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14 12:00]에 발행한 글입니다.
3. 전체론적 비전 - 「펜들 힐의 명상」(1)
함석헌이 갖는 ‘생각’의 다른 또 하나의 차원은, ‘생각하는 백성’이 가리키듯이, 단순히 개인의 사고를 넘어선 초개인적(transpersonal), 집합적 사고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기존의 전통적 사고의 틀(paradigm) 전환에 해당하는 ‘(갈아) 뒤집어엎음’이다. 이제 인류는 ‘개인적인 영혼 구원의 종교’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요단강은 개인에서 전체로 건너가는 경계선”이다.(3:383-4) 그러므로 개인으로서의 ‘나’는 죽어져야 한다.
그는 70대 후반에도 (1978) “내가 좀 더 죽었다고 할 것밖에 없는” 체험을 겪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뜻이고 노자의 “덜고 또 덜어 없음에까지 이른다”(損之又損之以至於無爲)(48장)의 취지임을 말한다. “죽으면 이 ‘나’가 죽어야지, 누구더러 죽어라 할 권리가 없다. 그것을 알고 전체를 놓아 살려주기 위해 ‘나’를 죽을 것으로 단정하고 자른 것이 예수다.”(2:299) 그리고 정몽주의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를 읊조리며 “영대(靈臺)가 진동되는” 마음으로 “눈물 없인 못 부르는” 느낌을 말한다.(385)
다양한 종교전통을 동원한 다원주의적 풀이이다.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불교적 무아(無我)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개아(個我)로서의 나는 무의미하고 대아(大我) 즉 전체가 중요하다.
전체론적 사유방식은 생의 중 후반기부터 조금씩 움터오면서 영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미국 퀘이커 센터인 펜들 힐에서 가진 명상체험이었다. 늦가을 11월 어느 날 그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3:314-18)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저녁 그는 쓸쓸하게 지난 인생을 회고하고 “내 일생은 실패다” 하는 회한에 잠겨 있다가 문득 창밖 나무 밑에 쭈그리고 있는 가롯 유다의 환상을 보고 명상에 잠겼다. 그것이 ‘깨어진 전체’에 대한 것이다. 예수에게는 “한 사람의 배반으로 그 열둘의 전체 사귐이 깨지는 것이 문제”였다고 본다. 양 아흔 아홉보다 잃어버린 하나가 더 중하다. 열 두 제자는 순전히 개인주의자들이었다. “한 사람의 실패는 결코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전체의 실패”이다. 예수처럼 “유다는 사실은 전 인류의 짐을 맡아 진 것”이다. 이것을 보고 예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서 그는 예수가 지금 계신 곳은 “유다가 있는 곳”이라고 추정한다. “왜? 지금도 그와 대화를 열어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마음을 열어야 세계 구원은 옵니다. 사람들은 천당 지옥 소리를 하지만 유다가 지옥 밑바닥에서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고 있는 한은 천당이 무사할 수 없습니다. 그 이빨 가는 소리에 천당이 흔들흔들할 것입니다. 악마의 마지막 아들이 놓여날 때, 그때에야 온 인류의 천국은 옵니다.”(3:317) 끝에는 그 자신도 자기가 막달라 마리아요 유다임을 선언한다.
전통적인 해석을 따라서, 함석헌 자신도 “이날까지 나는 유다를 배반자로만 알고 저주받아 마땅하다 생각”해왔다. 이제 달리 생각하게 만든 영감, 계시를 받은 것이다. “유다는 사실은 전 인류의 짐을 맡아 진 것”이다. “어느 의미로는 예수를 죽인 것은 열 한 제자”이다. 열두 제자는 순전히 개인주의자로 ‘전체의식’을 못 가졌다.(316) 선악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선과 악을 떼어서 보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해왔는데 그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선은 한 개인의 선이 아니라 전체의 선이요, 악도 한 개인의 악이 아니라 전체의 악”이다.”(318)
펜들 힐 체험(1971) 이전에 이미 전체론적 사고가 움트고 있었다. 펜들 힐 사건은 그 완결적 깨달음이었다. 1963년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반대자는 원수요, 원수는 곧 악이며, 악은 죽여 마땅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반대자도 나의 한 부분이요, 원수라도 반드시 악은 아니요, 악은 죽여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전집11:367)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자아"임(칼릴 지브란)에 동의한다. “병신자식도 내 자식”이 된다. 또한『뜻으로 본 한국역사』4판 서문(1965)에서 함석헌은 이렇게 선언했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보다 많은 중생을 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혼자서 안락하기보다는 다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이 좋다. 천국이 만일 있다면 다 같이 가는 게 아니겠나?”(1:18) 그에게 개인영혼이나 개인구원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전체구원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보다 더 일찍이(1959)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개인 아니다. 나는 아버지(全體)와 같이 있는 나지, 개인이 아니다.”(2:159) ‘전체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다.(2:53) ‘성스러운’(holy)에도 ‘전체’(whole)의 뜻이 담겨있다.(2:344)
펜들 힐에서 그의 나이 70세에 일어난 사건은 오랜 명상과정의 결실이었다. 그가 신비주의자처럼 비밀스런 코드를 풀어냈다든지 신비체험을 한 것이 아니다. 신비주의와 공유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비주의는 아니다. 기독교 하나님의 계시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나타난다.(3:109) ‘예수의 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니다.(3:119)
감옥에서 그는 신비체험을 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두려워서 더 이상 빠지기를 거부했다고 기술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다. 만약 그가 그때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진입하여 신비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오늘 우리가 그에게서 받은 귀중한 사상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호, 월요일 계속)
함석헌의 탈바꿈(개혁-혁명-진화) 사상
3. 전체론적 비전 - 「펜들 힐의 명상」(1)
함석헌이 갖는 ‘생각’의 다른 또 하나의 차원은, ‘생각하는 백성’이 가리키듯이, 단순히 개인의 사고를 넘어선 초개인적(transpersonal), 집합적 사고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기존의 전통적 사고의 틀(paradigm) 전환에 해당하는 ‘(갈아) 뒤집어엎음’이다. 이제 인류는 ‘개인적인 영혼 구원의 종교’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요단강은 개인에서 전체로 건너가는 경계선”이다.(3:383-4) 그러므로 개인으로서의 ‘나’는 죽어져야 한다.
