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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10

김대식, 소비적 종교주의의 해체: 함석헌의 탈종교론과 비판적 종교철학(함석헌평화연구소시리즈 4 ), 동연, 2021. 종교공학적 측면에서 종교는 시민을 위하고, 시민을 향한 종교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종교를 중심으로 메커니즘을 설계했던 종교공학은 이제, 시민을 중심으로, 좀더 정확하게는 매체를 중심으로 공학적 종교를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의 기계에 접속한 수많은 종교 정보는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서 종교를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는 이제 소비의 대상이 되었고, 헌신과 생산의 가치를 중요시하던 만남의 종교는 소격과 불통으로 더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종교공학은 종교 예측입니다. 저자는 함석헌을 통해서 종교 분석, 종교 본질의 대안적 행위, 시민의 인식 쇄신을 위한 무조직의 느슨한 연대 가능성 등을 진단해보려고 했습니다. 목차 말마루 추천의 글 1부. 종교 사유를 향하여 분노하는 민중과 함석헌 효과 .. 2021. 8. 15.
[김영호 제4강- 함석헌의 종교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17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의 함석헌을 말한다-4] 함석헌의 종교관 종교는 개인신앙이 아니라 삶의 원리다. 간디와 함석헌은 공통적으로 유별나게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 가치로 내세웠다. “나는 단 1초도 종교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간디 1960:62) 하지만 그것은 조직화한 제도종교는 아니었다. 조직종교가 가져다주는 방편적, 심리적, 사회적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참 종교의 모습은 감추어져있다. 두 스승이 마치 인류는 사랑하지만 인종의 구분과 차별은 사랑하지 않았듯이, 즉 유(類)개념으로서 인간은 사랑하지만 하위개념 즉 종(種) 개념으로서 인간의 분류를 싫어했듯이, 종교에 있어서도 하위개념으로서 조직종교나 종파를 본질적인 종교로 보.. 2020. 2. 2.
[이거룡 제1강]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나의 길-길 위의 삶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1강] 간디의 길, 함서헌의 길, 나의 길- 길위의 삶 "너는 씨알이다. 너는 앞선 영원의 총결산이요, 뒤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 … 기나긴 5천 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동양에서 진리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말은 '도'(道), 즉 길이라는 말이다. 인도전통의 요가(yoga)라는 말도 길(margā)이라는 말이다. 요가는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이때 길은 어디엔가 이르는 과정이 아니다. 길 따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 따로가 아니라, 길이 곧 목적지요 목적지가 곧 길이다. 그래도 굳이 한쪽 편을 들라 한다면, 길은 '존재'(being)보다는 '흐름'(becoming)을 본질로 한다. 흐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2020. 1. 23.
종교의 외형과 참에 대한 물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5/06/2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의 외형과 참에 대한 물음 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일정한 종교를 갖는다거나 종교적 신념을 표방하는 것에 대해서 특정 종교의 입장을 취하게 되면, 마치 그 종교적 색깔, 그 종교의 신념을 절대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종교를 선택하고 종교적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필연보다는 우연이고, 강제보다는 자유로운 자기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함석헌을 두고 이런저런 시각으로 평가를 내려 보지만, 사실상 그의 종교적 색깔론은 단 하나의 색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스펙트럼이 넓다. 처음에 그가 퀘이커가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오해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 2019. 10. 26.
무교회주의의 종교학적 이해: 민주주의적 신앙을 찾아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5/06/2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교회주의의 종교학적 이해: 민주주의적 신앙을 찾아서 “진짜 관용은 우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을 관용하는 것이다”_S. Zizek 무교회주의의 특징은 현상적으로 일정한 교권(敎權)이나 의식(儀式)에 반대한다는 점에 있다. 슬로베니아 학파의 거장 슬라보예 지젝(S. Zizek)은 “인간은 피부색과 인종, 민족과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다. 그러나 인간은 영성과 이성을 박탈당하면 인간성도 잃는다”는 말을 하였다. 교권과 의식 중심주의 종교는 위계적 질서에 따라서 지배와 종속 관계가 형성되는 구조를 띠게 된다. 그러나 무교회주의는 그러한 위계적 체계에 따른 형식주의를 탈피하여 수평적 종교 구조 혹은 신앙 구조를 추구한다. 그러.. 2019. 10. 25.
종교적 실존으로서의 무교회주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6/04/27 09:38]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교회주의의 종교 수사학 함석헌은 “무교회 신앙이란 직접으로 단순히 하느님만을 알자는 신앙”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물론 ‘하느님만’이라는 표현은 유일신이나 배타적인 신론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것은 함석헌의 무교회주의에 대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강한 수사학적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즉 발언자 자신의 신념과 감정이 드러나 있으면서 가능한 한 특정한 청중을 보편적 청중으로 인식하여 진리 혹은 발언자의 종교 신념의 타당성(validity)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느님만’이라고 할 때 그것은 특정한 대상(집단/계층)에게만 해당하는 존재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에 .. 2019. 10. 24.
무교회주의보다 더 본질적인 무교회주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6/04/29 08:35]에 발행한 글입니다. StartFragment무교회주의보다 더 본질적인 무교회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타락이다.” 함석헌의 말이다. 종교나 모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종교의 이름이나 조직을 거부하고 그가 말한 새 종교라는 것을 지향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종교는 타자에게 있는 것도 외부적 강제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의지와 신앙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나를 살리는 내 신앙은 내게 있다”는 말이 이를 반증한다. 타자에 의해서 규정된 혹은 일정한 권위에 의해서 규칙화된 종교는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학습된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형성.. 2019. 10. 24.
현실 구원의 종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6/10/15 01:07]에 발행한 글입니다. 현실 구원의 종교 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나 그 성격상 이상적인 세계, 관념적인 세계만을 강조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도피하도록 만드는 구실을 하곤 한다. 종교의 공적이고 사회 구원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오로지 개인의 영혼 구원과 지복만을 지향하는 종교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큼 등한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종교는 자칫 현실을 외면한 환상과 가상에 빠지게 될 수 있다. 함석헌의 지적은 바로 이러한 종교 현상에 있다. “종교가는 대개 종교는 현실에는 관계없고 다만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일이라 생각하고 현실에 대하여는 피하고 있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현실의 문제에 호소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 2019. 10. 24.
무교회로부터의 신앙 독립선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6/10/16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교회로부터의 신앙 독립선언 어떤 모임이든 이름을 붙여야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모임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모임의 성격은 거기에 국한되고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름으로 인해서 그 이름 범주 바깥으로 벗어나는 말과 행위가 전개될 때는 모임의 정체성에 의해서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함석헌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결성된 공동체를 단순히 ‘모임’(meeting)이라고 했다. 무교회주의 본래성을 담은 그 무엇으로도 규정하기가 애매하고 어렵다. 무교회가 모임은 아니다. 무교회주의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바로 모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함석헌은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했다. 제도적, 교리적, 체제.. 2019.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