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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함석헌의 통일주체론, 씨알에 의한 민족동질성회복이여야 한다.

by anarchopists 2020. 2.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1/17 11:25 Hwangbo]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통일주체론, 씨알에 의한 민족동질성회복이여야 한다.

-박노자의 “민중본위통일이 가능한가”를 읽고-


박노자의 “민중본위통일이 가능한가”-함석헌의 통일론으로 비추어본 통일과정의 현실-라는 글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진행시키고 있는 ‘통일과정’을 형식상 함석헌의 ‘민중본위통일담론’으로 분석ㆍ비판하고 역시 함석헌의 씨알사상으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 좋은 논문이다. 박노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바와 같이 러시아 혈통의 젊은 학자로서 박학다식한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모스코바 대학에서 한국사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귀화(2001)하여, 많은 저서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역사문화 관련 글과 칼럼을 통한 언론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새로 발족한 <진보신당>의 발기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에는《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한겨레신문사, 2002),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한겨레신문사, 2003)《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신문사, 2006), 등이 있다. 박노자는 이들 저서를 통해 치밀한 통찰력과 진보적인 시각으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부패ㆍ타락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서구적 시각에서 체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한국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비판하고 늘 문화의 다양성과 개인을 존중하는 평등적 인간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박노자는 《우승 열패의 신화》(한겨레신문사, 2005)를 통하여 ‘사회진화론과 한국민족주의’ 담론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그는 한국민족주의의 뿌리를 서구의 사회진화론에서 찾고 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바로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어서 ‘민족주의’의 극복방안으로, “복지사회, 시민주의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의 박노자 글도 앞의 글 등에서 주장하고 있는 “평등한 인간관계”, “시민주의사회”, “복지사회” 구현을 함석헌의 ‘씨알사상’, ‘민중사관’과 관련지어 적은 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자, 박노자는 남한사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일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부정적으로 분석하였다. 1) 남북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官 위주의 물적ㆍ인적 교류의 증강이 통일로 연결될 수 있을까. 통일과정에 관ㆍ민의 불균형적 참여와 남ㆍ북의 불평등적 물적ㆍ인적교류는 결국 ‘불평등 통합’(내부식민화)으로 갈 우려가 있다. 2) 현 상태의 ‘준비 없는’ 남북통합을 위한 통일과정에서는 디스토리아적 통일한국이 될 우려가 있다. 이 결과 한국이 지금 진행시키고 있는 ‘통일과정’은 다음과 같은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남북이 ‘적대적 공존’시대를 벗어던지고 ‘공생적 공존’의 시대를 연 것은, 남 권력이 ‘북 정권의 붕괴’를 시대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북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북 관료집단과 관계를 맺으면서 점차적 ‘경제이권 챙기기’를 하자는 데 있고, 둘째, 북은 “우리민족끼리”의 배타적 민족주의이데올로기를 생산하여, 남 권력으로부터 수혜관계 수립을 통해 북 권력의 유지수단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남 자본가에게 북 인민의 노동력 착취를 허용(개성공단을 말하는 듯)하였다.” 셋째, 남의 진보적 통일인사들 마저 이러한 관주도의 통일과정을 비호하면서 탈주자(북의 씨알)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넷째, 더 나아가 남북의 통일과정은 남북씨알의 외침을 “국토통일”, “강성대국”, “민족웅비”의 논리로 봉쇄하고, 폭력적 국가조직의 “힘 키우기”만을 의제화한다고 비난한다. (박노자, 쪽)


