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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선균목사 칼럼

폭력아 물렀거라

by anarchopists 2019. 1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2/25 07:0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핵은 과연 억제 될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 앞에서 과연 세계를 건질 수 있는 무슨 길이 있는가? 핵전쟁이라는 인류멸망의 폭력 앞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가? 슬픈 일이지만 어떤 해결책이나 어떤 구원의 길도 찾을 수 없다는 데 그 심각성은 극에 달해있다. 물론 정상적인 국가로서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만에 하나 핵을 사용할 경우 자국의 안전은커녕 인류전체가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자국이 피해를 당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먼저 핵을 실전에 사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이란이나 북한을 위시한 비정상적인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핵이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2001년 9.11 뉴욕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살폭탄, 각국의 묻지 마! 폭력에 이르기까지, 전혀 예상을 뒤엎고 깜짝깜짝 놀라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현상으로 볼 때, 과연 세상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이란 정규군인 혁명수비대의 항공사단사령관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준장은 23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스라엘의 공격은 미국의 승인 없이 일어날 수 없으며, 우리가 공격을 받으면 미군 기지를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9월 25일 중앙)’

북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포동 2호미사일로 미국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저들의 그것이 경고나 엄포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한다하더라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구상에 있는 강대국이나 약소국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들이, 암암리에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들을 증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름이 곪으면 반드시 터지고야 말듯이, 그동안 무기의 증강에 증강을 거듭한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핵전쟁이 터지는 때가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든지, 인간이 해결책이라고 만든 어떤 단체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밖에 없다. 물론 유엔(UN)이나 그린피스운동이나 자연보호총회나 핵 안보정상회의, 각종환경보호단체들이 운동을 벌리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로 봐서 별로 큰 기대를 걸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유엔의 역할이 있어서 이만큼이라도 유지된 점은 있다. 그렇지만 유엔도 본래 취지대로 나가지 못 하는 점도 분명하다. 지금 시리아에서 독재자에 의해 민간인들이 수없이 살해당하고 있는데도,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부딪쳐 안전보장이사회는 손을 놓고 아무것도 못하지 않는가? 이렇게 유엔의 하는 일이 번번이 벽에 부딪치고, 각종 평화운동이나 환경보호단체들의 주장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핵억제니 핵 안보니 하면서 모임을 아무리 해봤자 결국은 하나마나한 모임이 되고 마는 오늘, 무슨 희망을 거기에 걸 수 있는가?

폭력아, 물러가라!
그렇다면 이렇게 된 세상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전쟁에서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듯이, 폭력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면 무슨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폭력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악성 이기심’이 발동하여, 그것이 어떤 조직과 결합되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또는 어떤 이데올로기와 연결 될 때, 그것이 구조 악이 되고 인간악이 되어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폭력으로 확대되는 듯하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을 통하여 움직이는 모든 악한 행동이나 폭력적 활동이 인간의 뜻대로 진행되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을 괴롭힌다든지 폭력을 가한다든지 심지어는 살상이나 살인자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내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나도 모른다.”고 말한다. 변명이라고 처리하기보다는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내 정신이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어떤 유혹에 끌려서 그렇게 된 것이지, 내 뜻이 아니고 내 정신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 유혹자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필자는 감히 그 유혹자의 존재는 바로 악령이요 사탄이라고 규정한다. 세상을 이미 다 점령하고 안방까지 침투한 폭력의 정체는 바로 악령이요 사탄이다. 그들은 우리 안방에 허락 없이 들어온 도둑이요 강도들이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목적을 다 달성하고 마지막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세계를 재 마당으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고 위협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이 거대해진 폭력의 악령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남은 길은 한 가지 길밖에 없다고 본다. 일반이 보기에 좀 우습게 생각될지는 몰라도, 그 길은 씨알 정신의 길이다. 함석헌님의 말에서 인용해 본다.

"이제는 씨알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설 때다. 세상을 못 믿고 인간이 만든 단체를 못 믿고 정치가를 못 믿지만, 씨알 만은 믿을 수 있다. 씨알은 역사의 주체로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온 사람이지만, 그들이 이 역사를 지키고 역사의 주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씨알은 착하고 순수하고 난대로 있는 자연의 사람으로서, 파란만장한 세상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면서도 변함없이 꾸준히 그 양심을 지켜온 양심의 사람이다.

씨알은 거짓을 거짓으로 이길 수 없고, 미움을 미움으로 이길 수 없고, 오직 참과 사랑으로써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악을 악으로 물리칠 수 없고 오직 선으로만이 악을 물리칠 수 있다. 어두움이 어두움을 물리칠 수 없고, 오직 빛만이 일순간에 어둠을 물리칠 수 있듯이, 폭력을 폭력으로 물리칠 수는 없다. 오직 비폭력으로만이 폭력을 물리칠 수 있다. ‘비폭력은 씨알의 사상과 행동의 원리’이다. ‘비폭력은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이다.’ 비폭력은 절대승리의 믿음이다.(
씨알의소리)

그러나 이런 원리만으로 이 거대한 폭력세력들을 물리칠 수는 없다. 함석헌이 제시한 대로 씨알의 정신력(얼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씨알의 얼 힘을 키워서 일으킬 뿐 아니라, 또한 그 정신력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래서 어린 다윗이 거대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네게 가노라”(삼상17장) 했듯이, 예수가 광야40일 금식기도 후 유혹하는 악령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마4장)했듯이, 질곡과 고난의 강을 건너온 이 땅의 모든 씨알들이 ‘전체가 하나요, 하나가 전체’라는 믿음을 갖고, 일제히 일어나서 폭력을 행해, “폭력아, 멈춰!”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폭력(악령, 사탄)아, 물러가라!” 소리쳐야 한다. 그것을 외치고 또 외치는 길만이 남아 있다. (2012, 10, 26., 박선균)

박선균 목사님은
박선균 목사님은 강원도 평창 호명리에서 태어나(1938)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 전신)와 명지대학에서 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1974년 한국기독교 침레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1년부터 함석헌 선생의 부름을 받아 《씨알의 소리》 편집을 맡아왔다. 이후 전두환 12.12쿠데타 독재정권이 들어와 《씨알의 소리》를 폐간시킬 때(1980.7)까지 7 여 년 간 월간 《씨알의 소리》사 편집장을 지냈다. 그래서 박 목사님은 1970년대 《씨알의 소리》를 지킨 산 증인이다. 그 외 1974년 이후, 미아리 빈민촌 등지에서 25년간 목회활동을 했다. 그리고 《씨알의 소리》가 폐간된 이후는 중국 산동성 웨이팡시(山東省 濰坊市) “산동과학기술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어를 강의하였다.(2004년까지)

저서로는 《금지된 씨의 소리-박 정권의 언론탄압사》(생각사, 1987), 《씨알 소리이야기》(2005. 2, 도서출판 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1970년대 언론의 마지막 보루였던 월간 《씨알의 소리》 수난사와 저항사를 담고 있다. 이외 〈청용과 거북의 꿈〉, 〈씨알의 때가 오고 있다〉, 〈씨알 정신운동의 뿌리〉등 논설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의 일부는 본 포럼의 취지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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