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박선균목사 칼럼

끊임없이 커가기만 하는 폭력

by anarchopists 2019. 11. 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2/23 06:4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평화포럼"은 오늘부터 함석헌사상과 철학에 입각하여 사회정의와 세계평화를 견인하는 글들을 게재하려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조국통일, 사회정의, 균산경제, 세계평화, 생명보호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일환으로 함석헌 선생님의 제자이신 박선균 목사의 글을 먼저 싣습니다.



[어제이어 계속]

끊임없이 커가기만 하는 폭력


폭력이 우리 안방 깊숙이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솔직하게 깨놓고 말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폭력에 대부분 점령당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필자의 이런 생각을 지나친다, 부정적이다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 여름에도 보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즐기러 나가는 사람이 길을 메우고,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로 여행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비행장을 메우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기분 잡치는 소리를 하는가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평화롭고 즐거움을 찾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일까? 물론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나 절망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절대희망 앞에 서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겉으로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예컨대 겉보기에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밀한 종합검진에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치명적인 병이 발견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말이 일찍부터 나왔다. 그러나 이 지구가 얼마나 병들고 몸살을 앓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고 있는지를 아는가? 모르는가? 기차 전차 자동차가 지상 지하를 달리고, 하늘에 비행기가 날고 바다에는 유람선이 뜨니까, 그저 좋다고만 할 것인가?

나타나는 현상으로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드려다 보면,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눈만 뜨면 성폭(性暴), 주폭(酒暴), 조폭(組暴)들이 날 뛰고, 가정폭력에 이어 학교폭력까지, 그래서 가정이 병들고 오늘날 학교가 폭력으로 인해 이렇게 깊은 상처를 입고 있는 때는 일찍이 없었다. 심지어는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고, 학부형이 학교를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는,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교권침해 사례가 2009년 1,570건에서 2010년 2,226건, 2011년 4,801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8월 29일자 중앙일보)

이런 폭력들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만이 아니다. 식물 동물들도 인간에 의해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식물들이 멸종이 되고,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는지 아는가? ‘코끼리는 매달 50마리씩 상아를 뽑히고, 예쁜 새들은 한해에 500만 마리가 밀거래되며, 상어가 해마다 7,300만 마리가 잡혀 산채로 지느러미가 잘린 채 다시 바다에 던져진다. 모피코트 한 벌에 너구리 27마리 토끼 34마리 밍크는 55마리 여우는 20마리가 들어간다.’ 한다.(명품 가방 속으로 악어들이 사라졌어/유다정/학고재) 이것은 말 못 하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폭력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엄청나게 커 가기만 하는 지구상의 폭력, 이 폭력의 까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왔는가? 필자의 옅은 소견이지만 다 같이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그 까닭을 제목만이라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폭력의 원인은 오직 인간에게 있다. 지구상에 어느 다른 동물의 폭력이 아니다. 폭력은 어린이들의 전쟁놀이에서부터 찾아야한다. 총과 칼과 대포와 탱크, 온갖 현대 무기의 모형들이 어린이 장난감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학교도 가기 전에 배우는 것은 전쟁놀이요 폭력놀이다. 말하자면 세상에 태어나서 말을 배우기 전에 폭력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평화 놀이나 협동을 위한 놀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둘째는 컴퓨터게임이 유소년을 망치고 있다. 착한 게임도 있다는 말이 있으나 찾기 어렵고, 그 게임이라는 것이 싸우고 쏘고 죽이고 부수는 것 외에 무엇을 주고 있는가? 요사이 게임에 빠지지 않은 청소년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셋째는 공부한다는 학생들이 입만 열면 그 입에서 폭언과 욕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요즘 ‘10대 사이에 급속히 늘어나는 카카오톡(KakaoTalk) 집단 괴롭힘은 그동안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던 왕따현상이 비대면성과 편의성을 바탕으로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8월23일자 경향) 어찌하다가 우리의 학생들이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할수록 참담함을 느낀다.

넷째는 음란문화의 홍수다. 개성과 자유 시대에 감춘다고 되느냐 할 지 모르나, 감출 것은 감추는 것이 옳다. 그것을 드러내놓는다는 것은 윤리적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은 저질 인간이나 동물의 지경으로 떨어지는 것 외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까닭을 말할 수 있지만, 이렇게 된 근본 이유를 찾는다면 결국은 과학기술문명에 가 닿는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점은 있다. 인간을 즐겁고 안락하게 살게 해준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명은 그것만을 넘겨준 것이 아니다. 문명이 병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문명은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길러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명으로 인해 땅과 공기와 물의 오염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영혼까지 오염되고 있다. 바다에서는 낚시꾼들과 불법적인 스쿠버 다이빙들이 바다를 병들게 하고 물고기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지구의 허파에 해당한다는 아마존이 벌목으로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지구에 대한 인간의 폭거가 아닌가.