박노자는 이렇게 한국사회의 통일과정에 대한 분석ㆍ비판을 토대로, ‘통일과정’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통일형태론으로, ‘적화통일’, ‘반공통일’이 아닌 “제3의 자리” 즉 복지국가론(사회투자형 국가)을 주장하였다. 둘째, 통일방법론으로 강한 이념적 민족주의에 토대한 남북의 두 체제를 부정하고 ‘동등한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셋째, 통일주체론으로, “민중위주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즉 통일의 주체는 남북전체민중(씨알)이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들 박노자의 ‘통일과정’에 대한 담론을 보면, 언뜻 함석헌의 성찰사관을 빌어 현재 남한사회에서 일고 있는 통일과정을 분석ㆍ비판하고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빌어 새로운 남한사회 ‘통일과정’의 대안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토론자의 입장에서는 박노자의 ‘민중위주통일론’은 함석헌 씨알사상과 좀 거리가 먼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 박노자가 지적한 통일과정의 문제와 그 대안제시에 대하여 통일의 형태문제, 통일의 주체문제, 통일의 방법문제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 다음 이외 박노자와 견해를 달리 하는 몇 가지 문제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먼저 한반도 통일형태에 대하여 살펴보자. 박노자는 지배계급 사이의 야합에 의하여 남한체제의 이북지역으로 확산시키는 통일방식은 장기적으로 북의 주민에게 구조적 고통을 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함석헌의 “씨알의 통일”을 토대로 한 양쪽체제를 모두 부정하고 북한 주민의 주체화와 인권보호를 위주로 하는 “사람을 위한 하나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실상, 그것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은 관념이 아니다. 현실이다. 박노자의 글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보면, 박노자는 남북의 서로 다른 체제에 대한 중립적 입장보다는 남쪽의 자본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글을 써 내려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리는 함석헌도 지적했듯이 남북의 영토분단은 외세의 힘의 논리와 국내의 권력장악에 눈먼 분단세력의 합작에 의하여 민족분단, 조국분단이 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북은 각각 독재권력 장악과 영구집권을 위하여 각각이 이데올로기적 정권을 강제하고, 각자의 사회를 기만적으로 이끌어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남과 북은 각각 다른 체제, 즉 남은 독재적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자본주의체제, 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에 의한 주체적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념적 체제에 의해 형성된 ‘사회구조’(낡은 틀)는 쉽게 무너져 내리기 어렵다. 이 결과 남은 ‘물질적 풍요’를 진정한 사회윤리 내지 ‘삶의 최고 가치’로 착각하는 불행한 사회로 나아갔고, 북은 주체사상에 의한 반파쇼적ㆍ빈신민지적 정통성을 사회윤리로 생각하는 자기도그마적 사회로 나아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두 지역의 체제부정을 전제로 하는 ‘통일과정’은 그 출발부터가 잘못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본다.

60여 년간 지속되어온 극단적 두 이념체제를 무시한 통일과정이 과연 가능할런지 의문이 간다. 더구나 6.15남북공동선언(2000)과 10.4남북공동선언(2007)에 의하여 남북 수장들은 손을 잡고 각각 체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명을 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관념적 통일이 가능하겠는가.



둘째, 박노자는 통일의 방법론으로 민족주의를 지양한 “동등한 통일‘(인간적 통일)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북을 “국수주의 물신주의”(박노자, 9쪽)로 보았다. 또, 한국사회의 통일운동가들을 “진보적 민족주의자 내지 좌파 민족주의자”로 부정적 시각에서 몰아세우고 통일과정에서 민족주의의 작용을 경계하였다.


그리고 앞에서도 본 바와 같이, 박노자는 평소 한국의 민족주의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민족주의로 보아왔다. 그래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바로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이다.”이라고 지적하였다.(《우승 열패의 신화》, 2005) 그러면 여기서 토론자 입장에서 한국의 민족주의 기원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민족주의는 서양 중세 봉건체제의 ‘절대적 권력’과 ‘권위적 종교’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다. 이를 개별주의 또는 차별주의 민족주의(고전적 민족주의)라 일컫는다. 이에 토대하여 유럽사회는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산업화시대를 만들어간다. 산업화로 자본주의시대를 열게 되고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제국주의시대를 연다. 그래서 1870년대에서 1914년까지 유럽의 민족국가는 제국주의적 영토분할과 식민지경영에 치중하면서 반동적 민족주의를 만들어낸다. 반동적 민족주의는 파시즘이 대두(1920~30년대)하면서 절정을 이룬다. 개인의 자유ㆍ평등ㆍ인간성의 가치는 부정되고 민족적 이기주의와 침략전쟁이 신성시된다. ‘반동적 민족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던 식민지ㆍ반식민지에서는 다시 민족주의를 혁명적 이데올로기로 태동시킨다. 곧 ‘식민지민족주의’다.

