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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천암함, 철저 진상 원한다면 ‘항적과 교신내역’ 공개해야

by anarchopists 2020. 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4/25 09:08]에 발행한 글입니다.


철저 진상 원한다면 ‘항적과 교신내역’ 공개해야
- 정부는 이미 은폐 게임에 착수한 것은 아닐까 -

천안함의 함미가 드러나면서 진실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여러 보도를 종합해보면 암초 등에 의한 사고, 내부폭발에 의한 사고의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직까지 원인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부 충격에 의한 사고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필자의 견해도 대동소이하다.

힘 받고 있는 ‘북한 소행설’

외부 충격으로 좁혀지면서 ‘북한 소행설’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 역시 그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듯하다.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명시적으로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군사적 조치’ 등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 그와 같은 방향으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명환 외통부 장관이 18일 “가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의도로 읽힌다.


드디어 청와대까지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아침만 해도 사고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대통령으로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끝까지,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고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예단을 앞세워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면서도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찾는게 필요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단호한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까지 부연했다.

여기에 미국의 기류가 바뀐 것도 ‘북한소행설’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미국이 처음에는 “북한의 원인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고 했다가 최근 “6자회담 재개 논의는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이 규명된 이후 추진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북한의 소행을 뒷받침할) 뭔가 새로운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보수 언론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북한을 지목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젠 정부까지 나서 공공연하게, 비록 ‘예단은 금물’이라는 단서를 어느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지만,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실의 실체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는 항적과 교신기록

그러나 여전히 실체는 묘연하다. 군 당국과 민군합동조사단은 어뢰의 공격 특히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충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천안함 함미 부분의 손상 흔적이 어뢰 등에 의한 폭파 혹은 버블제트 충격보다는 배에 물이 차서 생긴 것이라며 “어뢰폭발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군 당국에서 추정하는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침몰 역시 많은 허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버블제트 충격이라면 의레히 있어야 할 생존자들 중 물기둥을 보았다는 증언도, 물을 뒤집어 쓴 증언도, 고막 손상을 입은 경우도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분석은 분석일 뿐이고, 추정은 추정일 뿐이다. 이동관 수석이 언급했던 대로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수없이 많은 억측만을 남겨둔채 천안함 사고는 미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여러 언론에서 지적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천안함의 진실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함수까지 인양하고 종합적인 조사를 해봐야 알 일이긴 하지만 함미 탐색 과정에서 이렇다할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파국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목소리 큰놈’이 이길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이 발견된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수차례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조하고 있지만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군 당국은 수많은 정보 은폐 사례들은 난무했을 지언정, 그래서 국민 전체가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은 발생했을 지언정, 청와대와 군당국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정부와 군을 믿어달라”는 케케묵은 소리만 내뱉었을 뿐이다.

‘항적과 교신기록’ 역시 진실의 문을 100% 열지는 못할 것이다. 함미와 함수의 절단면 및 선체 내 그리고 사고 지점에서 명확한 단서가 나와야 총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적과 교신기록’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사고 초기부터 왜 천안함이 그 지역을 항해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군당국은 지금까지도 그 의문에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또한 사고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파악하는 것 역시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항적과 교신기록을 확인한다면 소위 ‘항간에 떠도는 괴담’을 잠재우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항적과 교신기록을 확인하면 그것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단서는 못되더라고 항간에 떠도는 ‘억측’을 잠재우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비록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안되더라도, 그 외의 다양한 분석은 현실가능성이 없다는 결정적 단서는 제공될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항적과 교신내역 공개를 그토록 꺼리는 것일까.

조선일보가 그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우리 발등 찍을 교신 공개 요구’라는 15일자 시론에서 “이것(교신기록)을 공개하면 적국이 이미 확보하고 있으나 해독을 못하였던 다량의 아군 암호 통신문의 해독에 거의 완전한 도움을 주게 된다”며 “우리 군의 암호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미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정보사령관을 역임했던 한 예비역 소장이 당시 자신에게 가해졌던 국방부의 부당한 인사 조치에 반발하여 최근 방대한 분량의 ‘제2 연평해전 비망록’을 발간한 사실이 있다. 그 예비역 소장은 비망록을 통해 당시 첩보사항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으면서도 “국가안보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군사비밀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비망록은 북한군 감청사실과 그에 기초한 특수정보의 건수와 메시지 글자 수사까지 전부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보 능력이 노출되는 몇몇 부분만 ‘세탁’하면 얼마든지 당시 군사상황을 공개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군 당국은 진상을 밝힐 의사도, 능력도 없다

군 당국이 철저히 수사를 하고 있고, 게다가 미군합동조사단까지 활동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안보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군 자체의 수사이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수사이건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미 국민의 60%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군 당국의 발표를 불신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분명 군이 자초한 것이다. 사건발생 시각을 네 차례나 번복한 사실, TOD 동영상을 찔끔찔끔 공개한 사실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함미 인양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인양 시간을 늦추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군 당국이 몰고가는 버블제트 어뢰 공격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민군합조단에 참여하는 민간인의 면모와 규모 역시 오리무중이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측은 “정확한 구성비율이나 명단은 밝힐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김태영 국방장관 역시 “전문가들이 언론에 공개될 경우 언론 취재 등에 시달릴 우려가 있다”며 명단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어떻게 봐야 할까. 군 당국은 그리고 청와대는 진상을 밝힐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46명의 무고한 젊은 장병이 죽은 초유의 사건을 ‘영구 미제 처리’하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불공정 게임을 벌이고자 하는 것이 청와대와 군당국의 의도라면 ‘명예훼손’일까.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의원이 나서야 한다

총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면, 혹은 총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 국민의 의무라면 이제 진실 규명의 키는 군당국에서 다른 어딘가로 옮겨져야 한다.

비록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긴 하지만 나서야 할 곳은 국회밖에 없다. 국민이 모두 나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정부가 진실을 규명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한다면 그래도 기대야 할 곳은, 그래도 나서야 할 곳은, 법적으로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밖에 없다.

국회는 이미 정부와 군당국의 축소 왜곡 은폐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천안함 침몰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나설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바로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가 그것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빨리 청문회 혹은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꾸려야 한다. 국회진상조사단에게 항적과 교신기록을 공개하면 군당국이 그토록 우려하는 암호통신문이 해독되는 사태도 없을 것이다. 단, 진상조사단을 특정 정당 의원들로만 꾸리면 또 다른 정쟁의 소지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모든 정당의 국회의원 1인이 참여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것이라 판단된다.

국회의원들은 그 자체로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정당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국방부장관이 밝혔듯이 “국가안보 중대사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당적인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모든 정당을 아울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도, 국방부도 그리고 메이저 언론들도 이 사고의 진상을 밝힐 의사가 없는 조건에서 국회가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장창준)


* 본 기사는 <함석헌평화포럼>의 정론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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