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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5.16군사쿠데타가 맞는가, 5.16군사혁명이 맞는가

by anarchopists 2020. 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1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5.16 군사쿠데타가 맞는가,
5.16군사혁명이 맞는가.

《함석헌저작집》을 읽다보면 선생님이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고 계신지, 조금은 혼동되는 부분이 있다. 하여 오늘은 그 중에 선생님이 쓰신 글에서 5.16쿠데타와 혁명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함석헌은 5.16군사쿠데타(《함석헌저작집》4권, 한길사, 2009, 19쪽, 이하 같은 책)와 5.16군사혁명(21쪽, 24쪽, 25쪽, 167쪽), 5.16군사정변(27쪽, 193쪽)라는 용어를 섞어서 쓰고 있다. 그런데 역사해석으로 볼 때, 쿠데타는 지배층 내부의 權力爭奪의 성격이 짙고, 혁명은 民衆起義의 성격이 짙다. 역사해석으로 볼 때, 쿠데타는 민중의 이익과 무관하고, 혁명은 민중의 이익에 가깝다. 그런데 함석헌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비판하면서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쿠데타 권력을 혁명정부(167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쿠데타의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쿠데타라는 말은 영어의 ‘stroke of state’ ‘blow of state’(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에 해당하지만, 프랑스어인 쿠데타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전형적인 예가 프랑스적 기원을 가지기 때문이다. 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파의 체포ㆍ탄압, 정부요인의 불법납치ㆍ감금ㆍ암살, 군사력의 강압 등을 배경으로 하거나, 의회를 강점하고 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ㆍ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괴뢰정부를 수립하고자 할 때도 사용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혁명은 즉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으로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피지배층의 권력탈취를 비합법적으로 해석할지 몰라도 피지배층 입장에서는 민중기의를 통한 합법적 권력장악 수단이 된다. 따라서 역사에 긍정적 기능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 예가 근대국가에서 성공한 4개의 혁명, 즉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의 공산주의혁명 등이다.

그런데 함석헌이 5.16에 대한 표현은 1960년대 초반은 위와 같이 5.16군사혁명과 5.16쿠데타를 섞어 쓰면서 5.16군사혁명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쓴다. 그러다가 1971년에 오면, 5.16에 대한 용어 사용에 대하여 결론을 내린다. “나는 절대로 5.16을 혁명이라고도, 그 이후의 일을 나라함이라고도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4권 234쪽,〈군인정치 10년을 돌아본다〉이후 함석헌은 5.16군사쿠데타에 대하여 5.16으로만 표현하고 있다.(4권 238쪽 이후)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개념표현이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함석헌은 분명 이후의 글에서 ‘5.16은 와서는 아니 되는 것’(239쪽), ‘5.16은 빗나간 칼이다’(255쪽)이라는 소주제에서 “군인이 정치에 주둥이를 내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이것은 상식이다. 천하의 통칙이다 정치의 철칙이다 안류 전체가 여러 천 년을 두고 많은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다(4권 240~41쪽)라고 쓰면서 다시 ‘군사혁명’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4권 241쪽, “군사혁명 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감히 혁명에 손을 댄 것은 인생에 경험이 적고 정치가 뭔지를 몰라서 한 것이었다“ 4권 244쪽 )

지금 생각해 보면, 이병박 정권은 뉴라이트들이 그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곧, 이들은 박정희의 더러운 쿠데타를 혁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박정희식 경제개발, 곧 4대강 개발을 무슨 혁명이나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들은 ‘4대강 혁명, 4대강 기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국민들에게 이런 허망을 씌워놓고 자신들의 개인축재는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2010. 9월, 12.16일 다시 쓰다, 취래원 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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