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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물 흐르듯 흐르지 못하는 물 이야기 1

by anarchopists 2019. 12.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부터 5일간 박병상박사의 환경카럼을 보내드립니다]


물 흐르듯 흐르지 못하는 물 이야기

1.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까. 오염되거나 운석과 충돌해 멸망할 위기 시대를 대비해 화성으로 이사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미국 천문학자의 목소리도 있는데, 화성에 가면 우리는 지구의 지금 환경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1997년 패스파인더호는 혹시 만날지 모를 생명체에게 전할 메시지를 가지고 미국의 우주센터를 출발했다는데, 과문해서 그런지, 아마도 영어였을 그 메시지를 읽은 화성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을 물의 존재 여부로 판단하는 듯하다. 물이 있다면 그 행성에는 반드시 생명체가 있을까. 물에서 태어난 지구 위의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데,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행성의 생명체도 마찬가지일까. 한정된 표면의 일부 정보밖에 알 수 없는 관계로 당장 드러나지 않았는지 몰라도, 패스파인더는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화성에 얼음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을 또는 있었을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일까.

물은 무엇일까
. ‘물불을 못 가린다’는 말이 있는데, 물은 불의 반대 개념일까. 하긴, 불이 나면 달려드는 소방차들은 물로 불을 끈다. 하지만, 큰물이 든다고 불자동차가 허둥지둥 달려와 불을 내뿜는 경우는 없다.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관계를 ‘물과 기름’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기름은 물의 반대일까. 그러고 보니 기름은 불과 친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먹어 소화 흡수하는 물질은 크게 수용성과 지용성으로 나눈다. 비타민C와 같이 물에 녹는 물질이나 지방과 같이 기름에 녹는 물질이 그것이다. 언뜻 물과 기름은 서로 반대 같기도 한데, 그 두 가지는 생물체의 생명 유지에 없으면 안 되는 물질이다.

지표면에서 아주 흔하고 매우 간단한 분자구조를 갖는 물은 비열이 가장 높은 물질이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비열은 ‘어떤 물질 1그램을 섭씨 1도 높이는데 들어가는 열량’으로 정의한다. 무쇠나 맥반석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들어가는 장작의 양이 같은 무게의 물을 같은 온도로 데우는데 들어가는 양보다 적다는 뜻이다. 혹시 비열이 높으므로 생명체가 물에서 깃들게 된 것은 아닐까. 환경 변화에 가장 안정된 물에서 지구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한 것은 아닐까. 그 방면에 문외한이므로, 자신의 주제를 망각하지 말고 더 깊은 공상은 이쯤에서 자제하도록 하자.

사막지대에 사는 일부 곤충류를 제외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이 몸무게의 대략 70퍼센트를 차지한다. 물속에 사는 해파리나 히드라와 같은 종류는 몸무게의 99퍼센트가 물이라 하고, 바닷가에 사는 아낙들이 수세미 대용으로 사용했던 해면도 거의 해파리 수준이라 한다. 그물에 걸려 올라왔을 때는 무겁지만 바싹 말리면 그렇게 질기며 가벼울 수 없다. 사람 몸무게의 약 70퍼센트도 물인데, 피하지방이 많은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인 물 무게가 적다고 교과서는 전한다. 그 점에서 장 사이에 지방이 많은 배 쑥 나온 남성도 물 비율이 좀 떨어질지 모르겠는데, 기름 성분인 체지방이 혈관에 축적되면 물 성분인 혈액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며 의사들은 뇌출혈과 동맥경화를 경고한다. 그러고 보면 물과 기름은 서로 상극인 모양이다.

우리는 땀을 조금만 흘려도 곧 목이 마르다. 땀의 기화열로 체온을 낮추는 생리적인 현상은 몸속의 물을 축냈고, 물을 보충하라는 신호로 목이 마른 것이리라. 허기진 상태에서 남은 반찬 모아 썩썩 비빈 찬밥을 허겁지겁 먹은 다음에는 반드시 물을 많이 마신다. 그러고 나면 졸음이 쏟아진다. 한 3개월 그런 상태로 곯아떨어지기를 꾸준히 반복하면 체지방이 금방 는다. 빨아둔 바지를 다신 못 입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저녁 7시 이후에 주전부리를 삼가고 저녁을 소량으로 만족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체험으로 얻은 물과 체지방의 상관관계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은 아무리 작게 썰어도 그대로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 탄수화물은 포도당과 같은 단당류로,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지방은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되어야 비로소 장의 세포막을 통과하여 흡수되고, 흡수된 포도당, 각종 아미노산, 그리고 지방산과 글리세롤은 혈관을 타고 이동하여 운동과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몸을 구성한다. 소화기관의 세포막을 통과한 음식 속의 단당류와 아미노산, 지방과 글리세롤은 여러 차례의 이합집산을 통해 우리 몸의 여러 조직과 장기로 거듭나는 것이다.

탄수화물이 수많은 단당류로, 단백질이 각종 아미노산으로, 지방이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소화기관에서 분해되려면 소화효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도 상당량 필요하다.
물분자가 하나씩 끼어 들어가야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으로 결합되었던 단당류와 아미노산 그리고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하나씩 떨어져나간다. 우리는 이런 몸 속의 화학작용을 ‘소화’라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소화를 ‘가수분해’(加水分解)라고 고쳐 말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가수분해된 단당류와 아미노산과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다시 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으로 결합하면 물분자가 방출된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몸에 물이 많은 사람들은 엄살이 유난히 심하다. 물의 비열이 높은 관계로 웬만한 기온 변화에 다른 동물들만큼 끄떡없어야 정상이건만, 온도계 수은주가 조금만 내려가도 등줄기에 땀이 밸 정도로 난방을 일삼고, 조금만 더워도 안경에 안개가 앉을 정도로 에어컨을 가동한다. ‘간장독과 아이들은 얼지 않는다’고 옛 어른들이 장담했건만, 양조간장을 사먹는 시대라서 그런지, 기상 캐스터가 조금만 수선을 떨어도 외투와 목도리로 둘둘 말아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곤 한다.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 시내와 우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촌락을 구성했던 사람들은 요즘 사막과 극지방에도 초고층 둥지를 친다. 물에 의존하던 시절에서 통제하는 시대로 들어선 사람들은 삶터의 조건에서 물의 존재를 거의 무시하는 모양이다. 마시고 닦고 변기의 배설물 내리고, 물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건만, 공기의 중요함을 모르고 살아가듯 물의 가치도 잊혀지는 모양이다. 지구의 숫한 생명체의 원천이요 생태계의 기반이자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결정했던 물의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수돗물 공급이 3일만 중단돼도 집안이 엉망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에게 물이 이처럼 무시되는 까닭은 무엇인가.(2011. 7.31, 박병상)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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