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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일요시론]사람답게 사는 새세상을 만들자

by anarchopists 2020. 2.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1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일요시론-2]

사람이 진정으로 가야할 길

우리나라 최초로
차별없는 세상을 주장한 정여립

기축년 새해다.  2008년에 광우병문제로 이나라 강산이 떠들석하더니만 기축년이 되자 사람들은 평생 우직하게 일하다가 모든 것을 내놓고 가는 우공(牛公)을 본받자고 한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지만 사람마음같이 복잡한 곳이 있을까싶다.  기축년하면 그래도 퍼득 떠오른것이 기축옥사이다.  조선시대 선조 22 년(1589년)에 조선조 최대의 역모사건 즉, 기축옥사가 일어났는데 바로 기축년이다.

유교적 질서속에서 정여립이 꿈꾸는 것은 신분의 차별없는 세상, 대동(大同)의 세상이었다. 정여립이 살던 당시는, 양반이 아니면 사회중심부에 접근할 수 없는 신분제속에서 서얼,중인,천민등은 그냥 견디고 견딜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다. 한때, 율곡 이이의 제자였고 양반의 신분이었던 정여립이 자신은 벼슬길에서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었는데도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깃발을 들었던 연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에 대한 자각이었고, 내면의 혼이 울렸기 때문이다.

당시 정여립은 “천하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天下公物說)”와 “누구라도 임금의 적격자라면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何事非君論”)라고 주장하였는데, 지금 들어도 서늘하고 시원한 말이다. 그러나, 정여립의 꿈은 꿈으로만  남았고 기축옥사의 후폭풍으로 사실상 이때 영남과 호남의 분열이 된다. 그러나, 세월이 420년이 지난  이 나라의 실정은 어떠한가?  당시의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는 신분제는 철폐되었지만 아직도 편가르기에 익숙하고 오히려 이제는 이념도, 지역도 아닌 실용이라는 슬로건뒤에 숨은 여우같은 녀석, 즉, 돈에 대한 숭배에 다들 난리다.

강남과 강북으로 대별되는 서울의 집값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진 일자리문제, 보수냐 진보냐하는 이념의 대립등은 이제는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자리잡을 기세다.  본래, 사람은 사회적관계속에서 살아가기에 사람이다. 즉, 이웃이 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라고, 이웃사랑해서 사람되라고, 부처님,예수님이 그렇게 당부하지 않았던가?

부처님, 예수님이 자신의 처, 자신의 자식, 자기회사, 자기고향사람들, 자기교인들만 금지옥엽이 아니라 자신과 관계되는 사람들도 모두 금지옥엽이라고 그렇게 설법하고 설교하였건만 다들 눈감고 귀막고 살아간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으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다.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길인가?

양심의 소리는
새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그래서, 양심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양심대로 살지 않으면 사람의 길 아니다.
간디의 자서전을 보면, 간디는 평생을 자신의 내면의 소리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살아갔는데 간디는 이를 말하기를 진리실험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사람이라고 할려면 자신의 삶을 참(진리)속에 풍덩하고 빠져 살아야 한다. 위 참속에 빠져서 “에이 시원하고 장히 좋다”라고 덩실덩실 춤을 추어야 한다. 신라시대의 원효도 무애가를 부르며 참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참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양심이 참이라고 본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있는 참은 하나이고 참은 모든 것에 통하므로 양심의 통로에 접어들면 모든 사람들이 다 통하게 되는 것이다. 양심이 통하는 통로는 그래서 가슴이고, 손으로 하는 악수보다는 가슴으로 안아주는 어머니의 포옹이 사람끼리의 인사법에 가까운 것이다.

요즈음, 방송법개정문제가  새해벽두 초미의 관심사다.  언론은 정말로 양심의 소리가 그대로  반영이 되어야 참언론이다. 언론이 각 개개인의 소리를  모아서 알려야지 기업의 이익이나 권력의 이해를 선전한다면 이는 선전물이지 참언론아니다.  왜냐하면, 언론은 공공재(公共財)의 성격을 지닌 것이지 한 개인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사실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언론의 생명이니 언론인의 길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언론인인가? 언론인으로서 책무를 하고 있는 것인가? 역사앞에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언론의 큰문제는 실상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광고를  유치하여야  신문사나 방송사를 유지하는 현재의 실태에 있다. 기업광고없이  권력이나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 유지할수 있는 매체가 바로 독립언론이고, 언론의 독립이다. 이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 양심있는 사람들이 이점에 대하여 다들 소리를 질러야 할 것이고, 이러한 소리를 담아내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 독자가 수만명이 있어야 참언론인가? 1960년대의 장준하선생의 사상계,1970년대의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가 상업광고받아서 유지된 것인가? 실상 언론은 상업광고에 의존안되야 제 소리를 낸다.

이제 사람의 길을 가자. 그러면, 사람의 길을 그래도  먼저 가야할 자는 누구인가?그래도, 지식인이라 칭하는 사람들, 교수, 변호사, 언론인, 종교인들이 먼저 지식인의 밥값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혼자하면 힘들고 어려우니 함께 하자. 구체적으로 일을 함께 하고 가슴을 열어 제치면 양심이 “까꿍”하니 모습을 보일 것이다.

참의 길, 진리의 길은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양심의 통로는 다들 통하게 되어있어 다들 만나기 때문이다. 양심대로 살고, 참을 찾아 웃고 우는 사람들. 사람종자들아! 기축년에  모두들 들고 일어나 새세상을  만들어보자.
(2009. 1. 10. 박종강)


필자 박종강님은
지금 법무법인 '민중'에세 소속한
변호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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