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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선균목사 칼럼

안방까지 침투한 폭력

by anarchopists 2019. 11. 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2/2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평화포럼"은 이제부터 함석헌사상과 철학에 입각하여 사회정의와 세계평화를 견인하는 글들을 게재하려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조국통일, 사회정의, 균산경제, 세계평화, 생명보호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일환으로 함석헌 선생님의 제자이신 박선균 목사의 글을 먼저 싣습니다.


안방까지 침투한 폭력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선생도 모르고 경찰도 몰랐다. 폭력이 안방까지 침투한 줄은 어머니고 모르고 아버지도 몰랐다. 13세 아들이 자기 집 안방에서 동료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는 물고문까지 당하는 데도 몰랐다. 까마득하게 몰랐다. 아들은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어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필자는 이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그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가 막히고 땅을 칠 일이지만, 그것은 특수한 일이지 보통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은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 나온다든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만으로도 설명이 다 안 되는, 일진회와 같은 엄청난 폭력조직의 뿌리가 어린 중학생들의 현장에까지 들어가 뱀처럼 얼키설키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전혀 짐작을 못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폭력들이 알을 까고 새끼를 쳐서, 구렁이처럼 우리 생활 속까지 파고 들어와 우리 자녀들을 위협하고 우리 가정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학교나 경찰당국에서는 미리 알고도 모르는 척 했는지, 그냥 무감각으로 지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이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부랴부랴 ‘학교폭력예방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폭력신고전화 117을 만들고, 학교에 경찰관을 배치하며, 각 지자체별로 학교폭력예방 조례가 봇물을 이루고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학생들이 폭력이라는 괴물의 올가미에서 어느 정도 해방을 받고 있는가? “아니다! 아니다!!”하고 크게 외치고 싶은 심정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폭력 건수가 하나도 없다는 보고가 혹 있다고는 하나, 폭력은 마치 그런 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잠시 물밑에 잠수해 있다가 다시 전보다도 더 끔찍한 범죄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해 말 대구 학생사건이 있은 이래 올해 6월까지, 대구 경북에서만 15명의 학생이 자살 했거나 자살 기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대구 경북에서만 그렇고 다른 곳은 안전하다는 말인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학교폭력은 점점 그 연령이 내려간다고 한다. 고등학교 보다는 중학교, 중학교 보다는 초등학교로 내려간다니, 무엇으로 이 폭력의 물결을 막을 것인가?

폭력은 학교폭력만이 아니다. 여성부에 따르면, 99년부터 2001년까지 가정폭력상담건수가 4만여 건으로 시작해서 7만5천여 건, 11만 4천여 건으로 증가 하더니, 지난 해 가정폭력 피해자 신고는 13만 건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65세 미만 6가구 중 1가구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 되어버렸다. (KBS)

‘50년을 함께 산 남편이 아내를 살해 하고, 수십 년간 남편과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오던 아내와 자녀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할머니가 잔소리를 한다고 손자들이 합심하여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 심지어는 노숙자를 자기 집 안방으로 끌어드려 술에 수면제를 타 마시게 한 후 살해하고, 자신이 죽은 척 신고하여 33억을 타내려한 무속인 보험사기사건 등등,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친구가 친구를 괴롭혀서 돈을 뜯고 폭력을 가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폭력사건들이 저 멀리 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안방에서,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야 할 우리의 생활공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이 기막힌 사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2012. 10.26, 박선균, 내일 계속)

박선균 목사님은
박선균 목사님은 강원도 평창 호명리에서 태어나(1938)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 전신)와 명지대학에서 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1974년 한국기독교 침레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1년부터 함석헌 선생의 부름을 받아 《씨알의 소리》 편집을 맡아왔다. 이후 전두환 12.12쿠데타 독재정권이 들어와 《씨알의 소리》를 폐간시킬 때(1980.7)까지 7 여 년 간 월간 《씨알의 소리》사 편집장을 지냈다. 그래서 박 목사님은 1970년대 《씨알의 소리》를 지킨 산 증인이다. 그 외 1974년 이후, 미아리 빈민촌 등지에서 25년간 목회활동을 했다. 그리고 《씨알의 소리》가 폐간된 이후는 중국 산동성 웨이팡시(山東省 濰坊市) “산동과학기술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어를 강의하였다.(2004년까지)

저서로는 《금지된 씨의 소리-박 정권의 언론탄압사》(생각사, 1987), 《씨알 소리이야기》(2005. 2, 도서출판 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1970년대 언론의 마지막 보루였던 월간 《씨알의 소리》 수난사와 저항사를 담고 있다. 이외 〈청용과 거북의 꿈〉, 〈씨알의 때가 오고 있다〉, 〈씨알 정신운동의 뿌리〉등 논설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뉴시스(2012.917일자)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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