고백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은 나날이 죽지 않으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면 부활은 보냄(schicken)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Michael Roth, The Politics of Resistance: Heidegger’s Line,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96, 37). 죽음의 사건이 없이 부활은 보냄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음-받음은 곧 부활-보냄이라는 형식을 띱니다. 이는 함석헌이 말하고 있듯이, 감추어진 지금에서 한 발짝 내디딤이라는 의미의 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한 뱃길 19, 1985, 386쪽). 죽음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은 어쩌면 무(無)의 불안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죽은 이후의 실존의 모습은 예수 사건의 독특한 경험적 기록과 증언에 토대를 둔 확신이지만, 개인에게는 그 확신이, 죽음에 의한 무의 불안 속에 넣지 않는 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한걸음은 ‘의미’의 발걸음입니다. 부활사건은 발생 혹은 일어남의 현존(presencing)이라고 말했듯이, 지금 감추어진 자리를 박차고 무를 향해 내디뎌야 매순간 의미가 발생합니다. 그것이 곧 부활사건의 의미입니다. 단지 육체적 죽음과 소멸 이후에 새로운 육체를 입게 되는 신비적 사건으로만 인식한다면,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향유하려는 욕망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육체의 한계라는 생물학적 구성물을 염두에 두더라도, 육체로만 한정짓기에는 좌절이 됩니다.


부활은 의미의 사건입니다.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의미의 발생이 부활입니다. 내 인생을 한 발짝씩 옮겨가도록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geschehen)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역사(Geschichte)입니다. 그것이 역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것, 본래의 것, 특수한 것, 자신의 소유(eigen; eigentum)가 된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역사가 된다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획득되어지고(eignen) 입증된다(ereigen)는 뜻입니다(Michael Roth, 앞의 책, 38). 부활은 역사로서 자신에게 발생하는 실제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건입니다. 오직 자신의 삶을 통해서만 입증되고 확증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개인의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시대적·역사적 발걸음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함석헌, 앞의 책, 384쪽) 보편사적 사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의 의미가 달라지고, 역사적 행위를 통해서 보냄(schicken)을 받은 자로서 의미 사건을 발생시킨다면 부활은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부활사건은 지금 숨겨져 있는 죽음을 부정(否定)하고 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밝히려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생의 의미의 사건, 죽지 않고 일어나는 순간(Augenblick), 의미는 또 다시 우리에게 살도록 합니다. 의미의 발생, 생의 의미의 발생이 살도록 추동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부활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성이 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능성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성의 차원을 믿는 것이 곧 부활을 가져오는 법입니다. 차원을 달리하는 것, 더 높은 차원으로 생을 고양시키는 것이 부활이라고 함석헌은 말합니다. 육체적 부활의 욕망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생의 의미의 차원을 높이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합니다(함석헌, 위의 책, 364-365쪽). 예수 사건의 독특성, 예수 부활의 독특성은 보통 사람들은 다 죽어도 예수는 결코 안 죽고 부활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의 의미를 반복적으로 차원을 달리 하며 발생시켰고, 개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사회적 죽음, 국가적 죽음, 세계의 죽음을 계속 부정-부인(否認)이 아니라-하면서 삶의 긍정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건의 발생한 이야기(Geschichete)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죽음의 부정에서 비롯됩니다. 현재(presence)는 나타나도록 내버려두는 선물(present) 안에 있습니다. 현재는 선물로서 존재합니다. 현재는 현재하도록 내버려두어야 존재합니다. 부활은 산 자에게는 여전히 현재가 현재가 되도록 하는 힘이며, 죽은 자에게 현재하도록, 존재하도록 열려진 사건입니다(Michael Roth, 앞의 책, 38). 그런 의미에서 부활사건은 미래의 사건이라기보다 현재의 사건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에게 현재가 되기 때문에, 공속성(Zusammengehörigkeit)의 시공간과 의식의 차원에서 모두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항상 있음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는 믿음의 차원은 초월의 차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초월의 차원은 죽음 후의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라기보다 새로운 의미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소멸과 사라짐이라는 상실입니다. 산 자는 그 상실감이 평생 트라우마가 됩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한 죽음의 부정이 없다면 부활이라는 생의 의미 차원의 고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예수 부재의 사건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부재의 사건인 듯한 그 절망의 발생을 뒤로 하고 의미의 현재를 현재화할 때 부활의 사건
이 도래합니다. 죽음의 사건 속에 꿈틀대는 부활의 사건, 죽음의 사건 속에 은폐되어 있는 부활사건은 의미의 반복을 통해 탈은폐되어집니다(unconcealment). 따라서 부활사건은 생의 의미의 운동입니다.
무한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부활사건이듯이, 부활사건은 무의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고, 되레 끝없는 의미의 무한함을 통해서 무로서의 죽음을 극복하면서 살아서 일어납니다(Auferstanden). 무(無)를 이기고 무 위에서 다시 생의 의미를 세우고, 내리 무가 생의 의미를 부정하는 순간, 또 다시 그 위에 생의 의미를 세움으로써(stasis) 무는 영원히 극복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죽음으로서의 무(無)와 생의 의미로서의 유(有)의 긴장과 투쟁은 이 세계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지속될지 모르나 결국 의미의 사건, 즉 생의 의미의 차원과 무에 따른 생의 의미의 변화는 예수 존재성 안에[에 의해서] 영원히 열려 있음이 된다는 말입니다. 루가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셨다”(Herr ist wahrhaftig auferstanden; 24,34). ‘믿음의 차원’에서 보면 예수의 살아남은 여전히 참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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