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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의 영성\철학과 함석헌식의 해석학적 설교(강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결, 그리고 거기(Da)(야고 3,13-4,8a)

by anarchopists 2019. 10.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26 21:16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결, 그리고 거기(Da)(야고 3,13-4,8a)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자기 인식
사람이 지혜롭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지혜는 그리스어로 소피아(sophia)라고 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에 따르면, 여기에서 파생된 형용사 소포스(sophos)는, “이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적합한 맛, “냄새를 맡는 능력”과 본질적인 것에 대한 본능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 때문에 어떤 것을 직접 근거로부터 이해하는 즉 모범적이고 뛰어난 방식으로 어떤 사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본질적인 것을 판별해내는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태를 본질로부터, 근거로부터 사유하는 대처능력이 탁월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질로부터, 혹은 근거로부터라는 말입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이 지혜롭다는 것은 바로 철학과 동일한 맥락에서 본질과 근거로부터 사태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본질과 근거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사태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신앙인의 능력은 자기 인식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에피스테몬(episthemon)을 ‘지식’으로 번역을 했습니다만, 인식이라는 번역어가 좀더 정확한 개념이라고 봅니다. 인식에 있어 경험적이고 감성적인 앎을 독사(doxa, opinion; 억견)라고 한다면, 참된 앎을 에피스테메라고 합니다. 참된 앎에 도달한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선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참된 앎의 본질이 되는 하나님을 올바르고 깊이 깨달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횔덜린은 “하늘에서부터 해맑은 환희가 쏟아져 내리듯이 하나의 환희 인간들에 이르러 그들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 들리는 것들 만족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감탄한다”(<하늘에서부터...>)고 노래했습니다. 자기에 대한 참된 앎과 신에 대한 참된 앎은 하늘에서 내린 것입니다. 영어성경(The New English Bible)에서도 이성에 열려 있는 사람은 하늘의 지혜로부터 기원한다고 풀어 밝히고 있습니다. 경험에 의존하거나 감각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신앙적 지식과 하나님은 자칫 억측이나 편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앎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자기 인식에 도달했다는 사람은 시기나 이익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각적인 것들, 즉 시각이나 청각에 의해 포착된 것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존재자에 대한 감탄과 자기 인식
감탄이 없는 신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 참된 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앎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시기심, 이기심, 위선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것들이 동물적이며, 본능적이며, 악마적이기 때문입니다. 감각기관들을 통해 파악된 사물과 대상에 대해서 감탄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감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 인식이 가능해집니다. 감탄한다는 것은 민감하게 감각을 통해서 접한 존재를 알아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를 앎으로써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신의 근원과 근거가 바로 지혜로우신 하느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횔덜린은 그것을 해맑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멋지게 성스러운 노래 울리는가! 얼마나 가슴은 노래 가운데 진리를 향해 웃음 웃는가. 하나의 유대에 기쁨 있다는 진리-가물거리는 숲들로 뻗어 있는 오솔길로 양떼들 행군을 시작한다. 그러나 초원은 청순한 초록으로 뒤덮이어, 늘 보는 대로 임원이 그러하듯 어두운 숲에 가까이 놓여 있다.”

참된 진리인식의 발현인 평화와 정의
신에 대한 감탄, 자연에 대한 감탄, 좀더 정동적인 표현을 쓴다면 놀라움은 하나의 유대와 하나의 기원을 깨닫게 합니다. 모든 자연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자연이 말하는 소리에 그만 시기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의 기원만 생각하도록 합니다. 거기에는 분란이 없습니다. 조화와 평화,순결과 거룩함, 기쁨과 웃음이 인간의 삶의 활력소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지혜, 신앙의 지혜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누가 보아도 단박에 그 지혜를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평화, 부드러움, 성숙한 이성, 사랑과 그에 따른 선한 실천들이 모두가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노래가 흥얼거릴수록,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기쁨일수록 모두가 진리의 한 가족이요 진리의 원천 안에서 묶여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참으로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맞닿아 있는지, 참된 앎에 도달해 있는지는 평화를 위한 삶과 정의를 위한 삶으로 일관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면 판별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종교인은 온통 초록입니다. 초록 가까이에 초록이 덮여 있으면 검게 보이는 숲이 이루어집니다. 그 숲 한 가운데는 동물들과 식물들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이 보입니다. 바로 진리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정의는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자기 자신이 존재의 근거와 본질에 부합하며, 그런 분의 빛에 의해서 조명되어 참된 앎에 이르게 될 때 세계의 평화와 정의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존재지향적 신앙과 소유지향적 신앙
그럼에도 여전히 갈등과 분쟁, 욕망이 교회와 세계를 지배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근거와 본질에 대해서 캐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한 앎에 도달할 리 만무합니다. 횔덜린은 “거기 초원 위에 역시 이 양떼들 머무르고 있다. 사방에 놓여 있는 산꼭대기, 그 헐벗은 꼭대기는 참나무로 덮여 있고 드문드문 전나무도 있다.” 인간이 세계, 대상, 현상을 바라보기는 하는데 보지 못하는 것은 “있다”(sein)는 존재인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있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 곁에 있음, 더불어 있음, 위하여 있음, 사방에 있음 등 생생하게 우리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있음도 정보나 습관적으로 알고 있다면 막연하게 있음을 믿는 것이므로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참된 앎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있음은 도처에 있는 존재자의 존재인식, 즉 근원인식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있음에 대한 현존의식이 없는데 분란과 시기와 쟁투와 갈등과 살인이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그와중에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있음(being)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짐(having)이라는 것만 생각합니다.

