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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정치인들이 판치는 이 나라는 불행하다

by anarchopists 2020. 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
《함석헌저작집》제4권(민중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한길사, 2009)에 실린 글들이 쓰인 시기는 대체로 1963과 64년이다. 그 중심된 글은 박정희 권력의 계엄령시기이다. 그 외 1970년대 전반부 일부 1980년대 글도 한편이 있다. 이글들이 쓰인 역사적 배경은 이렇다. 1960년 4월19일 반공독재 이승만 권력이 4.19혁명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건설, 주체적 자주국가 수립을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에 혁신세력(민족자주통일협의회)과 학생들의 정치적 반대운동 곧 반체제운동이 세차게 일어난다. 이러한 반체제운동은 ‘한미경제협정반대운동’(1961.2.8, 장면정권이 미국과 체결한 협정을 국회에서 비준하지 말라는 운동- 그러나 이 협정은 수정 통과되었다)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대 악법반대운동’(장면정부의 빈공임시특별법과 데모규제법- 이 두 법안은 국회에서 부결됨)을 전개하여 성공시켰다. 또 통일운동을 여론화하였다. 그래서 학생운동단체인〈민족통일연맹〉이 처음으로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하였다(1961. 5.3.) 이에 북한에서 대재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이렇듯 1960년 4.19혁명 이후 한국의 사회현상은 주체적 자주국가 수립을 위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러한 역사적 당면문제를 짊어질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이 탓으로 의회정치는 파행으로 나타났고, 기득권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갈등상태는 장면정권의 지지기반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여기에 국내경제는 악성 인풀레 사태를 야기시켰다. 더구나 1961년 봄은 지독한 봄 가뭄으로 ‘보릿고개’라는 봄철 식량난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체제를 회복시키려는 군부세력이 검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때 군부 또한 6.25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군부의 모순이 누적되고 있었다. 바로 전쟁으로 양산된 고급장교의 승진적체, 자유당 정권 때 승진한 고위 장성의 肅淸說, 육사 8기생 출신 중령들이 중심이 된 軍部肅淨運動 등이 그것이다. 이에 불안을 느낀 군인들의 정서를 악용하여 군부 내 박정희ㆍ김종필 등 친미적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1961. 5.16) 그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어 곧바로 국가재건최고위원회와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쿠데타 공약(이들은 혁명공약이라고 한다)을 통하여 민정이양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보부가 중심이 되어 민주공화당(1963.2.2.)을 만들고 박정희는 예편과 동시에 공화당에 입당하여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이를 계기로 장기집권ㆍ반공독재의 길을 가게 된다. 이에 민정이양의 허구를 간파한 함석헌은 필력으로 저항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글들이 <꿈틀거리는 백성이라야 산다>(《사상계》, 1963,8), <매국외교를 반대한다!>(1963,3), <한일회담을 집어치우라>(《사상계》, 1967,9), <언론의 게리라전을 제창한다>(《사상계》, 1967,1), <왜 말을 못 하게 하고 못 듣게 하나>(1963), <민중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사상계》, 1963,4), <정치 사회적 풍토와 폭력>(《기독교사상》, 1987) 등이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풍토는 박정희권력이 이 나라를 봉건적 노예사회로 만들어가던 시대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언론은 통제되고, 사상은 억압되고, 말할 자유는 구속되고, 삶의 행복조차 속박되었다. 정치하는 자들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순위로 10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삶의 질에서는 42위다(2010년 1월 현재) 그리고 행복지수로 보았을 때는 지난 6월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국가별 행복지수에서도 한국은 143개국 중 68위에 그쳤다.(세계 192개국으로 보았을 때는102위)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우리를 외형적 물질적 가치로만 삶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곧 정치하는 자들의 거짓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물질적 가치가 아닌 인문적 가치를 먼저 따져야 한다. 내가 대한민국 안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나. 즉,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나, 어떤 사상을 말하고 전파해도 뒤탈이 없나, 아무런 글을 써도 공아당국의 검열을 안 받고 사나, 대통령을 욕해도 처벌이 없나. 만약 이중 하나라도 탈을 당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중앙통제가 아닌 자치사회에서 살고 있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기를 내 마음대로 쓰고 사나, 전기세 때문에 전기를 아끼고 산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수도세 때문에 물을 아껴쓴다면 그것은 고통이다. 유류세 때문에 자동차를 마음대로 못 탄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공사를 많이 하는 나라에서 산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도시가 많이 건설되고 개발을 많이 하는 나에서 산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우리는 인문학적 가치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거기에서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나온다. 오늘날 함석헌 선생님의 부르짖음을 되새겨 본다.(2010. 9월 초안, 12.15일 다시 씀,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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