따라서
‘식민지민족주의’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띤다. 즉 ‘식민지민족주의’는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침략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적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족주의도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는 평화적 차원의 민족주의에서 출발한다.(항일민족주의) 이러한 식민지한국의 민족주의는 다시 한반도의 근대화과정에서 수용된, ‘자유ㆍ평등ㆍ평화ㆍ해방’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교와 결합하면서 ‘그리스도교민족주의’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식민지한국의 비그리스도교인의 ‘식민지민족주의’와 그리스도교인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모두 당시 한국사회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침략당하고 있다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민족의 저항과 관련하여 침략에 반대하는 ‘저항적 평화주의’로서 민족주의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침략기 한국의 민족주의가 사회진화론에서 연유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 민족해방에 뛰어드는 민중들은 대부분 당시 사회진화론적 약육강식의 사조를 모르고 있었다. 단지 이들은 우리 민족이, 우리 강토가 침략자에 의하여 약탈당하였다는 사실과, 내 임금, 나아가 내 부모와 처자식을 약탈자로부터 지켜야하겠다는 일념만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를 알기 위하여 ‘그리스도교민족주의’가 발생하는 배경을 살펴보자. 당시 한국의 영토는 조선인에게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금자리였지만, 그리스도교도로서는 하느님이 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신앙적 토대에서 볼 때 고난에 처한 민족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기독교를 수용하는 공동체가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당하는 ‘고난 받는 민족공동체’일 경우 해당지역의 역사적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와 깊이 연계된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그리스도교 교인들은 신앙의 터전 위에 조국의 독립을 유지하고 회복하려는 ‘항일민족주의’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정신구조 속에는 종교적 신앙의 측면과 민족적 양심의 측면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인이 조선의 국권회복운동ㆍ실력양성운동ㆍ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참여하는 신앙적 양심의 측면과 민족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애족적 책무의 측면 모두를 내포한다.” 이렇게 그리스도 교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반으로 민족공동체가 처한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내재적으로 확립해간 지성적ㆍ이념적ㆍ문화적 이데올로기를 ‘그리스도교민족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저항세력인 ‘시민적 민중계급’을 형성시켰고 일반적 ‘항일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 갔다.


이렇게 식민지한국의 ‘항일민족주의’는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조국의 해방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국제적 현실 속에서 ‘민족주의의 완성’을 못 본 채 한국사회는 불행하게도 분단조국이라는 고난의 역사를 또 다시 만나게 된다. 이에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해방정국 초기에 분단조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함석헌의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 용천자치위원회 위원장직 수행 등 그리스도교 목사와 장로들의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직 수행이 이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갈등을 겪으면서 북 지역 그리스도교는 남하하여 반공주의로 고착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는다. 그러다가, 남북지역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변동기를 맞는 1970년 초반에 들어와서 그리스도교는 반공주의에 대한 자기성찰과 함께 ‘그리스도교민족주의’를 다시 재고하게 된다.

즉 반공ㆍ안보논리적 신앙노선을 강화하면서 군사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작동하는 보수계열의 그리스도교에 대항하여 인권문제와 민주화운동, 나아가 민족통일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진보계열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가 재가동된다. 여기에는 함석헌과 김재준ㆍ박형규ㆍ문익환 등 목사와 지학순 천주교 주교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을 결성하여 남지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조금 뒤에)을 이끈다. 이때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1970.4.19)를 통하여 민족ㆍ민주ㆍ통일에 대한 ‘신앙의 양심’을 대변해 갔다.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오면 이들 진보계열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5.18민주화운동’에 자극을 받아 인권ㆍ민주화운동과 함께 민족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이 때문에 이들은 반통일세력에 의해 투옥되기도 한다.

여기서 일제침략기 ‘그리스도교민족주의’를 포함하는 ‘항일민족주의’는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대내의 강제적 분단세력들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적 ‘통일민족주의’로 승화ㆍ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박노자가 지적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민족주의 곧 ‘좌파 민족주의’, ‘민족주의적 마르크시스트’는 분단을 강요하는 힘의 논리에 저항하는 평화주위적, 곧 ‘통일민족주의’다. 이렇듯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다른 유럽사회와는 달리 외세의 압력으로 민족주의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 완성’은 조국통일이 되어야 완성된다. 따라서 박노자가 한국의 민족주의를 유럽식 민족주의로 보는 견해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박노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북의 민족주의 또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가 아니다.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오랫동안 시달림을 받아온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에서 형성된 주체사상에 입각한 ‘자주적 민족주의’다. 그리고 남 또한 대미종속적 정치구조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민족주의적 통일지향’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즉 남북이 갖는 민족주의는 외세의 힘의 압제에 대한 저항적 의미의 ‘진행형 민족주의’로 외세의 압제가 종식되지 않은 한 남북의 민족주의도 종식될 수가 없다.


