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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화장 대신 시신매장을 - 사람도 생태계 일환

by anarchopists 2019. 12.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1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사람도 생태계 일원

가슴을 펴고 숨을 크게 들이 마셔보자. 허파로 들어오는 무수한 탄소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나폴레옹 몸을 잠시 구성했던 것이라고 서양의 한 생태학 교과서는 말한다. 생태계의 탄소 순환 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한 것이다. 어디 나폴레옹뿐이랴. 아직 박정희 정권이라면 아부하고 싶은 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을 들먹였을 테지만, 이 땅의 역사 속에 살다 가신 수많은 조상들의 몸을 들고나던 탄소들도 어김없이 내 몸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번엔 숨을 크게 내쉬어보자. 조금 전에 먹었던 밥 속의 탄소 알갱이가 나가고, 내 근육과 혈액과 신경을 구성했던 탄소알갱이도 빠져나간다. 두바이 산 원유로 가공한 화학비료 속의 탄소였을지, 어쩌면 티라노사우르수의 발톱이었을지 모르는 그 탄소는 대기를 맴돌다 가로수 줄기가 될지, 다시 쌀 한 톨이 될지, 옆집 강아지의 털이 될지,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천덕꾸러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점은 지구의 탄소는 돌고 돈다는 것인데, 언젠가 내 몸으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6개월이면 대개 바뀐다. 내 허우대를 채웠던 지방과 단백질은 호흡을 통해 대부분 빠져나가고, 밥을 따라 들어온 새로운 유기물이 그 자리를 들어앉았다. 그런데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별 차이가 없다. 흰 머리카락은 여전히 희고, 계단을 내려갈 때 느끼는 왼 무릎의 가벼운 통증은 6개월을 걸어도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눈을 깜빡일 때 망막을 누비는 날파리도 도무지 떠날 생각을 않는데, 나이 탓인가. 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 물질이 6개월 전과 사뭇 달라져도 피부도 근육도 거의 변화가 없다. 수정체의 탄력도 전 같지 않아 돋보기를 지녀야 작은 활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제대로 순환해야 건강하다. 순환이 원활치 못하면 병에 걸리고, 멈추면 죽는다. 38억 년 동안 살아온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개체의 삶은 짧아도 개체들이 모인 종의 수명은 길듯, 종들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수명은 더욱 긴데, 순환되는 생태계는 38억년 동안 지구를 건강하게 이끌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진화와 멸종을 반복해왔을지언정, 표면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숨 쉬고 먹고 배설한 이래, 지구는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고 대기를 구성하는 원소의 균형이 변함없이 유지돼 왔다며, 지구를 대지의 여신, 즉 ‘가이아’라고 찬미한다.

진화한 지 길게 보아 100만년에 지나지 않는 사람은 가이아에 가장 늦게 출현한 신참이다. 태어난 지 고작 수십 년에 불과한 사람은 자신의 병은 용케 알아채고 즉각 치료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종은 자신이 일으키는 가이아의 중병을 파악하지도, 진단하지 못한다. 지나친 소비로 생태계의 순환을 왜곡시키는 사람은 성별, 민족, 종교, 이데올로기 사이의 다툼을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후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욕심을 자제하지 않는다. 제 종의 안위도 책임지지 못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동종 간의 자원 소비 불평등을 넘어 생태계의 안정마저 위협하려 든다.


우리나라에서 버린 플라스틱 유산균 음료수 병이 호주 해안에서 발견되고, 갯벌에 반짝이는 알루미늄 캔 마개를 먹이로 착각한 도요새는 주둥이를 벌리지 못해 굶어 죽는다. 떠다니는 비닐과 스티로폼을 해파리로 착각한 물범은 헛배가 부르거나 장이 막혀 죽는데, 오늘도 쉬 썩지 않는 쓰레기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쏟아진다. 지구 생태계에 없던 DDT, PCB, 플라스틱은 순환을 거부한 채 어딘가 멈춰 있고, 순환을 정체 또는 왜곡시키는 다이옥신, 이산화탄소, 유기용매의 생태계 유출은 그칠 줄 모른다. 재생이 불가능한 에너지 자원은 고갈이 눈앞이고, 수산과 산림자원의 소비는 지탱 가능한 규모를 벗어난 지 오래다.

다른 생물종은 갈수록 위축되는데, 진화해 나타난 이후 대부분의 세월을 생태계의 일원으로 생존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생태계의 질서를 일부 들여다보게 된 르네상스 이후 더욱 교만해졌다. 자신이 버린 난분해성 쓰레기의 양과 비례하며 개체 수를 늘이는 사람은 자신의 소비를 위한 가축과 농작물, 유전자 조작 식품과 그로 인한 돌연변이유전자까지 급속히 증가시키며 생태계의 순환을 전에 없이 저해한다. 다양한 생물종이 어우러졌던 생태계는 점차 병목순환이고, 인구는 폭발 직전이다.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는 물질은 생태계에서 결국 쓰레기와 다름없는데, 순환 불가능한 소비라는 방패막이로 사람은 가이아의 표면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순환 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와 자원을 과소비하며 생태계에 없는 쓰레기를 대량으로 풀어놓는 사람은 가이아의 오랜 균형을 흔들더니 이젠 생명을 잃은 자신의 허우대마저 생태계에 온전히 제공하기 꺼린다. 자연을 파괴해 얻는 약품으로 배타적으로 연장한 생명이 물러난 이후에도 자신의 육체를 생태계에 순순히 내놓지 않는다. 자연을 허물고 묘지를 차지하는 행태만이 아니다. 독수리에서 죽은 몸을 보시하는 티베트의 예외가 없지 않지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화장으로 자연 순환을 원천봉쇄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 타계한 재계의 유력 인사가 자손에게 화장을 부탁했다는 소식이 신선하게 들린 적 있다. 하지만 그 시신은 화장 후 호화 분묘에 안치돼, 가이아가 볼 때 매장보다 나을 게 전혀 없었다. 최근 산림청은 ‘산림장’을 원하는 유가족을 위해 숲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윌로 존처럼 그늘과 바람을 준 나무에 감사하며 자신의 시신을 자연에 돌려주는 보시가 아니다. 시신이 아니라 화장하고 나온 재를 나무 아래 묻는 방식이 수목장이라면 묘터로 사라지는 생태계 면적이 줄어드는 효과 이외의 이익을 산림에 주는 것은 아니리라.

순환이 원활치 않은 가이아는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더욱 강력해지는 태풍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몸살일 텐데, 6500만 년 전, 쥐라기를 주름잡던 공룡을 한꺼번에 멸종시켰던 가이아는 균형을 잃어가는 자신을 어떻게 치유하려 할까. 백악기 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발생한 생태계 파괴는 2억년 가까이 번성했던 공룡들을 사라지게 했는데, 진화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과학기술이라는 오만함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며 가이아의 균형을 흔들어댄다. 가이아는 언제까지 교만한 사람을 받아줄까. 기상이변이 전에 없이 속출하는 이때, 생태계에서 태어난 사람은 더 늦기 전에 생태계의 일원일 때 가장 건강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야 한다.(2011.5.11. 박병상, 끝)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 그리고 한살림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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