신앙의 극치, 겸손의 결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존재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속에서 추구하는 것처럼 내가 얼마나 더 가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 분란과 갈등과 쟁투와 시기와 살인과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횔덜린은 노래합니다. “강의 출렁이는 물결 있고 하여 길을 넘어온 자가 즐겁게 내려다보는 그곳, 산들이 산뜻한 모습을 쳐들고 포도원도 높이 일어서는 그곳. 포도넝쿨 아래 계단들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해 있고 과일나무들 그 위에 꽃피어 서 있으며 향기도 거친 울타리에 머문다. 거기 숨어 오랑캐꽃은 움트고 있다.” 자연에도 결이 있고 인간의 삶에도 결이 있습니다. 자연에도 시공간이 있고, 인간의 삶에도 시공간이 있습니다. 모두 존재가 나타난 모습입니다. 자연에는 바람결, 구름결, 물결, 나뭇결 등이 있는 것처럼, 인간은 살결, 숨결(영혼결), 맘결(정신결) 등으로 바로 거기(Da)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수많은 결들이 나타나는 시공간입니다. 그 시공간은 도처에 있습니다. 사방에 하나님을 닮은 결들이 자리 잡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숨결과 맘결을 닮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총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겸손한 삶을 살며 악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결이 무수히 나타나게 됩니다. 그 결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데 결을 찾아볼 수가 없이 흉측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겸손한 그곳, 겸손이 나타나는 그 시간과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겸손이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겸손이 나타나야 할 시간과 장소, 거룩한 그곳에서 받아야 합니다. 겸손이 나타나는 그곳에서 신앙의 좋은 결이 생기고, 일치의 굳은 결이 생기고,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결이 생김으로써 머물러 쉬고 싶을 때는 한결 같은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 다가감과 존재 도래의 시공간성
횔덜린은 마지막을 이렇게 갈무리합니다. “그러나 물줄기는 졸졸 아래로 흐르고 그곳에서 종일토록 살랑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 경계의 장소들은 오후 내내 편안히 쉬며 침묵한다.” 좋은 심성의 결, 즉 신앙의 결과 마음의 결을 지닌 사람은 늘 누군가를 “향해 있고”, “서 있고”, “머물러 있고”, “숨어 있고”, “움트고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존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신앙의 결이 아름답고 깊게 새겨진 사람은 늘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오히려 그분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신다는 역설을 체험합니다. 바로 하나님과 자신이 만나는 그곳에서 말입니다. 그곳에서만 들리고 그곳에서만 쉴 수 있고 그곳에서만 침묵할 수 있는 바로 그 경계의 장소,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그곳은 다만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감에 있을 뿐입니다. 다가갈수록 만날 시간은 곧 도래하고 다가갈수록 그분의 존재의 터는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김대식_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간신히 대학 두어 곳에서 철학과 종교를 가르치며 먹고 사는 사람, 칸트와 후설에 입각한 해체구성적 종교를 지향하는 사람, 함석헌과 같은 아나키즘(해석학적 호불호가 엇갈리지만)적 인간의 자유와 에코아나키스트 머레이 북친과 같은 자연의 해방을 염원하는 사람.



***공고****(알립니다!!!)

수신: 회원 여러분

발신: 3 단체장

제목: 가을 학술모임(영주)

선생님, 안녕하세요? 올여름 폭염과 태풍. 장마, 폭우 잘 이겨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9월을 맞아 함석헌학회(학회장 이재봉)는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황보윤식) 및 민본주의실천연대 (대표: 김영모) 와 공동으로 다음과 같이 경북 영주에서 학술발표(공부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겸하여 이왕지사 영주에 간 김에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영주 부석사도 둘러보고, 소백산국립공원 자락길을 산책, 또는 비로봉 정상까지 오른 뒤 풍기에서 온천욕을 즐겨보는 가을 나들이 일정도 마련했으니 많이 참석해주시기를 앙망합니다.

2018. 09.0

함석헌학회 학회장 이  재봉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황보윤식

민본주의실천연대 대표 김  영모

1. 학술발표(공부모임)

. 일시: 2018928() 17:00-19:00

. 장소: 청년유도회

. 주제: “정도전의 민본주의와 함석헌의 씨알사상”

. 발표:(사회: 민실련,

   - 강정구(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공동의장), 의 입장에서 본 평화통일운동”  

   - 황보윤식(민실련), 民人과 민본주의 본질”

   - 김대식(연구소) “협화정치의 노정: 정도전의 과 함석헌의 씨ᄋᆞᆯ”

   - 이재봉(학회), “비폭력저항의 이론과 실천”

. 뒷풀이 있습니다. 뒷풀이 후, 소백산 취래원으로 이동함.

2. 가을 나들이

. 영주 부석사(해설: 황보윤식 소장)

. 소백산 자락길(9.29)

. 풍기온천(할 사람만)

* 28일 숙박은 황보윤식 교수님이 소백산 자락에서 운영하는 취래원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되, 식대는 개인적으로 부담합니다.

알림--------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님이신 황보윤식 선생님께서 동인천 싸리재 카페에서 10월 4일부터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묵자강독이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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