민족주의를 “근대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사상과 운동”으로 인식한다면, 아직 민족의 미통합으로, 근대화과정에 있는 한반도로서는 오히려 남북이 통일과정에서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는 남북이 민족주의에 대한 동질성을 갖는데 있다고 본다. 즉 북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자주적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비하여 남은 미국에 대하여 종속적 식민주의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남북통일과정에서 선결문제는 남의 대미종속적 식민주의를 청산하고 ‘통일민족주의’를 갖는 일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북에서 말하는 “통일은 민족비극의 종말”이 될 수가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보다는 민족주의가 통일문제에서는 더 긴요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민족주의를 반대하기 보다는 ‘민족동질성회복운동’으로 통일의 문제를 이끌어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면 여기서 함석헌으로 돌아가 보자, 함석헌 또한 ‘민족동질성회복’을 강조하였다. 함석헌은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보았다. 외세에 의한 영토분단 또한 고난 가운데 있다고 보았다. 함석헌이 말하는 ‘뜻’은 ‘하느님’을 말하며,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민족통일에 있다고 본다. (<민족통일의 종교>)

그래서 함석헌은 우리 역사를 이렇게 주장한다. “통일 언제 될까?/ 아무도 그 날 그 때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날마다 대기 태세/ 우리가 할 일만 어서 바삐 하는 것이 문제다./ 어서 회개해야지./ 가난과 압박 없어야지./ 우리의 자아 발견을 해야지./ 쉬지 않고 기도해야지./ 오천년 긴 역사에 /이루 헬 수 없는 희생내고/ 다듬어 낸 이 말./ 이 도덕, /이 예술, /이 믿음을 건지기 위해/ 어서 한 나에 돌아가기를 눈물로 빌어야지./ 또 막혔던 담 무너지고/ 손에 손을 서로 잡는 날/모든 부문에 있어서/ 어떻게 할 것을 미리 짜두어야지.”

이글에서 함석헌은 통일이 언제 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준비해야 한다(“대기태세”)고 말한다. 우리(씨알=민중)가 할 일만 바삐 하면 된다. 우리의 할 일은 바로 통일준비이다. 그러면 어떻게 통일을 준비해야 하느냐, 바로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자아의 발견은 우리 민족이 여태까지 분단의 잘못을 반성(“자기반성”=‘회개’)하고 “전체의 자리” 돌아가야 하는 “운명공동체적 전체사회”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곧 60여년 갈라져 살면서 “모든 부문”에서 이질화된 민족의 동질성(같은 운명의 공동체)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의 끝 부분에서 함석헌은 “오천년 긴 역사, 도덕, 예술”(모든 부문) 등에서 민족동질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셋째, 박노자는 통일의 주체로서 함석헌의 민중사관을 빌어서 민중위주의 통일방안, 곧 “민중의 자유의사에 의한 통일과정”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도 통일의 장애물인 남한의 국가보안법 존재문제, 남의 “좌파 민족주의적” 또는 “진보적 민족주의적” 지식인들의 관(官)주도 통일과정에 대한 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할 민중과 그 인권들이 “정상회담”, “비핵화논의”, “사업계발”의 그늘에 가려져 있고 또, 통일의 주체로서 북의 정치세력을 의심 없이 인정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박노자, 쪽) 그리고 북의 핵에 의한 “강대국도약”은 긍정과 흠모를 보이면서 북한의 평민들이 하루 400~500g의 쌀을 배급받는 현실에 대하여서는 하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태도를 “민족 물신화”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북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남의 재벌독점적 자본만능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민중 중심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는 것만이 함석헌의 “참된 하나됨의 길”이라고 주장한다.(박노자, 쪽)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민중위주의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일 뿐, 본 토론의 주제인 “민중위주의 통일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게 아니라고 본다. 통일과정은 한반도의 현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동시에 한반도의 현실 속에서 민족통일의 과정은 민족주의의 완성과정이다. 따라서 현실을 떠난 통일논의는 담론수준에 불과하다. 통일과정은 현실 속의 두 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두 지역의 권력자(官)들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 현재 남의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북의 관 주도, 주체사상에 의한 “사상의 주체, 경제의 자립, 국방의 자주”를 국시로 하고 있는 한 민중이 관(권력자들)이 주관하는 ‘통일과정’에 주체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민(‘씨알’)이 주체적으로 통일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함석헌이 이야기하는 ‘민족동질성회복운동’이다.