그는 70대 후반에도 (1978) “내가 좀 더 죽었다고 할 것밖에 없는” 체험을 겪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뜻이고 노자의 “덜고 또 덜어 없음에까지 이른다”(損之又損之以至於無爲)(48장)의 취지임을 말한다. “죽으면 이 ‘나’가 죽어야지, 누구더러 죽어라 할 권리가 없다. 그것을 알고 전체를 놓아 살려주기 위해 ‘나’를 죽을 것으로 단정하고 자른 것이 예수다.”(2:299) 그리고 정몽주의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를 읊조리며 “영대(靈臺)가 진동되는” 마음으로 “눈물 없인 못 부르는” 느낌을 말한다.(385)
다양한 종교전통을 동원한 다원주의적 풀이이다.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불교적 무아(無我)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개아(個我)로서의 나는 무의미하고 대아(大我) 즉 전체가 중요하다.
전체론적 사유방식은 생의 중 후반기부터 조금씩 움터오면서 영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미국 퀘이커 센터인 펜들 힐에서 가진 명상체험이었다. 늦가을 11월 어느 날 그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3:314-18)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저녁 그는 쓸쓸하게 지난 인생을 회고하고 “내 일생은 실패다” 하는 회한에 잠겨 있다가 문득 창밖 나무 밑에 쭈그리고 있는 가롯 유다의 환상을 보고 명상에 잠겼다. 그것이 ‘깨어진 전체’에 대한 것이다. 예수에게는 “한 사람의 배반으로 그 열둘의 전체 사귐이 깨지는 것이 문제”였다고 본다. 양 아흔 아홉보다 잃어버린 하나가 더 중하다. 열 두 제자는 순전히 개인주의자들이었다. “한 사람의 실패는 결코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전체의 실패”이다. 예수처럼 “유다는 사실은 전 인류의 짐을 맡아 진 것”이다. 이것을 보고 예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서 그는 예수가 지금 계신 곳은 “유다가 있는 곳”이라고 추정한다. “왜? 지금도 그와 대화를 열어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마음을 열어야 세계 구원은 옵니다. 사람들은 천당 지옥 소리를 하지만 유다가 지옥 밑바닥에서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고 있는 한은 천당이 무사할 수 없습니다. 그 이빨 가는 소리에 천당이 흔들흔들할 것입니다. 악마의 마지막 아들이 놓여날 때, 그때에야 온 인류의 천국은 옵니다.”(3:317) 끝에는 그 자신도 자기가 막달라 마리아요 유다임을 선언한다.
전통적인 해석을 따라서, 함석헌 자신도 “이날까지 나는 유다를 배반자로만 알고 저주받아 마땅하다 생각”해왔다. 이제 달리 생각하게 만든 영감, 계시를 받은 것이다. “유다는 사실은 전 인류의 짐을 맡아 진 것”이다. “어느 의미로는 예수를 죽인 것은 열 한 제자”이다. 열두 제자는 순전히 개인주의자로 ‘전체의식’을 못 가졌다.(316) 선악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선과 악을 떼어서 보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해왔는데 그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선은 한 개인의 선이 아니라 전체의 선이요, 악도 한 개인의 악이 아니라 전체의 악”이다.”(318)
펜들 힐 체험(1971) 이전에 이미 전체론적 사고가 움트고 있었다. 펜들 힐 사건은 그 완결적 깨달음이었다. 1963년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반대자는 원수요, 원수는 곧 악이며, 악은 죽여 마땅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반대자도 나의 한 부분이요, 원수라도 반드시 악은 아니요, 악은 죽여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전집11:367)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자아"임(칼릴 지브란)에 동의한다. “병신자식도 내 자식”이 된다. 또한『뜻으로 본 한국역사』4판 서문(1965)에서 함석헌은 이렇게 선언했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보다 많은 중생을 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혼자서 안락하기보다는 다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이 좋다. 천국이 만일 있다면 다 같이 가는 게 아니겠나?”(1:18) 그에게 개인영혼이나 개인구원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전체구원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보다 더 일찍이(1959)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개인 아니다. 나는 아버지(全體)와 같이 있는 나지, 개인이 아니다.”(2:159) ‘전체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다.(2:53) ‘성스러운’(holy)에도 ‘전체’(whole)의 뜻이 담겨있다.(2:344)
펜들 힐에서 그의 나이 70세에 일어난 사건은 오랜 명상과정의 결실이었다. 그가 신비주의자처럼 비밀스런 코드를 풀어냈다든지 신비체험을 한 것이 아니다. 신비주의와 공유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비주의는 아니다. 기독교 하나님의 계시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나타난다.(3:109) ‘예수의 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니다.(3:119)
감옥에서 그는 신비체험을 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두려워서 더 이상 빠지기를 거부했다고 기술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다. 만약 그가 그때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진입하여 신비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오늘 우리가 그에게서 받은 귀중한 사상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호, 월요일 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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