요즘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폭우, 폭염, 태풍의 정도가 전에 없이 점점 더 강력해지면서,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는 까닭도, 파고 들어가면 지나친 현대과학문명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일이 있다.

“ 과학기술의 힘이 산업생산력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성능이 뛰어난 기관총, 화력이 강한 대포, 강력한 군함을 앞세워서 세계전체가 제국의 운영체제에 봉사하도록 강제하는 무력과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폭력의 우위를 통해 앵그로색손 족은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을 보호구역 안으로 몰아넣고, 아프리카인은 노예로 만들고, 오세아니아의 원주민을 사냥하고, 인도인들을 식민지의 하인으로 부리고, 중국인들에게 아편을 수입하는 무역항을 제공하라고 강요할 수 있었다. 제국의 주변세계 주민들에게 서구의 과학기술문명은 공포와 외경을 불러일으키는 폭력적 힘이었다
."(‘문명 안으로’ 한길사 간 p91<안성찬> 2011)

과학기술문명으로 군비를 증강하여 약소국가들에게 ‘공포와 외경을 불러일으키는 폭력적 힘’을 사용한 것은 비단 앵그로색손 족만이 아니었다. 일본을 비롯한 소위 서구열강들의 폭력적 만행은 오십보백보였다. 그들은 결국 식민지 경쟁에 열을 올리다가 걷잡을 수 없이 세계대전으로 가고 말았다.

세계 1,2차 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제1차 세계대전(1914~18)은 4년이 넘는 싸움으로, 3천7백만(사망자 1천만, 실종자 7백만, 부상자 2천만 이상)이라는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끝이 났다.(전쟁사6/다움넷) 제2차 세계대전(1939~45)은 일차대전에 비길 수도 없는 살생 전이었다. 동맹국 8개국(일본 독일 이태리 등)과 연합국 49개국(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등)에서 동원병력 1억 1천만 명에서 거의 절반에 이르는 5천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종료되었다.(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전편찬위원 엮음/ 가람기획) 1,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크고 작은 전쟁에서 희생된 수를 합한다면 1억 명이 훨씬 넘어간다.

펄펄뛰는 젊은이 1억 명을 살생한 인류의 역사! 끔찍하지 않은가? 참혹하지 않은가? 이런 역사를 무슨 역사라고 할 것인가? 문자 그대로 살인의 역사요 폭력의 역사가 아닌가? 전쟁을 일으킨 동맹국의 문제가 크지만, 연합국이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죄 없는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어 아까운 생명들을 빼앗은 일은, 어느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가?(2012. 10.26, 박선균, 내일 계속)

박선균 목사님은
박선균 목사님은 강원도 평창 호명리에서 태어나(1938)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 전신)와 명지대학에서 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1974년 한국기독교 침레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1년부터 함석헌 선생의 부름을 받아 《씨알의 소리》 편집을 맡아왔다. 이후 전두환 12.12쿠데타 독재정권이 들어와 《씨알의 소리》를 폐간시킬 때(1980.7)까지 7 여 년 간 월간 《씨알의 소리》사 편집장을 지냈다. 그래서 박 목사님은 1970년대 《씨알의 소리》를 지킨 산 증인이다. 그 외 1974년 이후, 미아리 빈민촌 등지에서 25년간 목회활동을 했다. 그리고 《씨알의 소리》가 폐간된 이후는 중국 산동성 웨이팡시(山東省 濰坊市) “산동과학기술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어를 강의하였다.(2004년까지)

저서로는 《금지된 씨의 소리-박 정권의 언론탄압사》(생각사, 1987), 《씨알 소리이야기》(2005. 2, 도서출판 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1970년대 언론의 마지막 보루였던 월간 《씨알의 소리》 수난사와 저항사를 담고 있다. 이외 〈청용과 거북의 꿈〉, 〈씨알의 때가 오고 있다〉, 〈씨알 정신운동의 뿌리〉등 논설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위 사진은 연합뉴스(2012.1.227)와 뉴시스(2012. 10.21)에서 따온 것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