여태까지 박노자가 제시한 한국의 통일과정을 통일의 형태, 통일의 주체, 통일의 방법론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러나 박노자의 주장들은 현실성이 없는 유토피아적 발상이다. 우리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박노자가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바탕하여 민중위주의 통일론을 제시한 것은 옳은 이야기이지만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모든 문제는 현실에서 이루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토대로 한 문제해결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이외 박노자의 견해와 다른 몇 가지를 더 살펴본다. 탈주자문제와 한국의 통일운동가를 좌파적 진보지식인으로 보고 이들의 친북적 성향을 비난한 주장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박노자가 보는 북지역 탈주자에 대한 인식문제이다. 우리 한반도의 두 권력이 운영하고 있는 사회체제는 역사 속에서 우리 인민의 선택에 의하여 만들어진 게 아니고, 외부열강들의 ‘강제’와 내부독재자들의 ‘권력야망’에 의하여 타의적으로 빗어진 두 체제이다. 따라서 두 지역의 인민들은 두 체제가 발휘하는 힘의 강제 속에서 굴종 내지 무지 속에서 60여년의 세월을 보내왔다. 이러한 사이에 두 체제는 두 지역에서 ‘자연화’ 되었다. 때문에 두 지역에 사는 인민들은 모두 자기 체제를 자연스러운 옷으로 알고 입고 지낸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체제인 남에서는 북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하여 문제를 삼고, 북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다.(남의 국가보안법)

이 때문에 남의 인민들은 북 지역을 “후진지역ㆍ위험지역ㆍ푹력집단”(박노자, 쪽)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이지, 정작 북 인민 그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식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남의 인민 대부분 특히 박노자가 말하는 ‘진보적이지 않은’ 지식인들 대부분은 독재권력에 의해 강제된 반공이데올로기와 미국의 도그마적 ‘부패한 자유주의’에 감염되어 있다. 이렇게 오염된 사고에 의하여 ‘북한인권’ 운운 하고 북지역을 ‘해방지역’으로 생각하고 있다.

남의 정치ㆍ군사적 종주국인 미국의 태도를 잠시 보자. 미국은 북을 평화적 공존의 상대가 아닌, 붕괴 내지 타도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 목적으로 제정한 법체계인《북한난민구호법》(2002)과 《북한자유법》(2003)을 수정보완 한 《북한인권법》(2004)을 통하여 노골적으로 북인민의 탈주를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북지역 탈주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거짓된 탈주자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한국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북한인권법》을 “북한주민들의 탈복을 지원하거나 유도하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북한인권법》에서 특히 주목되는 조항은 “미국은 탈북자의 상태에 대하여 국제적 관심을 끌고 그러한 심오한 인류의 딜레마를 공식화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이것은 미국이 “나 이외의 남은 안 된다는 식”으로 북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다. 또 북한인권법과 관련하여 미국 내 극우단체인 <허드슨연구소>, <디펜스포럼>, <북한자유연합> 등 단체와 그리고 미국우익 기독교근본주의자들과 연결된 한국계 또는 한국인 추종 목사들이 북지역 인민의 탈주를 기획하고 유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획된 탈주유도는, 자의적이 아닌 타의에 의해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또 다른 체제적응을 강제하는 꼴이 되며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운동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박노자가 한국 내 좌파민족주의자들이 탈북자문제에 대하여 등한시한다는 주장은 현실상황과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엉뚱한 발언이라고 본다.



둘째, 박노자는 한국의 통일지향 진보지식인들이 북의 ‘핵에 의한 강국’에 대한 선망으로 북 인민들의 식량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강국의 반열”은 “민족의 물신화된 모습일 뿐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국제정치를 외면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채 하는 처사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핵으로 무장된 강대국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 핵강국들의 힘의 강제에 의한 국제적 군사질서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세계의 정치ㆍ경제질서가 주도되고 있다. 그리고 핵강국인 미국은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고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여 북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북을 지원하던 사회주의체제국가들이 거의 붕괴된 실정이다.

이런 마당에 북의 입장에서 볼 때, 북이 전쟁 없이 살아남아서 한반도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생존법칙’은 핵무기의 보유뿐이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북의 핵보유마저 강제로 억지하려 한다. 이는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깨는 일이다. 따라서 남북이 평화공존을 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핵 압력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은 평화적 통일운동이다.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통일과정에 있는 우리는 통일의 상대인 북의 입장을 존중하여야지, 그들의 생존법칙마저 거부한다면 통일은 힘에 의한 강제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평화통일이 아닌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의한 강제통일이 된다면, 民族相殘의 비극과 함께 박노자가 말하는 통일조국은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통일과정에 함께 하고 있는 남의 이른바 “진보지식인들이 북의 ‘핵무기강국’을 묵인하고 있다”는 박노자의 발언은 통일과정에 있는 남과 북의 입장을 모두 외면한 발언이 된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평화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평화론에는 두 가지 의미의 주장이 있다. 하나는 평화를 위해서 무력사용이 정당하다는 주장(현실주의 평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사용의 배제 또는 거부가 정당하다는 주장(무력배재 평화론)이다. 제국주의적 정치ㆍ경제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사회에서는 다소 힘(무력)에 근거한 정치현실주의 평화론이 지배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외침이 잦고, 또 외세에 의하여 민족분단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현실주의 평화론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 더구나 북의 경우는 중국과 미국의 정식수교(1979.1. 1), 1990년 초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동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이 마당에 북으로서는 자력으로 생존권 수호를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환이 핵무기소유를 통한 현실주의 평화책이었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통일의 상대로서 북의 존재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반공독재자들인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등은 ‘평화’를 북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여 남의 민중들이 ‘평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보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따라서 남한의 이른바 ‘진보지식인이’ 아닌 통일운동가들이 ‘통일과정’에서 북의 체제유지와 이를 위한 핵무기 보유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박노자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통일과정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준 데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박노자가 제시한 통일방법론, 통일주체론, 통일형태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들어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이에 대한 보안점을 찾고 그 대안을 새롭게 모색한다면 박노자가 우려하는 디스토리아적 통일한국은 없으리라고 본다.

박노자가 함석헌의 민중사관으로 분석한 현재 한국의 통일과정은 박노자가 말하는 ‘잘못’이 아니고 통일로 가는 한 ‘과정’이다. 현실 속에 놓여 있는 ‘힘의 상태’를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오늘날 통일과정의 틀은 이니 6.15와 10.4남복공동선언에 의해, “양쪽 체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통일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멀리 와 있다. 언뜻 보기에 그러기 때문에 양쪽 체제를 부정하는 차원에서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어려운 통일방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남북의 서로 다른 이념적 체제 속에서 너무 오랜 동안 독재권력에 길들려진 민중(씨앗)이 통일의 주체세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민중이 통일의 주체세력이 되기 위하여서는 먼저 민중 스스로 주체적 역량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 바로 함석헌이 말하는 “생각하는 씨알”의 ‘민족동질성회복운동’이다. 민족동질성회복운동에는 문화의 동질성회복, 경제의 동질성회복, 윤리의 동질성회복 등이 있을 수 있다.

먼저 경제의 동질성회복에는 남북의 자연분업구도를 회복하는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한강을 중심으로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북과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은 남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이 수천 년간,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오면서 한반도의 농업구도는 남의 미작지대, 북의 잡곡지대가 자연분업화 되었다. 그리고 자원조건상, 북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제2차 산업의 발달에 유용하고, 남의 발달된 임야ㆍ평야ㆍ바다는 농어업 및 축산업 발달에 필요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는 남북의 자연ㆍ지리조건상 자연분업을 통하여 한반도의 균형 있는 경제발전이 가능케 되어 있다. 그런데 영토의 분단으로. 남과 북은 지금 모두 식량안보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이때야말로 한반도의 자연분업구도를 회복하는 통일농업을 통일과정에서 달성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통일농업에는 농경 그 자체만 있는 게 아니라. 토종종자박물관의 설립, 한반도의 전통농경문화의 복원 등이 있다. 그리고 농경문화의 동질성회복운동이다. 추수감사제ㆍ단오제ㆍ대보름제 같은 전통농경문화 한마당을 주기적으로 남북의 농민들이 왕래하며 개최하는 일이다.

문화의 동질성회복운동에는 언어와 국어의 동질성회복, 고난이 각인된 풍속의 동질성회복, 高雅優美한 예술(건축ㆍ조각ㆍ그림ㆍ공예품ㆍ음악)의 동질성회복, 고민과 슬픔이 실린 문학의 동질성회복 등이 있다. 그리고 윤리의 동질성회복에는 (2008.3.10) 자주성 회복ㆍ평등성 회복ㆍ인격성 회복이 있다. 물질적 金權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사회에서 인간의 인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간성 회복은 곧 윤리의 동질성 회복이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민족동질성회복운동’을 통하여 민중들 스스로 주체적 역량을 갖추어 나갈 때, 민중(씨알)본위의 통일은 가능해 진다고 본다.(황보윤식, 2008. 3.10탈고, 2008. 3.25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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